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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면 살길이다. -인간론-
김정현 (2006.02.22) ㅣ 프린트하기


인 간 론

                                                  ◇ 목 차 ◇

1. 총 론 ································································· 3  

2. 인간 타락과 향상 ············································· 4    (1) 인간 타락 ····················································· 5    (2) 인간 향상 ····················································· 7  

3. 인간의 난제와 해결 ······································· 12    (1) 시국 난제와 해결 ······································ 12    (2) 사상 난제와 해결 ······································ 13    (3) 인간 전쟁 난제와 해결 ·························· 14     (4) 인간 정치 난제와 해결 ·························· 15     (5) 경제 난제와 해결 ······································ 16    (6) 마귀 난제와 해결 ······································ 17  
4. 인간의 주의와 인격 ······································· 18    (1) 자본주의와 인격 ······································ 18    (2) 봉건주의와 인격 ······································ 19    (3) 공산주의와 인격 ······································ 20    (4) 인본주의와 인격 ······································ 20    (5) 신비주의와 인격 ······································ 21    (6) 복음주의와 인격 ······································ 22  
5. 인간의 주권과 생활 ······································· 22    (1) 경제 주권과 생활 ······································ 22    (2) 정당 주권과 생활 ······································ 23    (3) 교회 주권과 생활 ······································ 23    (4) 시민 주권과 생활 ······································ 24    (5) 성도 주권과 생활 ······································ 25  
6. 인간 요구와 종말 ·········································· 27  




















   1.총  론

  인간이라는 것은 먼저 시발점을 바로 알고 끝을 바로 아는 것을 목적하고 본서를 기록한다. 인간은 조물주 하나님께 피조로 받을 때에 삼대 요소를 받은 것이다.

  1. 몸이 신의 형상을 따라서 모양을 이루었고 그 신의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지음을 받았다. 그래서 모든 만물은 몸을 위해서 세운 것이니 인간의 몸이 없다면 만물도 필요가 없다. 조물주의 모든 영광은 피조물된 사람의 몸으로서 누리도록 한 것이니 몸은 신과 같이 동거 동락하는 데까지 목적을 두고 창조한 것이다.

  2. 머리에 정신 작용이다. 동물은 이러한 것을 준 것이 아니요 정신 작용으로 움직이는 사람에게 지배를 받고 순종하도록 한 것이다. 이 정신 작용이라는 것은 물체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으로 준 것이다. 오늘의 과학 발전이라는 것은 여기에 국한된 것이다. 사람이 정신 작용이 바로 움직여질 적에 물체를 바로 이용해서 얼마든지 화려하게 생활할 수 있는 범위를 가지고 있다.

  3. 생령이다. 이 영이라는 것은 물체를 사용하는 정신 작용을 초월하여 조물주 하나님과 상대가 되는 인격을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영의 활동을 바로 할 때에 신과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세계를 도달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이 발전한 사람으로서 정신 작용이나 몸을 움직일 적에 이상적인 사회를 이룰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에 완전을 준 것이 아니고 완전에 도달할 수 있는 자격으로 창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향상할 수도 있고 타락할 수도 있는 위치에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향상을 주기 위해서는 법이 있는 것이니 하나님의 법을 놓고 하나님은 여기에 의하여 인간을 다스리는 것이 진리의 신의 역사라는 것이다. 진리를 위하여 역사 하시는 신께서는 진리를 대적할 수 있는 마귀도 창조했다. 가장 간교한 뱀을 창조한 동시에 얼마든지 사람에게 진리를 따라서 활동을 못하도록 꾈 수 있는 기능을 준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세운 것은 아무리 간교한 뱀이 꾀여도 진리의 법을 지키면 얼마든지 향상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에 의한 사랑이란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 법을 지키지 못하고 선악과를 먹는 데서부터가 현 사회를 이루는 타락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서를 기록한 것은 타락한 인생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을 목적 두고 쓴 글이다.

   2. 인간 타락과 향상

  가장 귀한 것이 인간이요 가장 아름다운 것이 인간이라고 보게 된다. 금일에 모든 인간들은 그 자체의 존귀성과 미의 세계를 자기의 타락한 그 입장에서 찾아보려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일이다(엡2:3). 왜냐하면 자기의 부족을 모르는 인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이 왜 타락했느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1) 인간 타락

  ① 인간은 질적으로 타락한 인간이다

  이것은 사람의 몸에 선악과의 질이 들어온 데서부터 이다. 선악과의 질을 받게 될 때에 자동적으로 수치, 공포, 불만 이것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것은 아담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즉시에 발생했던 것이다(창3:7-13).
  이때부터가 수치스러운 일, 원수에게 떨 일, 서로 불만을 가지는 일, 이것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향상의 가치를 잃고 점점 타락이라는 것을 피할 수 없이 가져 온 것이다(창4:1-12).

  ② 지식의 타락

  인간은 자기의 완전한 가치를 찾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께 있는 것인데 하나님의 완전성을 의심한 데서부터가 지식의 흑암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창3:4-6). 인간의 향상은 조물주는 어떻게 행하시는 자라는 것을 바로 아는 것이 아니라면 그 지식은 타락을 가져오는 자리를 자동적으로 갖게 되는 것이다(사47:10-11). 왜냐 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것은 사람의 최고의 가치를 달성하기까지 역사 해주시기 때문이다(엡4:13).

  ③ 기능의 타락

  인간은 동물에 국한된 썩어질 양식 하나를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 기능의 한계가 아니고 가장 위대한 이상적인 세계를 이루기 위하는 데가 한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물주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에 먼지 나는 세상에서 영원히 살라는 것이 목적이 아니요, 사람에게 기능을 주시어 영원한 세세 왕국을 이루기까지 진보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계22:1-5). 하나님은 인생에게 약속을 세운 것은 순종하는 자에게 초인간적인 기능을 주어서 역사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자기 힘에 의지하고 사는 것은 타락의 생활이다(사9:8-11).

  ④ 종교적인 타락

  종교라는 것은 타락한 인생이 향상할 수 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들이 질적으로, 지식으로, 기능으로 타락했다 하여도 하나님은 종교를 통하여 다시 근본을 복구하는 동시에 향상을 주자는 것이 종교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종교를 갖되 종교의 본능을 상실하고 탈선된 신앙 노선으로 흐를 때에 오히려 종교는 사람을 망치는 타락을 첨부시키게 되었다(습1:4-6). 그러므로 아담은 유일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종교를 갖고 인간 생활을 개척했던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하나님이 받아 주실 제사를 드리는 것이 목적인 동시에 그 제사를 통하여 고쳐지는 일, 새로워지는 일, 완전한 의의 열매를 맺는 일을 이루게 되는 것이 제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창4:4, 롬12:1-2). 그러나 인간들이 종교를 악용하여 자기의 죄의 질에 따라 소욕을 채우려 할 때에 오히려 탈선된 우상적인 종교로 말미암아 더 큰 화를 받게 된 것이 종말의 심판을 이루는 것이다(사66:3-6).

  ⑤ 도덕으로 오는 타락

  인간은 도덕으로서 가정 사회 국가를 이루는 것을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도덕을 떠난 가정이 될 때에 가정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열매가 되었고 사회는 피흘리는 전쟁으로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오히려 금수만도 못한 타락에 들어가는 것은 도덕 부패로 본다. 인생이라는 것은 도덕이 없는 사회라는 것은 오히려 인간이 인간을 망치는 비극을 가져 올 것뿐이다(미7:1-6).

  (2) 인간 향상

  ① 인생의 최고의 가치를 찾는 일

  인생이라는 것은 어떠한 길을 가야 끝을 바로 맺느냐는 것을 바로 알고 떠나는 데서부터 가치를 찾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가치라는 것은 끝을 바로 맺는 데만 있기 때문이다(빌3:14-16). 아무리 잠간의 고난이 있다 하여도 목적을 위한 고난은 오히려 영광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빛의 생활이니 빛이라는 것은 멀리 내다보는 소망을 주기 때문이다(롬8:16-1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빛으로 오신 것이다(요1:6-14). 세상에 제일 최고의 가치를 이룬 생활은 그리스도께서 말 구유에 탄생하셔서 빈곤의 생활에서 박해를 받은 생활에서 십자가의 악형을 받는데서 완전한 인생의 가치라는 것을 다시 찾아 주는 열매를 가져오는 것이 기독교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가치는 잠간의 고난에서 영원한 기쁨과 평화를 이루는 일 밖에는 인간에게는 더 없다는 것을 깨닫는 자가 되어야만 될 것이다(계5:9-10). 그러나 인간들이 수고를 하되 영원한 것을 찾지 못하는 수고라는 것은 오히려 후회를 가져오는 슬픔이 되고 말 것이다(계18:19).

  ② 완전한 지식을 찾는 일

  금일에 인간들은 과학적인 지식으로서 인간에 국한된 사회라는 것을 알고 나간다는 것은 결국에 유물론 공산당의 정치가 되고 말 것이다(단11:36-39). 왜냐 할 때 인간 과학적 지식에 최고 발달을 가져오는 데는 자동적으로 인간의 머리 속에 한계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물체를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지식도 필요 없는 것은 아니로되 그 지식을 가지고 더 높고 완전한 지식에 달성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가 되어야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통일된 사회가 올 것을 목적으로 두고 가르치는 것이 언약의 말씀이라는 것이다(사11:9). 지식은 인간의 두뇌로서 움직여야 할 지식도 있고(단12:4), 무소 불능의 조물주 하나님의 영적 활동으로서 오는 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세계를 아는 지식도 있는 것이니 우리는 과학적인 생활에서 목적을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를 이루기 위한 신의 역사를 순종할 때에 이것을 초인간적인 지식의 종교라는 것이다(마13:11). 세밀히 말하자면 지구상에서 사는 생활에 최고의 과학 발전은 최고의 하나님의 심판과 새 시대를 이루기 까지의 한 도구에 불과한 기계다(계11:18). 그러므로 기계에 국한된 인간이 아니고 영원한 영생의 생명을 목적 둔 것을 아는 것이 지식의 향상이라는 것이다(단12:10).

  ③ 기능의 향상

  인생은 기능이라는 데서 발전을 가져올 때에 최고의 미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사람은 기능적인 사람으로 창조하신 것이다(창1:28). 우리 사람은 초인간적인 신의 지배를 받게 되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다(엡2:2). 아무리 무신론자가 신의 존재를 부인한다 하여도 그 자체가 마귀의 도구가 된 생활이라고 본다(합1:11). 하나님은 모든 선지를 통하여 예언할 때에 신들의 신을 반대하는 자가 북방에 자리잡고 나왔다가 필연코 망할 것을 심판기라 했던 것이다(단11:36). 그러므로 짐승이라고 계시록에 말했다. 마귀의 최고의 미혹은 무신론이라고 본다(계13:1-2). 심판기에 무저갱에서 나온 흑암은 이 사상이다(계9:1-2). 그러므로 마귀의 도구로 쓰이는 짐승은 육 육 육이라 말한 것은 마귀의 기능이 짐승을 통하여 최고도로 발전할 것을 말했다(계13:3-4). 우리의 생활의 기능은 다음과 같이 향상될 수 있다. 사람이 물체에 국한된 기능을 목적하고 움직이는 생활은 향상을 가져 올 수 없는 타락의 생활이다(사3:1-8). 기능의 향상이라는 것은 이 한계를 넘어서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을 중생의 단계라고 한다(요3:5-7). 중생을 한 자에게 초인간적인 기능이 하나님께로 부여된다(행2:38-39). 인간의 자체는 신의 기능을 받을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승천할 때에 너희는 성신 권능을 받아서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부탁의 말씀을 하시고 그때부터 승천하신 주님께서 구름 타고 올 때까지 사람을 통하여 역사 하되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데까지 사람을 들어 쓰는 것이 기독교의 본능이라는 것이다(행1:8). 기독교는 이 본능을 상실할 때에 오히려 이방에게 밟히고 만다고 경고했던 것이다(계11:2). 신은 무소 불능의 자체를 가지고 계시지만은 언제나 그 기능을 사람에게 주어서 역사 하는 것을 영광으로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것이다(요14:12-13).

  ④ 종교적인 향상

  종교라는 것은 원시적인 종교도 있고 종말적인 종교도 있는 것이니 종교의 근본은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데서부터가 시발점이 되었다(창4:4). 이것은 죄진 인간이 종말적인 종교를 이루기까지 영자(影子)적인 종교에 불과했다(히10:8-14). 그때는 뚜렷한 의식이나 또는 법이나 언약의 말씀이 책이 없는 양심에서 움직이는데 불과한 종교다. 그러나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종교는 발전했고 양심이 정욕으로 흐르는 종교는 타락했던 것이다(롬1:21-23). 그러므로 기독교는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종교로서 흘러오는 데서 완전한 언약을 세우는 시대를 구약이라 하고 그 언약을 열매로 끝을 맺는 종교를 신약 시대라 하는 것이다(딤후1:3). 열매를 이루는 종교도 다음과 같이 향상한다. 중생을 목적한 종교 이것은 온 세계 인류가 사망 아래에서 죽은 영들을 살려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도록 하는 것을 기독교의 십자가의 도라 하는 것이다(요1:12). 그러나 온 세계 인류가 전멸되는 환난과 재앙이 올 때에 남은 종 남은 백성으로서 활동하는 역사를 새 일의 역사라는 진리다. 이것은 양심적인 종교가 승리를 이루는 즉 완전 결실을 이루는 지상 평화 왕국을 이루는 일을 말한다(사43:19-21). 그러므로 개인적인 종교가 민족적인 종교로 발전했고 민족적인 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했고 세계적인 종교가 완전히 평화 왕국으로 끝을 맺는 것이 종교의 발전이라는 것이다(사9:1-7).

  ⑤ 도덕적인 향상

  인간 도덕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발전할 수 있다.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생활이 없는 자도 인간을 상대하는 도덕이 있지마는 이것은 타락에 불과한 도덕 사회를 이룰 수도 있다(골2:22-23). 그러나 양심에서 하나님을 상대한 도덕에서만 향상을 보게 된다. 다시 말하면 부모에서부터 자녀의 축복을 하나님을 향한 양심적인 도덕에서 받게 되는 것이다(엡6:1-4). 그러므로 가정을 도덕에만 국한된 가정의 발전이 아니고 신의 축복을 목적 두고 신앙 양심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적인 부부가 될 적에 여기서부터 신의 축복은 그 가정에서부터 시작되게 된다(사44:1-5). 이것이 산 믿음에서 이루어진 아브라함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도덕은 양심 생활에서 필연적인 열매로 이루어지는 도덕이 있으니 이것은 신께서 인정하는 생활이 된다. 도덕을 위한 도덕이 아니고 신을 순종하는 양심에서 목적을 둔 도덕이기 때문이다(마6:1-4). 인생이라는 것은 신의 축복을 받음으로서만 영원한 가정적인 사회를 이룰 수가 있다(사49:19-23). 종교는 영혼을 목적 둔 것만이 아니고 지상에 완전한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여 신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고 미의 세계를 축복으로 받는 생활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축복이라는 것이다(사65:21-23). 그러므로 완전한 성남 성녀로서 이루어지는 도덕이 지상에 완전한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는 것으로 지상은 완전이라는 것을 이루게 된다(사60:15-22).

   3. 인간 난제와 해결

  (1) 시국 난제와 해결

  인생이라는 것은 그 시대 시대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어디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마24:34-51). 사람은 일년 자라는 풀과 같이 그 절기에 속한 사람이 아니요 그 시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시대가 변천되는 것은 인간 자력에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시대는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행1:6-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미리 선지를 통하여 앞으로 어떠한 시대가 온다는 것을 말씀 한대로 되어지는 것이니 그리스도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할 때부터가 하나님의 예언한 말씀이 글자대로 이루어지는 시대로 들어온 것이다(벧전1:20). 금일에 온 세계 인류가 다 평등을 찾고 민주적인 자유를 부르짖는 것은 근본이 세계 인류는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슥9:10). 그러나 금일에 와서 자유를 부르짖는 시대가 오히려 자유를 악용하는 부패가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나타나서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간판 밑에서 도저히 인심 악화를 수습할 수 없는 때가 온 것은 선지의 예언대로 인류 전멸이라는 심판기가 온 증거이며 도저히 시대가 평화를 가져올 수 없는 난제가 온 것이 하나님의 정한 때가 온 증거이며(계6:2-14) 이 시국에 어떠한 자가 되어야 살 길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계시록과 선지서에 가르친 말씀이다(계10:7). 그러므로 우리는 시국의 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를 바로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계22:6).

  (2) 사상 난제와 해결

  동물에게는 사상이라는 것이 없되 사람은 누구나 다 사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상이라는 것은 사람의 인생관에 의하여 각각 다르게 되는 것이다. 소위 공산 사상이라는 것은 인생관을 고등 동물로 보는 것이니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단11:37). 인생은 강자가 약자를 먹고 어떻게 하든지 기만적인 정책을 써서라도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자유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상은 죄도 심판도 없다는 것이니(단11:23-24) 이것은 종교를 아편화 시키는 것이니 이 사상이 들어갈 때 사람은 자연적 악해지고 무자비한 투쟁을 하게 된다(단11:32). 그와 반대로 참된 기독교 사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소망으로 아는 사상이다(사66:2, 18). 이미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사실과 개인적 인격적인 체험에서 이루어진 사실을 그날 그날 사는데서 열매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는 신앙 양심에서 합법적인 진리를 믿는 소망에서 신께서 남을 구원코자 하는 그 뜻을 목적하여 죽기까지 이 목적을 두고 싸우는 것을 기독교의 순교적인 사상이라 하는 것이다(계6:9-10). 이 사상은 하나님의 사랑에 이끌려 신의 감화를 받은 사람이 가진 신앙 사상이라는 것이다(요-서3:16). 그러므로 필연코 승리는 남을 살리고자 하는 사상이 조물주 하나님의 편이니 세계를 통일하는 승리를 보게 될 것이다(단7:18, 22). 금일에 사상이라는 것은 이것으로서 큰 대립을 가져오는데 끝까지 이 두 가지 사상에서 결전을 보게 될 것이다.

  (3) 인간 전쟁 난제와 해결

  전쟁이라는 것은 영토를 다투는 제국주의적인 침략적 전쟁도 있고 또는 진리의 사상 문제를 놓고 싸우는 전쟁도 있다. 이날까지의 역사적인 전쟁은 제국주의 정치적인 침략적 영토 전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서 전쟁의 끝이 아니고 선과 악의 대립으로 아마겟돈 전쟁으로 끝을 맺을 것이니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최고도로 악화된 인류 전멸이라는 비극을 가져올 전쟁의 무력 완비를 이루게 된 것은 성서를 보아서 악한 인간이 자멸이라는 인류가 끝을 맺는 전쟁이 되는 것이다(계16:14-16, 17:16).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를 통하여 온 세계 인류가 한 시간에 불타게 되는 것을 진노의 병기로 온 땅을 멸하게 된다고 말씀한 종말의 큰 화가 된다(사13:4-5). 그러므로 하나님은 악자를 들어서 악한 세상을 치고 불타서 망할 자를 하나님께서 없애는 재앙을 내리는데는 당신의 백성을 절대 보호하여 남은 자가 되게 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종말관에 끝이 되는 것이다(계15:1-4). 우리는 전쟁을 하되 남을 살리기 위하여 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는 반드시 승리하도록 해준다는 것이 기독교의 종말론에 신앙의 요지가 된다(계19:19-21, 미5:6-9). 전쟁은 사람의 맘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경륜 아래서 환난이 오게도 하고 없어지게도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계17:17).

  (4) 인간 정치 난제와 해결

  정치라는 것은 침략적 정치도 있고 민주적인 정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의 민주라는 것으로만 정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인심이 악화될 때에 민주주의라는 것은 다수를 따르는 것이 현실의 소위 투표 제도의 정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나 악자가 승리하는 다수라는 것은 오히려 악한 사상을 가진 자가 승리하는 정치 도구가 되고 말 것이다(합1:4). 그러므로 모든 선지는 부패된 사회의 종말은 포악한 자가 정치를 하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사19:1-4). 이제 이것이 말세 정치 난제라는 것이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고 잡아먹는 악화된 사회에 의인의 세력은 아무런 주권을 세우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심판기에 소위 망할 세상이라는 것이다(합1:13-17).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계 통일의 세세 왕권을 이룰 것을 말씀한 것이 기독교 역사에 종국을 짓는 지상 왕국이다(계17:14). 이것은 아무리 적은 수라도 의로운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하늘 권세와 땅의 권세를 주어서 인간의 정권이 그 앞에서 다 떨다가 망하게 될 것을 가르쳐서 그리스도의 지상 왕국이라고 하는 시온산 다윗 왕국 성도의 통치 시대라는 것이다(사24:14-23). 모든 선지는 말세의 북방 정치가 극도로 강해서 인력으로서 그 세력을 당할 수 없는 난제가 올 때에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다시 강림한다는 것을 말씀했으니(단12:1-3) 성경대로 그리스도가 탄생하시고 만민의 죄를 위하여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시고 성경대로 승천하시고 성경대로 온 세계 인류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성경대로 이 세상을 심판하여 성경대로 이루어지는 세계 의의 통치 시대가 온다고 말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상의 정권은 사람의 자유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장중에 있기 때문이다(사7장-9장).

  (5) 경제 난제와 해결

  금일에 과학 문명을 비롯하여 경제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옵1:3-4). 그러나 경제가 경제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적인 정권 아래 빈민의 쓰라림이라는 눈물의 호소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 경제 난제라 하는 것이다(사3:13-15). 앞으로 이러한 기회를 엿보는 공산당은 세계 인류를 허위 선전으로서 미혹시킬 우려가 없지 않다(단11:38-39). 배고픈 자에게 같이 먹게 한다는 간판 밑에서 자기 독재적인 정권 야욕을 가지고 세계 통일을 꿈꾸는 그 세력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을 성경에 가르쳤기 때문이다(단11:43-45).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미신화 시키고 자기의 힘으로 경제를 해결한다는 교만이기 때문이다. 경제의 활동은 인간 자력에만 있다는 것은 한 공상에 불과한 생각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에 예언하기를 인류 종말에 극도로 무서운 기근이 한재로 와서 모든 사람은 할 일이 없이된다고 가르친 말씀이 있다(사19:5-10). 이때에 특별 보호하는 땅에서 물과 양식을 공급받고 하나님의 양육을 받는 택민 보호의 진리가 모든 선지서에 기록되었다(사25:4, 26:5-7, 33:10-24). 경제적으로 남을 압박하고 교만한 인간들은 다 망하고 말 것을 가르쳤으니 앞으로의 경제는 특별 축복 속에서 보호받는 자 외에는 남지 못할 것을 분명히 가르쳤다(사23:18). 남은 자가 사는 새 땅의 축복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시대의 지상 축복을 가르쳤으니 경제 난제 해결은 어디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사60장).

  (6) 마귀 난제와 해결

  인간들은 마귀를 두려워하는 것이 인간이요(히2:14-15). 또는 마귀 미혹은 무엇인가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계12:9). 무신론자는 마귀가 없다고 하지만 그 자체 심령이 미혹 당한 심령이라고 보게 된다(계13:2-6). 그러면 마귀의 근본과 종말이 무엇이냐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스스로 계신 조물주 외에 있는 신은 다 피조물의 신이니 마귀를 창조한 자는 조물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창3:1, 계20:2-3). 그러면 조물주께서 마귀를 창조한 동기가 무엇이며 장차 어떻게 하실 것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① 악한 마귀를 만들어서 쓰는 목적은 악을 이루자는 목적이 아니고 의를 이루자는 목적이니 의라는 것은 아무리 악한 마귀가 꾀여도 의로우신 하나님의 법도를 순종하는 것을 의로 인정하기 때문이다(계12:7-11).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고 아무런 시험이 없이 무조건 일반적으로 다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한다는 것이 진리가 아니요 약속의 말씀을 인간에게 법으로 주는 동시에 그 말씀을 인간이 바로 믿고 지키지 못하도록 하는 마귀를 사용하여 악마의 말보다도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하는 자를 진실한 자라 의로운 자라 인정을 하고 이 사람들로 영생의 기업을 상속케 하는 생명 나무 열매와 생명 강물을 마시면서 세세 영광을 화려한 천국에서 길이 길이 누리게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기 때문이다(계21:5-7).

  ② 현재에 인간이 마귀를 무서워하고 순종하는 것은 마귀의 종말을 모르고 마귀는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는 인간들이 미혹 받고 순종하다가 멸망을 마귀와 같이 당한다(마25:41). 마귀를 도구로 쓰는 조물주께서 완전한 영광의 나라의 수가 찰 때에 마귀를 없애는 동시에 마귀의 말을 하나님 말씀보다 더 믿고 순종하는 자를 없앤다는 것이 인류 종말의 심판이라는 것이다(계14:9-11, 20:7-10).

   4. 인간의 주의와 인격

  (1) 자본주의와 인격

  인간이라는 것은 자본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인격이 자본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못산다는 범위에서 국한된다는 것은 빛이 아니고 흑암이라고 본다(사5:8-14).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자본을 위하여 인생을 낸 것이 아니고 모든 만물을 인류에게 사용할 특권을 맡긴 것이니 인격이 자본을 따른다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가 아니다(마6:31-32). 인격이 자본을 지배할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될 것인데 현실 사회가 자본주의라는 정치 아래서 남을 속이고 심지어 지도자까지도 뇌물을 받고 불의의 삯을 받고 심지어 위정적인 행동을 하여 백성의 피를 빤다는 것은 오히려 인간을 망치는 자본주의가 될 것이다(미3:3-6). 우리는 신의 축복이 자본이요 축복 속에서 준 자본을 인간 사회의 복리를 위하여 사용한다는 것이 아니라면 자본주의에 잘못된 생각을 가진 인격은 오히려 멸망의 자식이 될 것이다(암8:4-10).

  (2) 봉건주의와 인격

  인격이라는 것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라는 것이 대 자연을 창조한 신의 거룩한 뜻이니 이 원칙을 떠나서 어떤 자를 섬겨야만 살고 섬기지 않는다면 죽는다는 봉건이라는 것은 인류 사회를 발전보다도 오히려 개인적인 영리에 한 도구로 되는 불행을 가져올 것이다(사10:1-3).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 외에 딴것을 섬긴다는 것은 오히려 죄가 될 것이니 봉건주의적인 사회라 하는 것은 인생을 노예화시키는 폐단이 있게 되며 오히려 발전보다도 사람을 기계화시키는 퇴보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된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는 죄가 되고 사람이 사람을 섬기는 우상이 되므로 망치는 세상이 될 것이다(사31:1-4).
  (3) 공산주의와 인격

  우리는 먹기 위하여 사는 인생이 아니요 살기 위해서 사는 인생이다. 삶이라는 자체는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니 오늘의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짓밟고 빵으로만 산다는 주의에서 전 인류에게 하나같이 빵을 먹게 만든다는 것은 동물의 세계를 이룰 우려가 있다(계13:6-8). 공산이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그 축복을 받은 자가 물욕을 떠난 양심에서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준다는 것은 기독교 세계에도 있어야 할 일이다(행4:32-35). 그러나 하나님을 부인하고 진리를 짓밟고 남을 죽이고서 남의 것을 빼앗아서 먹자는 그 정신은 도둑의 정신이 된다. 그러므로 지금 북방에서 나오는 공산주의라는 것은 근본 사상이 사람을 동물화 시키는 사상이니 이 주의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짐승의 사상을 가지고 빵 한 조각을 위하여 움직이는 동물의 생활이 된다. 짐승을 먹이는 어떤 목장과 같이 한 사람이 먹이를 한데 모아 놓고 때를 따라 먹이를 주는 식이 된다(나2:8-13). 짐승이 일만하고 아무런 삯을 받지 않고 먹기만 하면 되는 식이다. 우리는 기독교의 원리를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하나같이 먹고 즐겁게 사는 것을 새 시대라고 보는 것이다(슥9:16-17).

  (4) 인본주의와 인격

  피조물된 인간이 조물주를 모르고 자기밖에 없다는 것은 한 교만에 불과한 인격이니 예를 들면 뚝배기가 토기장이가 필요 없다는 식이다(사45:9). 이 사상이라는 것은 너무나 좁고 얕고해서 자기 지식에 속은 인간이다(사47:10-11). 다시 말하자면 그릇이 좁은데다가 많은 것을 담을 수 없는 것 같이 조갑지에 불과한 두뇌에다가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세계의 것을 담는다는 것은 바닷물을 조갑지에 담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아를 찾되 자기의 인격적인 존재와 할 일을 바로 찾아서 신의 섭리를 신앙하는 인격을 부인하고 자기를 믿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교만이라고 보게 된다(사40:22).

  (5) 신비주의와 인격

  신비라는 것은 신의 세계에서 움직이는 한 표적과 증거를 따라서 이것만으로 만족을 삼는 인격이니 이러한 자들은 마귀의 미혹을 벗어날 수 없는 인격이다. 왜냐하면 마귀도 얼마든지 신비가 있기 때문이다(계13:13-15). 인간이 신비를 따른다는 것은 미신적인 종교의 생활이니 신앙이라는 자체는 합법적인 진리를 믿는 것이 아니고 신비만을 믿는다는 것은 신앙 정로가 아니고 미로에서 헤매는 인격이라고 보게 된다(마24:10-12). 예를 들면 술을 먹는 자가 맹목적으로 취하는 맛에 먹듯이 신비를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것은 마귀의 술을 먹는 행동이 될 것이다(사28:7-8). 신비를 부인할 수 없고 신비를 따르되 이것이 참신에서 오는 것이냐 거짓 신에서 오는 것이냐는 것을 분별치 못한 신비주의는 가정을 망치고 사회를 망치는 불행을 가져오게 된다(사8:20-22).

  (6) 복음주의와 인격

  복음이라는 것은 사람이 신을 찾는 일이 아니요 조물주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을 찾는 방법이다(롬1:1-7). 조물주는 목적을 위하여 천지 만물을 창조한 것이니 그 목적을 인간 자력으로서는 달성할 수 없음을 보고 신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그 목적을 달성한다는 언약의 말씀을 사람에게 기록하도록 한 것이 기독교의 성경이다(사34:16). 그러므로 복음주의라는 것은 조물주의 예정하신 뜻을 믿되 자기 주관에 붙이지 않고 신의 완전성을 믿되 완전 계약의 말씀을 그대로 읽고 듣고 지키는 생활이다(계1:3, 22:6). 이렇게 할 때에 신은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도록 신앙자에게 역사 해서 인간의 힘을 초월하고 조물주의 축복을 영적으로 육적으로 받게 되어 영육이 아울러 완전한 신과 동행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기독교 복음주의라 하는 것이다(계21:3-6)

   5. 인간의 주권과 생활

  (1) 경제 주권과 생활

  인간들은 하나같이 경제적인 주권을 위하여 불철 주야로 노력하는 것이 그 생활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의 과학이 발달되는데 따라서 경제적인 주권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활동하고 화려하게 생활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서 황금 만능을 부르짖고 있는 현실이다(계18:3). 그러나 인간 생활이 여기에 국한된 생활이라는 것은 완전한 열매를 거둘 수가 없는 것이니 이것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올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미6:10-12). 왜냐하면 누구나 다 이것을 위하여 싸우는 세상이니 생명을 잃어버리는 일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고 또는 크게 실패를 하는 것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니 인간이 경제 주권을 위하여 싸우는 생활이라는 것은 큰 개가 고기 한 덩어리를 놓고 서로 싸우는데 불과한 생활이다. 인생의 참된 열매는 이것을 초월한 주권을 찾는 것이 존귀라고 볼 수 있다(마6:33).

  (2) 정당 주권과 생활

  오늘의 소위 민주국가를 정당 정치라 한다. 당이라는 자체는 남을 살린다는 목적을 둔 것보다도 남을 죽이는 일을 하고라도 자기의 정권을 내 세운다는 것이 정치적인 야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당 주권에서 움직이는 생활은 자연적 무자비한 투쟁을 하는데 까지 이르게 될 때에 오히려 불행하게 가족 전멸 생활 파탄을 이루고 마는 비참도 있게 된다. 이러므로 정당 주권을 의지하고 사는 생활은 오히려 약자의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이러한 자들은 오히려 부자유스러운 생활을 해서라도 자기의 위신과 명예를 얻어 보려고 할 때에 양심을 떠난 생활에서 흑암이라는 세계를 영적으로 소유하게 된다. 남을 살리자는 목적에서 뭉쳐진 단체가 아니고는 다 흑암으로 본다(계13:10).

  (3) 교회 주권과 생활

  교회라는 것은 소수가 하나님을 상대하여 기도로 뭉쳐진 교회가 될 때에 순수한 진리 안에서 신성을 이루는 가장 빛나는 교회라고 하던 때도 있었지만 교회가 확장되어 큰 주권을 쥘 수가 있는 단계에 들어 갈 때에 하나님의 교회를 주권화 시키는 소위 교권이라는 것을 악용하게 될 때에 진리의 사람이 축출을 받고 하나님의 성신을 모독하는 일까지 있게 될 때에 신성한 예루살렘 교회가 바벨론에게 망한 사실이다. 또는 회회교에 중심지가 된 비극이나 말세에 신령한 교회가 음녀적인 협상주의로 들어가는 비극도 있게 되므로 교회의 주권을 악용하는 거짓 선지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가르친 것이 모든 선지의 예언의 경고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요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니 주권은 하나님께 있고 진리 하나만을 바로 가르치되 진리의 주권을 잃지 않아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사수하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이다(요2서8-11). 그러므로 교회의 주권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은 오히려 미운 물건이 될 수도 있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집에 도둑이기 때문이다(요3서9-10).

  (4) 시민 주권과 생활

  참된 자유는 시민된 주권을 바로 찾고 움직이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라고 한다. 참된 민주주의라는 것은 시민 주권의 생활이 향상될 때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자동적으로 성립된다(딤전2:1-2). 백성은 개인적인 인격 하나를 바로 찾아 작은 데서부터 큰 것에 이르는 것을 질서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정당 주권이 강하다 해도 시민 주권 앞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니 정당 주권자가 시민을 억압하거나 또는 이용을 한다면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라고 볼 수 없다. 시민이 양심 사상이 바로선 인격을 소유하는 데서부터가 모든 인류가 복리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요소가 될 것이니 시민의 주권을 바로 찾을 수 있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과학적인 교훈으로만은 불가능하고 양심과 사상을 살려주는 참된 진리의 활동이 필요한 것이다(사3:8). 왜냐 할 때에 진리라는 것은 양심과 사상을 부활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딤전1:5). 시민의 인격은 도덕에 있지 않고 진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리 안에서 개인적인 인격을 소유 한데서 이상적인 부부가 이루어지고(엡5:22-23) 이상적인 부부가 근본된 가정에서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게 되므로 시민권을 바로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인격을 출생케 하는 것이다(엡6:4). 아무리 세계를 움직이는 영웅이라 하더라도 근본이 바로선 가정에서부터 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시민의 주권이 경제에 따라서만 움직인다는 것은 흙과 같이 흩어질 것이로되 진리로 뭉쳐진 가정으로서 이루어진 사회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강철같이 강해질 수가 있다(미4:13).

  (5) 성도의 주권과 생활

  성도라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만나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도덕이나 의식이나 문학이나 과학을 초월한 세계에서 활동하는 생활이기 때문이다(골3:1-3). 그러므로 성도의 주권이라는 것은 하늘에 속한 주권이니 이것을 빼앗을 자는 전혀 없다(롬8:31-39). 이 주권은 하나님이 움직여 주는 것이니 아무리 소수라도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주권이다(단7:18-22). 그러므로 바벨론 느브갓네살이 강했지만 3·4인의 청년 앞에 머리를 숙이었고 아무리 세계 인류가 다 대적한다 해도 이상적인 새로운 시대를 정복할 주권은 성도에게 있다. 이러한 주권을 가진 생활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3대 요소가 있다.

  ① 하나님의 비밀을 전부 아는 지식에서 움직이는 생활이다(빌3:8-12). 이 생활이라는 것은 인간이 볼 때는 어리석고 약해 보이지만 최후의 승리를 가져오는 열매를 보게 된다(사41:8-20).

  ② 영적으로 사는 생활이다. 영이라는 것은 최고의 인격을 이루는 데서만 활동하는 세계를 말한다. 왜냐 할 때에 조물주는 사람을 움직일 때에 영을 통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다(사58:10). 인간이 육으로만 사는 인간도 있고 두뇌로 사는 인간도 있고 영으로 사는 인간도 있으니 영적 활동이 있을 때에 두뇌도 몸도 바로 움직이는 것을 성도의 생활이라는 것이다(요3서2절).

  ③ 능력에 속한 생활이다. 이 생활은 능력을 믿는 생활만이 아니고 친히 받아서 능력의 힘에 이끌리어 행하는 것을 말한다(골1:29). 인간들은 물질의 힘이나 사람의 권력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활이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신의 능력을 받아서 움직이는 자는 역사적으로 심히 적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인류 종말의 끝을 맺는 것은 능력의 사람으로서 새 시대를 이루는 승리를 볼 것이니 성도의 주권이 완전한 승리를 보게 된다는 것이 성서의 결론을 짓는 진리가 된다(계2:25-27).

   6. 인간의 요구와 종말

  인간이라는 것은 누구나 무엇을 요구하는 것만은 없는 자가 없다. 그러나 그 요구라는 것이 각각 다르되 어떠한 요구를 가져야 인간 종말의 끝을 바로 맺을 것이냐 하는 것을 분명히 아는 것을 지혜라 하는 것이다. 이제 요구와 종말에 대하여 구분을 짓는다면 다음과 같이 볼 수가 있다.

  ① 식물 세계에서 요구하는 것은 소리 없이 찾고 있는 수분에 따라오는 질소 인산 가리 일 것이다. 이것을 찾기 위하여 식물의 뿌리는 어디든지 깊이 세포적인 세력으로 뚫고 들어간다. 그 힘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그 힘에 의하여 모든 동물계가 먹을 수 있는 열매를 주고 있다(창1:29).

  ② 동물계에서 찾고 있는 요구는 먹을 것을 찾되 식물에서 활동하는 열매를 찾고 있다. 이것은 먹으면 살고 안 먹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은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을 수도 있는 것이 동물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이러한 세계에서만 움직인다는 것은 결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볼 때에 오히려 동물보다도 비극을 가져온다는 것을 인간들은 모르고 있다. 먹을 것을 찾기 위하여 죄를 짓고 죄의 결과가 무엇이냐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악한 인간이라는 것이다(사3:9). 그러므로 이러한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없애는 것이 종말의 심판이라는 것이다(암9:8). 우리는 무엇을 구함으로서 결말을 바로 맺을 것이냐에 대하여 분명히 가르쳐 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사45:6-7). 오늘의 많은 종교가 있지마는 인간의 요구와 종말을 바로 가르치지 못한다면 이것이 소위 미신적인 종교라 하는 것이다(사44:9-20). 미신이라는 것은 결말을 똑똑히 모르고 덮어놓고 구하는 것을 가르쳤다. 기도라는 것은 무엇을 구하는 것을 바로 찾지 못하면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일도 있다. 기도라는 것은 무엇을 구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니 이것은 동물은 가질 수 없고 사람에게만 있는 종교성이란 것이다(행17:22-26). 종교라는 것은 사람이 무엇을 찾아보는데서 이루어진 종교도 있고 조물주께서 인생을 긍휼히 보고 친히 인생에게 무엇을 구하든지 준다는 사랑에서 어떠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구하면 된다는 법을 가르친 것을 기독교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는 이 진리대로 순종하는 생활에서 구할 때에 신앙자로서 직접 응답을 받게 되는 것을 참된 종교인의 산 체험이라는 것이다(요1서 5:14-15). 만일 신께서 말씀 한대로 이루어 주는 일이 없다면 심판은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거짓이 있는 신이 의로운 심판을 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참된 요구는 진리에 따라 구하는 것이요 결과는 약속의 말씀을 세우신 하나님께서 완전히 이루어 줄 것이니 이것을 아름다운 새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사49:8-13).
                †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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