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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재] 쿠바(Cuba)로 가는 지름길
2017년 07월30일  
변호사 출신의 카스트로와 의사 출신의 체게바라가 쿠바를 얼마나 ‘엉망’으로 만들어놨는지 알아보자. 쿠바는 라틴아메리카에서 현재까지 존속하는 유일한 공산주의(共産主義) 국가이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共産主義 이전의 쿠바는 낙후됐거나 농업이 주류를 이루는 국가가 아니었다. 생활수준은 석유(石油)가 주된 수입원으로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2위로 높았다. 국민 대다수가 글을 읽을 줄 알았으며 도시에서 거주했다. 설탕에 경제를 의존했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 설탕은 쿠바의 주요 수출품이었으나 설탕으로 인한 수입은 전체 국민소득의 3분 1도 안됐다.

다시 말해 쿠바혁명의 전제조건들이라고 하는 가난과 낙후성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카스트로는 좌익(左翼)에 공감을 나타내긴 했지만 처음부터 공산주의(共産主義者)는 아니었다. 그는 이념(理念)이 없었던 인물로 권력에 대한 집착만 매우 강했던 인물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사회주의자 체게바라가 그에게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불어넣은 장본인이다.

카스트로는 체게바라 주도 아래 사회 불만 계층을 결집시켜 민중혁명(民衆革命)을 통해 독재자가 된 이후 좌익(左翼)으로 진로를 바꾼 케이스이다. 카스트로는 집권과 함께 일당독재(一黨獨裁) 체제를 채택했고, 토지개혁(土地改革)을 급진적으로 실시했다. 1960년 소련의 사주 하에 쿠바 내 미국 재산을 몰수 했다.

카스트로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 따르면, 소련은 붕괴 전까지 무상으로 100억 달러의 군사 장비를 쿠바에 주었다. 쿠바의 경제는 모스크바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농업부문의 30퍼센트는 중소규모의 농민들이 차지했다. 당(黨)은 정치를 독점했으며 국가가 통제하는 노조에 강제로 가입한 노동자들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을 잃었다.

학교교육, 의약, 주택건설 등 사회복지부문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는 하나 필요한 모든 자금은 주로 공산주의(共産主義) 이전시대 경제로부터 얻은 재산으로 충당했다. 체게바라와 카스트로는 자신들의 반대자들을 두 가지 방식으로 처리했다. 상당수의 중산층에게는 이민을 허용했고, 나머지는 소련식 혁명재판소와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냈다.

체게바라는 최소한 1만 4천명을 처형한 대량학살범이자 미(美)본토에서 건물 폭파를 시도한 테러범이다. ‘흑인자유전선’(Black Liberation Front)이란 지하단체를 이끌던 미국의 로버트 스틸 콜리어는 1964년 8월에 쿠바로 가서 게바라를 만났으며, 그 해 말 게바라가 뉴욕을 방문하던 중 게바라를 다시 만나 ‘자유의 여신상’ 등을 폭파하는 계획을 의논했다.

그러나 콜리어의 그룹에 경찰관이 잠입해 있어서 이들은 폭발을 일으키기 전에 검거됐다(Humberto Fontava著, 《Exposing the Real Che Guevara》 「On This Day in NYC History February 16」).

1957년 1월, 카스트로는 정부군 첩자 노릇을 한 농민 게릴라 한명을 처형하도록 자신의 경호원에게 지시한 적이 있다. 경호원이 머뭇거리자 옆에 있던 체게바라는 권총을 빼어 들어 게릴라의 관자놀이를 쐈다. 이를 본 카스트로는 집권 후 소련에서와 같은 숙정을 할 때 게바라가 유용할 것임을 알아 차렸다. 이후 카스트로는 라 카바나에 정치수용소를 만들고 게바라를 책임자로 임명했다.

라 카바나에선 게바라의 총살대가 바티스타 정부의 장교와 하사관은 물론이고 가톨릭 사제(司祭), 지식인, 공무원 등 선량한 양민을 수없이 사살했다. 그는 저항할 힘도 없는 사람들을 권총으로 직접 사살하기를 즐겼다. 게바라는 어린 소녀와 임신한 여성도 직접 사살했다(Humberto Fontava著, 《Exposing the Real Che Guevara》).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대개 스스로를 신격화해 배후에서 활동하기를 좋아했는데, 체게바라와 카스트로는 달랐다. 이들은 어느 곳에서나 있었고, 강제로 연설을 듣게 된 청중들에게 몇 시간씩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놓았다. 이들은 연설 속에서 청중들을 감언(甘言)으로 구워삶고, 고무시키고, 협박했다. 특히 카스트로의 말은 미국에 집중됐다. 그는 美國을 괴물로 만들었고 쿠바에서 잘못된 모든 일을 美國 탓으로 돌렸다. 생활수준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졌다.

체게바라와 카스트로는 가난한 농민의 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 인물은 매우 부유한 취향을 갖고 있었다. 체게바라는 카스트로와 함께 아바나에 입성한 후 바닷가에 위치한 크고 호화로운 저택을 차지해서 새로 결혼한 백인 아내와 함께 귀족적 삶을 즐겼다.

오늘날 쿠바의 중요한 수입원은 외국인 관광객이 뿌리는 달러이다. 정작 게바라를 동경해서 쿠바를 찾은 젊은이들은 쿠바 사람들의 삶을 보고 환상에서 깨어난다. 현재 쿠바를 찾는 외국인들은 상당수가 섹스 관광객이다. 1992년 카스트로는 국회에서 쿠바의 에이즈(AIDS) 발병률이 세계에게 가장 낮다고 선언함으로써 쿠바가 매춘에 있어 유리하다는 것을 자랑했다.

1999년 170만 명의 외국인을 불러들인 매춘(賣春)촉진운동으로 말미암아 쿠바는 섹스관광에서 세계최대 방문지가 됐다. 공산화 반세기 만에 세계 최대 매춘국가로 전락한 것이다. 나라를 세우기는 어렵다. 그러나 망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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