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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재] 조총련계 조선대학교 前 부학장의 고백
2017년 08월23일  
조대 부학장으로 23년간 근무했던 일본 최고의 ‘주체사상’ 전문가로 알려진 박용곤(89세) 씨. 늘 잔잔한 웃음을 잃지 않는 노학자이다. 그는 2017년 3월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어느 재일동포 사회과학자의 산책>을 출판했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1960년대 총련, 조대 내에 몰아쳤던 극심한 권력투쟁 광풍에 휩쓸려 노이로제가 되어 자살까지 생각했다는 것이다.

1972년 북조선의 지시로 김일성의 환갑 축하를 위해 조대생 200명을 '조공물'처럼 북으로 보낸 내막이 있다. 그리고 박 씨 자신이 평생을 연구했던 주체사상은 김정일에 의해 왜곡되어 김일성 신격화에 이용됐다.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1960년 조대가 고다이라의 신캠퍼스로 옮긴 이듬해, 정경학부 교원이 되어 학부장, 부학장을 역임했다. 총련 산하 재일본조선사회과학자협회(사협)의 회장직을 10년 지냈다.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와도 가깝게 지냈다.

무수한 총련 간부가 배출된 조대 정경학부에서 제자는 수천 명으로 총련 중앙의 현 간부들의 경우에도 그의 지도를 받은 자가 많다. 그는 조대의 '만물박사'라 할수 있는 인물이다. 조대의 초대학장으로 이후 종신 명예총장이 된 한덕수로부터는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1948년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밀항하여 아이치대에서 경제학을 배운 박 씨는 일본인 아내와 귀국사업으로 북한행을 결심했으나, 1960년 총련 중앙에서 조대 확충을 위해 교원이 될 것을 명령받았다. 담당과목은  조선경제사, 경제원론 등이었다.

“일본에 남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조선의 관습이나 음식을 몰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총련 중앙의 결정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대 부임을 앞두고 인사차 학교를 갔던 박 씨는 돌연 굴욕적인 세례를 당했다.

<어느 재일동포 사회과학자의 산책>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조대 교무부장은 입을 열자마자 “박용곤 선생을 조직이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인 처와는 헤어져야 할 겁니다. 이것은 충고입니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나는 그에게 대꾸했다. “출세를 위해 아이치대를 그만두고, 조대에 온 것이 아닙니다. 조선의 학생을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에 왔습니다. 아내와 헤어질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나는 갑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조대의 초대, 이대, 삼대 학장 모두 일본인이나 백계 러시아인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학장이 되기 전에 이혼을 했다.>

같은 입장의 총련간부도 비슷한 조치가 내려졌다. 비슷한 시기 조대의 강사로 근무했던 러시아 문학자 스미 케이코(角圭子)는 총련 중앙 간부였던 남편 정우택(鄭雨澤)과 헤어진 뒤, 조대 강사직도 함께 잃게 됐다. 그녀는 이를 자신의 저서 <정우택의 처: 안녕이라고 말하지마>에 기록을 남겼다.

조대에서는 철저히 '일본과의 관계'가 문제시 되었다. 박 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비록 우수한 학생이라도 어머니가 일본인이면 영예의 표시라 할 수 있는 칭호를 받을 수 없다. 간부양성의 정경학부는 특히 엄격했다. 아무리 총련 중앙에 제안을 해도 안 된다. 내 경우도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에, 그러한 학생들을 보는 게 마음 아팠다.”

그 이후에도 박 씨에게는 '일본인 처' 문제가 따라다녔다. 학장 승진 문제가 나오면 아내의 문제와 함께 지역감정의 대립이 심한 '전라도 출신' 문제가 거론됐다. 호남 출신이 조대 학장이 되면 유력 상공인 등이 많은 영남 출신들의 기부금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년을 앞두고 박 씨는 한덕수로부터 '최후의 충고'를 받았다.

“학교 경영의 문제(전라도 출신)는 내 자신(한덕수)이 어떻게든 보조하겠다. 그러나 '민족교육의 최고학부인 조대의 학장 부인이 '일본인'이라면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

즉, 일본인 아내와 이혼하면 총장으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 씨는 이를 거절했다.

“나는 지금의 상황(부학장)으로 족합니다. 역할을 다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23년 동안 부학장으로 근무하면서 박 씨는 조대 학장이 되는 날은 결국 오지 않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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