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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 7週忌(주기) 黃長燁 선생 추억
趙甲濟
2017년 10월11일  
어제는 黃長燁 선생 별세 7週忌가 되는 날이었다.


“내가 오판을 했습니다.”
  
2010년 6월 서울 강남 한 사무실에서 전 북한노동당 비서 黃長燁 선생의 '논리학'(이신철 박사와 共著·시대정신)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필자는 사회를 보았다. 黃 선생은 1997년에 한국에 온 이후 20여권의 著書(저서)를 남겼다. 독창적인 '인간 중심 철학'을 완성해간 과정이었다.

출판기념회 시작 전에 사무실에서 만난 黃 선생은 예의 端雅한 모습이었다. 그는 내 손을 꼭 잡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천안함 爆沈 사건이 나고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는 것을 보고 ‘이번엔 김정일이 誤算(오산)을 했구나’라고 생각하였어요. 그런데 내가 誤判(오판)을 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민들 사이에서 전쟁 공포증이 이렇게 강한 줄 미처 몰랐습니다. 정부의 한 要人(요인)이 나를 찾아와 이야기하던 끝에 이렇게 말합디다.

‘북한을 너무 몰아붙이면 몰린 쥐처럼 고양이를 물지 않을까요?’

하도 기가 막혀 내가 ‘누가 고양이고, 누가 쥐인가?’라고 물었어요. 우리가 휴전선에서 對北방송을 하겠다고 하면 저들은 ‘우리도 對南방송 하겠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 확성기를 향하여 총을 쏘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누가 고양이고 누가 쥐입니까?'

그는 출판기념회 答辭(답사)를 통하여 '내가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다'고 걱정하였다. 여진족 30만 명이 거대한 인구를 가진 중국을 정복, 淸(청)을 세운 사실을 소개하면서 “천안함 爆沈이 북한소행이 아니라는 사람이 스무 명이라도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20~30%가 믿지 않는다니 이게 무슨 나라입니까? 이게 무슨 민주국가입니까?”라고 절규했다.

그는 '한국이 미국을 떠나서 과연 버틸 수 있습니까? 아무리 거리에 자동차가 우글우글해도 思想戰(사상전)에서 지면 모든 게 끝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뒤돌아보면, 遺言(유언)같은 발언이었다.
  

“세 사람부터 뭉칩시다.”
  
그해 8월 黃 선생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일요일 서울 강남 사무실을 찾았다. 경호 경찰관이 안내 하여 들어갔다. 혼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첫 마디가 충격적이었다.

“우리 세 사람이 이제부터는 목숨을 걸고 싸웁시다.”

그가 말한 세 사람은 자신과 金東吉 선생, 그리고 필자였다. 黃 선생은 절박한 말투였다. 북한정세가 급변하고 있는데 남한에선 이러고 있으니 답답하다면서 “먼저 우리 세 사람이 형제적, 동지적, 戰士的 관계로 뭉치자”는 것이었다. 뭉쳐서 무얼 하자는 것보다는 뭉치고 보자는 생각이 앞서 있었다.

이날 黃 선생은 이례적으로 점심 식사를 불고기로 했다. 하루 한 끼밖에 먹지 않는 분인데 필자를 위하여 시간을 많이 냈다. 그가 공개된 식당에 갈 때는 경호팀이 동행하므로 번잡해진다. 식사를 하면서 黃 선생은 김일성에 대하여 인간적 장점과 함께 致命的 평가를 내렸다.

'김일성은 俗物이었습니다. 스탈린과 毛澤東은 악당이었지만 한 구석엔 영웅적 풍모가 있었어요. 가족을 편애하지 않았습니다.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권력을 넘기더니 나중엔 아들 눈치를 보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어느 자리에서 김일성이 爲民해야 한다고 연설을 하는데 이를 듣고 있던 김정일이 저의 귀에다 대고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黃 선생, 爲民이 다 뭡니까? 인민에겐 무섭게 대해야 돼요.''

黃 선생은 김일성에 대한 인간적 감정과 역사적 평가를 명확히 구분하였다. 2001년 책(‘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에서 그는 이렇게 비판하였다.

<그는 자기 아들의 권력 앞에 아부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마지막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정권을 아들에게 넘겨줌으로써 김정일과 함께 수치스러운 길을 걷게 되었으며, 그의 한 生의 전반부까지도 다 망쳐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함께 싸우고 함께 죽는다.”
  
그 다음 주 金東吉 선생을 만나 黃 선생의 뜻을 전했다. 즉석에서 “좋다”고 했다. 열흘 뒤 金 선생 댁에서 세 사람이 모였다. 黃 선생은 “맹세문을 만들자”고 했다. 문장은 필자가 준비하기로 하였다. 며칠 뒤 黃 선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맹세문에 형제적, 동지적, 戰士的 관계로 뭉친다’는 말을 꼭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戰士的’이란 말이 좀 과격한 것 같아 참고하겠다고만 이야기하였다. 지난 9월 초 김동길 선생 댁에서 우리 세 사람이 만났을 때 필자가 내어놓은 草案은 이러하였다.

<誓約: 한반도의 守舊반동 세력을 제거하고 自由統一을 이룩하여 一流국가를 건설함으로써 모든 국민들에게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 이 시대의 역사적 사명이다. 우리 세 사람은 진실-正義-자유의 원칙에 입각하여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同志的·형제적 관계로서 함께 일하고 함께 싸울 것을 다짐한다.>

黃 선생은 이렇게 고치자고 했다. “함께 일하고, 함께 싸우고, 함께 죽을 것을 다짐한다.” 그 순간 필자는 ‘함께 죽는다’는 맹세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란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이 그 대목을 강조하니 그 방향으로 고쳐오겠다고 하였다.

그해 10월2일 金東吉 교수 82회 생신 축하 모임이 있었다. 집 앞에 천막을 쳐놓고 냉면, 빈대떡을 내어놓았다. 黃長燁 선생도 참석하였다. 필자는 “동지적·형제적 관계로서 함께 일하고, 함께 싸우고, 함께 죽을 것을 다짐한다”는 문장을 담은 誓約文 초안 봉투를 건넸다. 봉투를 받은 黃 선생의 “곧 만납시다”라는 말이 이승의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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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이 되고 피가 되는 黃長燁 語錄

   '사회주의는 새것의 가면을 쓴 낡은 것이다.'
  
                                                                                                 趙甲濟
  
1. 수령지배체제에 대하여
  
*金正日은 개인의 이익과 힘만을 믿는 인간이므로 큰 힘 앞에서는 반드시 굴복할 존재이다.

*김정일이 자기가 통치하는 朝鮮이 없는 地球(지구)는 필요없다고 한 폭언은 바로 그의 수령절대주의가 수령의 개인 이기주의의 극치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령은 인간에 대한 지배권과 재산에 대한 처분권을 독점하고 있다.
  
*사람의 사상을 지배하게 되면 사람 자체를 지배하게 된다. 북한통치자들은 인민들의 사상을 지배함으로써 인민들을 자기들의 사상적 노예로 만들고 있다. 김일성이 사망하였을 때 온 북한 땅이 울음 바다가 되었는데 이것은 북한인민들이 제 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김정일의 정신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김정일이 9개월 동안이나 식량배급을 주지 않아 온 식구가 굶주려 누워 있게 되었다면 김정일은 자기들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원수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김정일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고 있는 군수공장 노동자들이 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북한 인민들은 몸은 비록 자기의 것인 것같이 보이지만 머리는 김일성-김정일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복무하고 있다.
  
*김정일은 이런 말을 했다. '동무들에게서 수령의 신임을 떼놓으면 단순한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김정일은 조선민족을 '김일성 민족'이라고 하며 자기가 곧 조국이라고까지 노래하게 하고 있다.

*마르크스 주의는 無識(무식)한 사람이 有識(유식)한 사람을 지도해야 한다고 했다. 지도할 수 있는 사상과 문화가 없으니 관료주의적 방법, 독재적 방법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2. 북한정권 붕괴 전략
  
*북한의 수령체제를 붕괴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되는 방향으로 경제원조를 해주어야 한다.

*남북관계는 누가 민족을 대표하는가 하는 것을 놓고 벌이는 권력투쟁이다. 민족주의를 버리면 독재와 민주주의는 평화공존할 수 있으나 (양측이 모두) 민족주의 입장에서 통일을 至上의 과업으로 내세우고 있는 조건에서는 수령절대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립과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다.

*남북 이념 대결의 본질은 민족내부간의 不和가 아니라 독재와 민주주의 체제간의 양립할 수 없는 대립에서 생긴 것이다.

*북한의 정치적 독재체제를 붕괴시키려면 막대한 군사력이 동원되어야 하며, 북한의 경제적 독재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경제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북한의 사상적 개방을 위하여서는 이러한 막대한 비용이 필요없다. 아마 비용면에서 따진다면 정치, 경제적 붕괴를 위하여 필요한 비용의 100분의 1도 들지 않을 것이다.

*독재 국가가 인권문제를 접수하는 것은 스스로 독재를 죽이는 독약을 먹는 것이다.

*이 점에서도 우리는 냉전 시기의 민주주의 전략가들의 모범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1975년 헬싱키 회의에서 소련이 서방 세계가 경제-기술적인 원조를 해줄 수 있다는 약속을 조건으로 하여 소련이 인권선언에 조인하는 양보를 얻어냈으며, 이것을 계기로 소련에 인권사상이 대대적으로 들어가 소련의 사상적 붕괴를 촉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북한에서 인권유린의 근본화근은 수령절대주의에 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인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면 수령절대주의를 허물어버리는 길밖에 없다.

*평화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평화적 방법으로 적을 돕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 조건에서 북한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은 다 평화적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북한통치자들은 내부적으로는 평화통일이나 평화공존에 대해서는 말도 못하게 하지만 남한 국민들에게는 평화에 대하여 소리높이 강조하여 남한 국민들이 평화의 기분에 사로잡히도록 하려고 한다. 즉, 북한인민은 남한 국민을 적대시하게 하지만 남한 국민은 북한 인민을 한겨레로 생각하게 하자는 것이다. 북한통치자들의 평화전략과 범민족 전략은 남한 국민을 정신적으로 무장해체시키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3. 김정일을 편드는 자들에게
  
*김정일은 남한에게 불리한 것은 자연재해까지 포함하여 다 좋아하고 오직 남한을 망하게 하는 방법만을 생각하고 있다.

*가까이 있는 북한인민들을 살륙하고 굶겨죽이는 김정일에게 어떻게 멀리 떨어져 있는 남한 동포들에 대한 민족애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누가 수백 만 인민을 굶어죽게 하고 사람의 고기까지 먹게 만들었는가. 누가 정든 고향을 등지고 얻어먹기 위하여 10여만 명이 떼를 지어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는 모험을 감행하게 만들었는가. 그것은 바로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만큼도 여기지 않는 북한 통치집단이며 모든 권력과 財力을 독차지 하고 있는 위대한 장군인 김정일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의식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김정일과 함께 역사 앞 응당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는 새것의 가면을 쓴 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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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長燁 선생이야말로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이념을 '공동체의 利害관계에 대한 自覺'이라고 정의한 분이다. 黃 선생은 김정일 정권뿐 아니라 김대중과 從北세력을 공동체의 敵으로 보았다.
                                                                                                         趙甲濟
  
故 黃長燁 선생의 무기는 말이었다. 그의 말은 이념과 진실에 근거하니 힘이 있었다. 黃 선생은 남북대결의 본질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봉건주의의 대결이다'고 요약하였다. 그는 사회주의를 '새것의 가면을 쓴 낡은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남북관계의 본질을, '누가 민족을 대표하는가 하는 것을 놓고 벌이는 권력투쟁'이라고 설명하였다. 黃 선생은, 이념을 '공동체의 利害(이해)관계에 대한 自覺(자각)'이라고 한 분이다. 黃 선생은 김정일 정권뿐 아니라 김대중과 從北세력을 공동체의 敵으로 보았다.
  
2001년 9월, 그의 글을 월간조선에서 책으로 펴낼 때 나는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

이 책 표지엔 '김정일이 햇볕을 인질로 잡았다'란 副題(부제) 아래 黃 선생의 글이 인용되어 있었다.
'김정일은 '동무들에게서 수령의 신임을 떼어놓으면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對南공작원용 저격무기를 개발할 때 개 대신 정치범을 실험대상으로 삼도록 명령했다. 민족반역자 김정을 통일의 파트너라고 치켜세우는 서울의 수많은 '천재'들로 인해 나는 요사이 머리가 아프다. 아마도 그들이 풍기는 젖비린내 때문인 것 같다.'
  
黃 선생은 김정일이 고깃덩어리 이야기를 들을 때 이렇게 생각하였다고 한다.
'만일 우리가 고깃덩이라면 너 또한 권력을 떠나서는 인민의 심판을 받아 亂刺(난자)당해 마땅한 고깃덩이이다.'
  
黃 선생은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라는 책 제목을 좋아하였다. 그가 가장 미워한 사람은 김정일과 김대중이었다. 노무현은 김대중의 제자 정도로 보았다. 김대중 정권 시절에도 그는 감시망을 뚫고 글을 써서 외부에 내보냈는데, 현직 대통령을 '민족반역자와 결탁한 자'라고 간주하였다.
  
김대중 정권은 黃 선생의 訪美를 막았다. 갑갑한 상황에서 낸 上記 책의 소개글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그의 무기는 글뿐이다. 이 글은 김정일에게 그가 죽어서 지낼 수 없음을 선언한 일종의 선전포고일 것이고, 김대중 정부 사람들에겐 '민족의 양심상 절대로 침묵할 수 없음'을 통보한 내용증명서일 것이다. 김정일의 폭력과 김대중의 환상과 親北지식인들의 위선에 맞선 황장엽의 말과 글에 담긴 至誠의 知性을 이 민족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01년 여름 黃 선생은 자신을 비판한 이종석씨를 비판한 글을 돌린 적이 있다. 끝은 이러하였다.
  
<나는 북한에 있을 때 세상에는 절대적인 천재가 한 사람밖에 없다는 주장을 반대해보려고 헛되이 많은 애를 썼지만, 여기 남한에 와서는 천재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들이 풍기는 냄새 때문이다. 아마도 젖비린내인 것 같다.>
  
별세 며칠 전 黃 선생은 이렇게 말하였다.
  
'죽은 민족반역자들에게는 후손까지 내력을 캐는 사람들이 어째서 산 반역자를 못 본 척하는가? 지금 그는 도적의 지위를 3대째 물려주기 위하여 철부지에게 대장감투를 씌워놓고 만세를 부르라고 인민을 우롱, 민족을 망신시키고 있다.'
  
이 말이 마지막 語錄(어록)이 되었다.
  
黃 선생은 북한정권의 지배층의 생각과 행태와 전략에 대하여 가장 깊은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준 분이다. 2009년 6월30일에 있었던 출판기념회에서 黃 선생은 아웅산 테러에 대하여 재미있는 秘話(비화)를 소개하였다. 북한 소행임을 확인한 미얀마가 북한과 국교(國交)를 단절하고, 미국 일본 등 국제사회의 對北제재가 들어가자 당황한 북한 수뇌부는 공작원을 원망했다고 한다. 그들은“왜 땅을 파고 숨어 있지 않고 나돌아 다니다가 잡혔는가”라고 불평하기도 했다.
  
어느 날 金日成이 金正日, 黃長燁, 허담, 金容淳과 만난 자리에서 말하였다. '야, 이거 국제여론이 너무 나쁜데. 이렇게 하면 안 될까? 밑에서 실무자들이 저지른 일이다. 지도부에선 몰랐다고 하면 어떨까?”
김정일이 강하게 반발하였다고 한다. “무조건 잡아떼야 합니다'. 김일성도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0년 8월 黃 선생은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김일성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인간적 장점과 함께 致命的(치명적) 평가를 내렸다.
  
'김일성은 俗物(속물)이었습니다. 스탈린과 毛澤東은 악당이었지만 한 구석엔 영웅적 풍모가 있었어요. 가족을 편애하지 않았습니다. 김일성은 김정일을 특별 대우하더니 나중엔 눈치를 보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사회주의자가 권력세습을 하다니. 어느 자리에서 김일성이 爲民해야 한다고 연설을 하는데 이를 듣고 있던 김정일이 저의 귀에다 대고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黃 선생, 爲民이 다 뭡니까? 인민에겐 무섭게 대해야 돼요.''
  
黃 선생은 김일성에 대한 인간적 감정과 역사적 평가를 명확히 구분하였다. 上記 2001년 책에서 그는 이렇게 비판하였다.
  
<그는 자기 아들의 권력 앞에 아부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마지막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정권을 아들에게 넘겨줌으로써 김정일과 함께 수치스러운 길을 걷게 되었으며, 그의 한 生의 전반부까지도 다 망쳐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黃 선생은, 2000년 6월15일 김대중-김정일 회담 이후엔 김정일과 김대중에 속아선 안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黃 선생은 북한정권이 왜 韓美동맹 해체에 그렇게 매달리는가에 대하여 쉽게 설명하였다.
  
'북한 통치자들은 자기들이 한국과 단독적으로 대결하면 전쟁의 방법으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평화적 방법으로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金日成은 생전에 미국과 일본의 지원만 없으면 남한은 하루도 살 수 없다고 하면서 미국과 일본을 남한 정권이 쓰고 있는 갓의 양쪽에 달려 있는 갓끈과 같다고 풍자하였다. 남한 정권에서 미국과 일본의 지원을 떼버리면 양쪽의 갓끈이 떨어진 갓 모양으로 되어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 버리는 가엾은 신세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 통치자들은 남한과 미국, 일본과의 친선의 유대를 끊어버리는 것을 중요한 對南전략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 통치자들은 現시기 주된 외세를 미국으로 보고 있지만 일본이 남한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남한에 대한 일본의 지원도 중요시하고 韓日관계를 이간시키는 데 큰 관심을 돌리고 있다. 북한의 외세반대, 자주통일전략은 북한 공산통치자들의 가장 교활한 기만 술책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남북통일문제를 민족 내부문제로 규정해 놓고 민족의 당사자들인 남한과 북한이 주인이 되어 해결해야 할 문제인 만큼 외국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이른바 민족자결권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남북간 대립의 본질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공산독재 체제와의 대립인 만큼 南北이 각각 자기의 자주성을 지킨다는 것은 곧 자기의 사회政治 체제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남한이 자기의 자주성을 수호한다는 것은 자기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지킨다는 것을 떠나서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하여 한국과 미국이 동맹하는 것은 자기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국제적 연대성밖의 다른 것으로 될 수 없다. 미국은 한국의 자주성을 위협하는 외세인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한국의 자주성을 옹호하는 동맹자이며 원조자이다. 실지로 한반도의 평화와 한국의 자주성을 위협하여 온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북한이다. 북한이 6·25 전쟁을 일으키고 온 강산을 민족의 피로 물들이게 하였을 뿐 아니라 동맹국들에게까지 큰 피해를 끼쳤다. 미국은 북한의 남침을 반대하여 한국과 함께 싸운 동맹자였으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데 크게 기여한 믿음직한 국제적 지원자였다.'
  
黃 선생은 냉전에서 서방세계를 승리로 이끈 레이건 같은 反共지도자들을 높게 평가하였다. 특히 헬싱키 선언이 인권존중의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소련을 붕괴시킨 단초였다고 했다. '독재국가가 인권문제를 접수하는 것은 스스로 독재를 죽이는 독약을 먹는 것이다'고 했다.
  
黃 선생은 또 '평화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평화적 방법으로 적을 돕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 조건에서 북한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은 다 평화적 방법이다'고 정의하였다.
  
黃 선생은 필자에게 이런 秘史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내가 '스탈린이 김일성과 박헌영을 불러 직접 면접을 보고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선택했다는 주장이 러시아측으로부터 제기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黃 선생이 빙긋 웃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김일성이가 그런 말을 합디다. 제가 직접 들었어요. 스탈린한테 두 사람이 불려가 시험을 쳤다는 겁니다. 스탈린이 출제한 것을 가지고 두 사람이 각각 다른 방에 들어가 답안을 썼다고 해요. 여기서 김일성이 합격된 셈이지요'
  
黃 선생의 이 증언은, 김일성으로부터 직접 들은 내용이다. 따라서 학자들이 하는 주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사자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김일성, 박헌영 두 사람이 불려간 시기에 대해서 러시아 전문가들은 1946년 7월이었다고 증언하다. 이때 박헌영은 남한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니 비밀리에 북한을 경유하여 모스크바로 갔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그해 10월에 미 군정의 추적을 따돌리며 북한으로 피신한 뒤 돌아오지 않았다. 데일리 엔케이 손광주 편집국장은 자신의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스탈린 앞에서 시험을 본 적이 있다. 누가 공산주의 지도자로 더 적합한가를 놓고 시험을 본 것인데, 사실은 누가 더 스탈린에게 충직한가를 따져본 것이다. 당시 스탈린이 무슨 문제를 ‘출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험이 끝난 후 스탈린은 박헌영의 답안지까지 김일성에게 주면서 “알아서 처리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 기술은 황장엽 선생의 주장과 매우 비슷하다. 북한정권을 세울 때 스탈린은 김정일을 꼭두각시로 내세우고 國號(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와 헌법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희대의 독재자 앞에서 시험을 친 뒤 북한의 독재자로 결정된 김일성, 미 군정과 대결하여 대한민국을 자유民主의 초석 위에 세운 李承晩, 그 차이가 오늘의 한국과 북한의 차이이다.






제  목: 惡魔(악마)와 천사


출판사: 조갑제닷컴

저  자: 趙甲濟

판  형: 신국판

ISBN: 978-89-92421-68-3

가  격: 10,000원

페이지: 288쪽  

출간년월: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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