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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정전협정의 終着驛: 법적 문제점의 검토
이동복
2018년 08월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終着驛

법적 문제는 무엇인가?

Patrick M. Norton  

문재인(文在寅) 정권이 북한의 김정은(金正恩) 정권과 담합(談合)하여 한국전쟁의 ‘종전선언’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4월27일 판문점에서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소위 “한반도 평화와 번영 및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의하면 남북 쌍방은 앞으로 4개월이 채 남지 않은 금년 말까지 문제의 ‘종전’을 ‘선언’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같이 임박한 시한(時限)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종전선언’이 도대체 어떠한 내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그리고 ‘종전선언’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이에 관한 공론도 없다. 1953년7월27일 발효된 군사정전협정에 의거한 ‘정전(停戰)’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 그리고 이 군사정전협정 제60항에 담겨 있는 “한국전쟁 유관국 사이의 고위급 정치회담을 통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는 어떠한 관련이 있는 지, 그리고 ‘한미동맹’과의 사이에는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에 관한 아무런 토의가 없는 가운데 문재인, 김정은 두 사람이 작당하여 내용도 없는 제목만을 가지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우격다짐으로 소위 ‘종전선언’의 수용을 강요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종전선언’의 내용에 관해서는 별도로 다시 검증할 기회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서,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종전’을 논의하려면 우선 현재의 ‘정전’ 상태의 연원(淵源)과 경과 및 현황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정전’과 지금 논의의 대상이 되어 있는 ‘종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그 원인이 되었던 6.25 전쟁의 성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정전’은 “전투 행위의 중지”를 의미하는 것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종전’이라면 무엇보다도 ‘전쟁’의 원인과 “전쟁 도발의 책임” 등이 규명되고 이에 입각하여 “전쟁 범죄에 대한 처벌”은 물론 “전쟁 재발 방지”를 위한 납득할 수 있는 조치들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러한 뜻에서 과연 ‘종전선언’이 최종적인 ‘평화협정’과 분리되어서 다루어질 수 있는 성격의 문제인가에 대해서도 충분한 법적, 사실적 검토가 필요하지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같은 필요성에 입각하여 필자는 한국전쟁의 ‘종결’ 문제와 관련하여 1953년의 군사정전협정의 성격을 분석하는 것과 함께 정전협정으로부터 한국전쟁의 완전 종식으로 가는 과정에서 고려되어야 할 일들을 심층 있게 분석한 한 편의 논문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논문의 저자 패트릭 M. 노튼(Patrick M. Norton)은 1996년의 시점에 미국 워싱턴 소재 법률회사 앨스턴 &; 버드(Alston &; Bird) 소속 변호사로 그 이전에 미 국무성의 용역(用役) 사업으로 한국전쟁의 ‘정전’ 상태를 ‘종전’ 상태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법적

  

  

문제들을 연구한 경력이 있다. 이 글은 저자가 1996년 미국과 한국이 한국전쟁의 ‘정전’을 ‘종전’으로 전환시킬 것을 목적으로 미국, 중국 및 남북한이 참가하는 ‘4자 회담’을 제안한 시점에서 써서 미국의 ‘노틸러스 연구소’(Nautilus Institute for Security and Sustainability) 웹사이트 ‘Northeast Asia Peace and Security Network (NAPSNet)’에 수록해 놓은 “Ending the Korean War Armistice: The Legal Issues"(http://www2.law. columbia.edu/course_00S_ L9436_ 001/2005/2a_ armistice legal_norton.html)라는 제목의 논문을 번역한 것이다.

  

나라의 안보에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이 읽어 보고 작금의 안보 현안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李東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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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말

  

한국전쟁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난 전쟁에 관하여 명멸하는 흑백 사진의 영상이다. 한국전쟁의 전투를 종식시킨 군사정전협정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각한 채 ‘유엔군 사령부’나 ‘중국인민지원군’ ‘중립국감독위원회’처럼 이름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전투행위가 종식되고 반세기가 지난 뒤인 지금도 2개의 한국을 갈라놓고 있는 비무장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고 군사정전협정은 이 지역에서 무력충돌이 재발하는 것을 막아주고 있는 유일한 장치로 남겨져 있다.

  

최근 이 군사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노력이 거듭 전개되고 있다. 이 군사정전협정을 대체하는 새로운 협정은 두 가지 목적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로는 한반도에서의 무력 분규를 법적으로 종식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영속적인 평화를 위하여 관련 당사국들을 완전하게 구속하는 조건들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목적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전쟁의 현재 상황과 1953년의 군사정전협정의 현황을 검토하는 한편 한국전쟁의 교선당사국이 어느 나라인지와 군사정전협정을 보다 항구적인 협정으로 대체하는 권한을 가진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를 먼저 규명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이 논문의 주제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문제점들은 얼핏 보기보다 훨씬 복잡하다. 법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전쟁과 군사정전협정은 몇 가지 측면에서 복합적이다. 첫째로, 한국전쟁은 처음부터 기본적인 갈등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 전쟁은 분단된 ‘2개의 한국’ 사이의 ‘내전’이었다.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이 전쟁은 20개국의 군대가 참전한 ‘국제전쟁’이기도 했다. 둘째로, 이 전쟁의 한 쪽은 사상 처음으로 유엔의 깃발 아래서 전쟁을 수행했다. 셋째로, 중궁은 이 전쟁의 ‘주요 교전 당사국’이면서도 전쟁에 참전한 중국군은 단지 ‘지원병’들이었기 때문에 “중국은 ‘교전 당사국’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 뒤 많은 세월이 지나는 동안 관련 당사국들이 각자가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하여 전후가 모순되는 입장을 취해 온 결과로 이제 이 복합성으로 인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져 있다.



  

I. 한국전쟁의 법적 성격

  

1. 북한의 남한 침략에 대한 유엔의 조치

  

1950년6월25일 북한은 남한에 대한 무장 공격을 감행했다. 같은 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① 북한의 무장 공격은 “평화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단정하고 ② 교전 쌍방에 대해 “적대행위의 즉각적 중지”를 요구하면서 ③ 북한에게 “점령지로부터의 철수”를 요구하는 동시에 ④ 모든 유엔 회원국들에게 “유엔이 이 결의를 이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며 북한에 대한 지원을 거부”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6월27일, 트루먼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군이 이 침략행위를 격퇴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미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그로부터 수시간 후에 안보리는 “북한의 무장 공격이 ‘평화를 파괴하는 행위’임을 재확인”하는 것과 함께 모든 유엔 회원국들에게 “대한민국이 무력 침략을 격퇴하고 이 지역에서 국제 평화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할 것을 권고하는 두 번째 결의를 채택했다. 그리고 7월7일 안보리는 유엔 회원국들에게 “미국이 지휘하는 통합군”에 각자의 군대를 파견할 것을 권고하면서 미국에게 “통합군의 지휘관을 임명할 것”을 요구하고 “북한군을 상대로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참전국 자국의 국기와 함께 유엔기를 사용할 권한을 통합군에 부여하는 내용의 안보리 결의 제84-V호를 채택했다.

  

안보리 결의 제82, 83 및 84호는 소련 대표가 불참한 가운데 채택이 이루어졌다. 1950년8월 안보리에 복귀한 소련은 그 뒤 한국전쟁에 관한 모든 결의안 표결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결과로 그 뒤 한국전쟁에 관한 한 안보리의 기능은 총체적으로 마비되었고 그 뒤에 이루어진 한국전쟁에 관한 유엔의 모든 조치들은 총회 표결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총회는 1950년11월3일자로 채택한 “평화를 위한 단결”(Uniting for Peace)이라는 제목의 총회 결의를 통하여, 평화의 파괴 행위에 대한 안보리의 기능이 마비된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이에 대한 안보리의 권한을 총회가 대행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서 총회는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서 유엔군을 공격했을 때 “중국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반도에서 이미 침략 행위를 자행한 자들에게 직접적인 지원과 원조를 제공하고 유엔군을 상대로 적대행위를 감행함으로써 스스로 한반도에서 침략행위를 자행했다”고 규탄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총회는 중화인민공화국에게 한반도에서 중국군을 철수시킬 것을 요구하는 한편 모든 회원국들과 당사국들에게 “한반도에서 이루어지는 유엔의 조치들에 가능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1951년5월18일 총회는 모든 회원국들이 “중화인민공화국 및 북한으로 향하는 무기와 탄약 그리고 그밖의 전쟁도구들의 선적을 금지하라”는 내용의 결의를 채택했다. 대다수의 유엔 회원국들과 몇 개의 비회원국들이 즉각 총회가 결의한 이 같은 제한조치를 이행하는 데 참가했다.

  

2. 한국전쟁의 법적 성격

  

통상적인 국제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쟁 상태’나 ‘전쟁 당사국’, 그리고 그 같은 ‘교전 당사국’들은 물론 ‘비교전 중립국’들의 권리와 의무를 결정하는 데 사용하는 ‘틀’들을 개발해 왔다. 전쟁 참가국들의 주장에 의하면, 한국전쟁의 경우는, 통상적 국제법의 체제 속에서 볼 때, ‘전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유엔 창설 이후 최초로 맞이한 대규모 국제 무력 분규인 한국전쟁은 즉각적으로 ‘전쟁 결정 충분 조건’(jus ad bellum)에 관하여 국제법의 통념을 크게 벗어난 유엔헌장의 ‘평화 보장’ 조항들의 효력과 적용에 관하여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유엔군’에 참가하고 있는 국가들은 유엔 헌장의 관련 조항을 근거로 그들의 전쟁 참가가 안보리에 의하여 규정된 ‘침략 행위’에 대한 ‘집단 안보 조치’에 참가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처럼, 그들의 행동에 유엔의 옷을 입힘으로써 그들은 그들이 수행하는 전쟁 행위가 “정당한 전쟁 행위”라고 주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 전쟁 수행에 불참하는 ‘비교전 국가’들은 통상적인 국제법에 의거한 ‘비교전 국가’의 권리와 의무를 향유하기 어렵고 오히려 “유엔의 편에 서야 하는 의무감‘에 의하여 구속될 우려가 생겼다.

  

반면, 북한과 중국인민공화국 및 그들의 지지국들은 한국전쟁의 성격을 “한국인들 사이의 내전”으로 규정할 것을 고집해 왔다. 그들은 그 같은 ‘내전’에는 어떠한 외국도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유엔이 한국전쟁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하는 중국군을 ‘지원병’이라고 우긴 이유는 바로 한국전쟁의 성격을 ‘내전’이라고 우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 동안 이 같은 양측의 주장에 대한 충분한 법적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엔군’ 창설을 허가한 안보리 결의가 강제적이기 보다는 권고의 성격을 띄었었다는 사실, 이들 안보리 결의들이 이 결의 내용들에 대한 반대 입장이 공지의 사실이었던 상임이사국 소련의 참가 없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유엔군의 구성이 유엔헌장 제7장에 명시된 절차에 따라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총회의 ‘평화를 위한 단결’ 결의들이 이를 뒷받침하는 명시적 헌장 조항도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 등은 다수의 관측자들로 하여금 한국전쟁과 관련한 유엔 총회와 안보리의 결정들이 “유엔의 조치”들이기보다는 “유엔이 허가한”이나 아니면 “유엔이 후원한” 조치들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하게 만들고 있다. 같은 이유로 볼 때, 한국전쟁이 ‘내전’이기 때문에 유엔이 참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공산측의 주장 역시, 특히 중국의 참전 이후에는, 부당하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같은 쌍방의 계산된 법률 논쟁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모든 교전 당사국들이 전쟁 수행 과정에서는 통상적인 전쟁 관련 법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엔군이나 북한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은 모두 전쟁 수행 과정에서 ‘전시국제법’(jus in bello)을 준수하겠다고 다짐했고 모두가 때때로 상대방에게 ‘전시국제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예컨대, 총회 결의 제500-V호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유엔군은 전통적인 법적 구별 기준에 따라 ‘교전 상대국’과 ‘중립국’을 꼼꼼하게 구분했었다. 유엔군은, 비록 때때로 그렇게 하기도 했고 때에 따라서는 그렇게 하지 않기도 했지만,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해서는 적대적 행동을 취하는 것을 회피했다는 것도 그 같은 사례의 하나였다.

  

3. 한국전쟁의 당사국은 누구인가?

  

가. 유엔군 측

  

유엔안보리는 1950년7월7일자 결의 제84-V호에서 “미국 지휘 하의 통합사령부” 설치를 허가했다. 미국은 이 결의가 미국에게, 하나의 주권국가의 입장에서, ‘통합사령부’의 주체의 입장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했었다. 미국에 추가하여 15개 유엔 회원국이 ‘통합사령부’의 지휘 아래로 자국군을 파견했다. 이렇게 되자 미국은, 이론적으로는 ‘통합사령부’와는 별개이면서 ‘통합사령부’의 하부 구조로 ‘유엔군사령부’를 창설하고 ‘유엔군’이 실제 전투 행위를 수행하는 ‘국제 야전군’이라고 설명해 왔다. 다른 모든 참전국 군대가 모두 ‘유엔군사령부’의 지휘체계 아래로 통합되었고 대한민국 군대도 ‘유엔군사령부’의 작전지휘체제 아래로 편입되었다.

  

한국전쟁이 수행되는 동안,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은 그들의 행동이 유엔의 행동이라는 점을 강조해 마지않았다.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한국전쟁은 “유엔의 깃발 아래 수행되는 것이고 결커 참전국들이 독자적인 행동으로 공통의 결과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유엔군 사령관은 항상 자기 휘하의 군대를 “유엔군‘이라고 호칭했고 참전국들도 예외 없이 자신들의 행동은 유엔에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저명한 법률문제 평론가는 이 문제에 곤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 있다: "실제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절대 다수의 국가들은 그들의 참전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유엔의 활동이었다고 간주하고 있었다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유엔이 취한 많은 조치들이 유엔 스스로도 한국전쟁 당시 유엔의 깃발 아래 싸웠던 군대를 ‘유엔군’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총회 결의 제376-V, 제483-V 및 제498-V호 등 적어도 3건의 총회 결의들이 그러 하다. 특히 안보리 결의 제84-V호는 특정하여 ‘통합사령부’가 유엔의 깃발을 사용하도록 허용했었다.

  

그 같은 증거들에 의한다면, 유엔 스스로가 한국전쟁의 교전 당사자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유엔이 한국전쟁에서 전투 병력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한 사실은 없다. 전투에 관한 모든 결정을 내린 것은, 비록 단독으로 한 것이냐 아니면 다른 참전국들과의 협의를 거쳐서 했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이었다. 바꿔 말하면 미국정부인 ‘통합사령부’는 다만 사후에 유엔에 보고했었다.

  

바로 이 같이 유엔이 전투 행위의 어느 부분에 대해서도 작전 지휘권을 행사한 일이 없다는 사실에 주로 입각해서, 당시의 전쟁 관련 법규에 관한 미국 정부의 전문가들을 포함하여, 다수의 관측통들은 “한국전쟁의 경우, 유엔군사령부 휘하의 군대들은, 비록 그들이 ‘유엔군’의 이름과 깃발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법적 차원에서는 ‘유엔군’이 아니었으며.... ‘통합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가 지휘한 작전들은 유엔 자체가 실시한 작전이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들 관측통들은 한국전쟁 당시의 ‘유엔군’은 ‘독트한’(sui generis) 존재로 취급했다. 엄격하게 말한다면, “유엔군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임의적인 국가군의 군대도 아닌 양자가 혼효된 존재”였다는 것이다. 이에서 더 나아가, 어떤 평론가들은, “유엔이 부여한 자격의 불확실성 때문에, 그리고 이 ‘유엔군’의 활동이 유엔으로부터 독립된 것이었기 때문에, 한국전쟁 당시의 ‘유엔군’은 단순히 ‘복수 국가 군대의 연합군’으로 유엔 헌장 제51조와 통상적인 국제법이 허용하는 집단적 자위권에 의거하여 이루어진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 남한의 역할

  

그들이 최소한 유엔의 깃발 아래서 참전했다는 참전국들의 주장은 곤란한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 대한민국의 자격 문제다. 의문의 여지없이 피침략국이자 유엔군측 인명피해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대한민국은 전쟁 발발 이전에 유엔총회 결의를 통하여 대한민국이 통치권을 갖는 한반도 지역의 합법 정부로 인정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군을 유엔군에 편입시켜 결과적으로 미군 장교의 지휘를 받게 함으로써 전쟁 당사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의 정치적 자격이 모호해졌다. 더구나 이 같은 모호성은 유엔군 쪽에서는 유엔군 사령관이 유엔군측 참전국들을 대표하여 정전협정에 서명했는데, 북한과 달리 대한민국은 이 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가중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다. 한국전쟁의 공산군측 당사자

  

공산측의 입장이 애매모호하기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북한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은 독립국가 정부로서의 법적 지위가 공인되지 않고 있었다. 북한이 전쟁 관련 법규의 적용을 받고 군사정전협정의 잠재적 당사자로서의 책임 있는 일방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DPRK'가 어떠한 형태로든지 ’법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유엔군 쪽에서는 ’DPRK'를 암묵적으로 ‘교전 당사자’로 인정함으로써 전쟁 관련 법규에 의한 처리를 위하여 사실상 승인하는 하나의 편법을 구사했지만, 그러한 편법으로도 북한의 합법적 지위에 관한 애매모호성은 완전히 해소시킬 수는 없었다.

  

보다 더 애매한 문제는 한국전쟁에 투입된 수백만의 중국군이 ‘지원병’이었다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중국이 참전 중국군을 ‘지원병’이라고 우긴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없지 않았다. 첫째로는 한국전쟁의 성격을 ‘내전’으로 못 박자는 것이었고 둘째로는 중국이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더하여, 또 하나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참전이 한국전쟁에 국한된 것이었다고 주장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엔총회는 총회 결의 제498-V호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한국전쟁에서의 또 하나의 침략자”로 낙인찍음으로써 중국의 그 같은 주장을 단호하게 일축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중화인민공화국 스스로가 몇 가지 모순된 행동을 보여 준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유엔에서 ‘자위권’을 근거로 중국군 스스로의 한국전쟁 참전을 정당화시키려 시도했던 것이나 외교문서를 통하여,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다른 참전국들에게 중립성 의무의 이행을 요구한 것 등이 그 사례들이다. 중국이 표방한 가식적인 중립과 이 문제를 가지고 중국과 대립하기를 꺼린 다른 참전국들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이 군사정전협정의 서명자가 되는 이변이 연출되었다.

  

II. 군사정전협정

  

1. 군사정전협정과 제네바 회의

  

1953년7월27일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W. 클라크(Mark W. Clark) 대장과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김일성 ‘원수’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팽덕회이 군사정전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은 전문(前文)에서 정전의 목적이 “최종적인 평화적 해결이 이루어질 때까지 한반도에서의 모든 적대 행위와 모든 군사 행동을 완전히 종식”시키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 전문은 이어서 “(이 협정의) 모든 조건들은 순전히 군사적인 성격의 것이며 한반도에서의 교전 당사자들에 한하여 구속한다”고 못 박고 있다. 협정의 제60항에서 쌍방은 “쌍방의 군사지휘관들은 쌍방의 관계 당사국 정부들에게 쌍방 간의 보다 고위의 정치회의를 개최”할 것을 권고했다. 협정 제62항은 이 협정이 “쌍방 간에 정치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평화적 해결에 관한 적절한 합의에 의하여 분명하게 대체될 때까지 효력을 유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총회는 1953년8월28일자 총회 결의를 통하여 “군사정전협정의 발효를 환영하면서 승인”했으며 군사정전협정 제60항에 의거한 평화회담의 개최를 환영하면서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한국전쟁에서 ‘통합군’에 참가하고 있는 측은 이번 평화회담에 대한민국과 함께 유엔군에 참가했던 국가들 가운데 희망하는 국가들을 참가시켜야 한다. 참가국 정부들은 각자 완전한 행동의 자유와 함께 독립적 입장을 가지고 회담에 참가하며 오직 각자 정부가 존중하는 결정과 협정에 의해서만 구속을 받아야 한다....”

  

총회 결의 제711-V호는 또한 “다른 참가국들이 원한다면 소련도 한국전쟁 정치회담에 참가시킬 것”을 권고했다.

  

이 정치회담 절차를 마련하기 위한 판문점에서의 접촉은 결렬되었다. 그러나, 1954년2월 미국과 영국, 프랑스와 소련 등 4개국 외무장관들은 한국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회담을 이 해 4월 제네바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이 회담 참가국들은 자신들 4개국에 추가하여 남북한 정부, 중화인민공화국 및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다른 나라들”로 하기로 합의했다.

  

한국 문제에 관한 제네바 정치회담은 1954년4월26일부터 6월15일까지 계속되었다. 이 회담에는 남아연방을 제외한 한국전쟁 참전국 모두가 참가했다. 그러나, 회담은 기본 문제에 관하여 표류하기 시작했고 일단 정회한 두에는 재개되지 않았다.

  

2. 한국전쟁 군사정전협정의 성격과 범위

  

한국전쟁 정전협정은, 형식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통상적 국제법에 의거한 일반적인 정전협정과 궤를 함께 한다. 이 협정은 군사령관들 사이에 체결된 것이고 추구하는 것은 교전 당사자 간에 모든 전투 행위를 중지하는 것이다. 통상적 국제법에 의거한 정전협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정전협정만으로는 ‘전쟁 상태’의 종식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의 견해는, 적절한 정치적 협정에 의해 대치될 때까지 효력을 유지한다는 점이나, 바로 그 때문에, 법적 차원에서는 한국전쟁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 같은 일반적 법칙이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경우에도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교전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수없이 많은 무력 충돌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그 같은 견해를 뒷받침해 준다.

  

특히 지적되어야 할 점은 정전에 관한 이 같은 견해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상당수의 학자들은 유엔 헌장이 국제관계에서 무력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가운데 정전협정이 조인된 후 교전행위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고 있다. 몇몇 학자들은 특히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의 경우에는 충분한 시간이 경과한 뒤에는 정전협정이 자연스럽게 사실상(de facto)의 평화협정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견해는 오랜 기간 동안 정전협정은 물론 적대행위에 개입할 기회가 없었던 유엔군측 교전 당사국들 사이에서 거론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견해는 남북한이나 미국처럼 40년 이상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중무장한 군사력을 배치하여 대치하는 상태를 유지해 온 나라들의 경우에는 수용되지 않는다. 다른 문제는 차치하고 안보리가 최근 “정전협정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사실은 이 문제에 관한 재론의 여지를 막아버리는 것이 아닐 수 없다.

  

3.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다른 당사국들

  

한국전쟁 정전협정은 군사령관들 사이에 조인되었고 협정의 전문은 이 협정이 “순수하게 군사적인 성격이 것”이라고 그 선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법은 일관되게 ‘정전협정’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주권 행사의 차원에서만 체결되는 것”으로 간주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때문에, 거의 예외 없이 군사령관들 사이에 조인되지만, 한국전쟁의 경우에서처럼, 정전협정은 국가들을 구속하는 것으로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다만 구속되는 국가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국가인지는 덜 분명하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은, 이 문제에 관하여, “관련국 정부들”(제60항)이라든지 “쌍방 간의 정치회담”(같은 조항), 또는 “정치적 차원에서 쌍방 사이의 평화적 해결”(제62항)과 같이 의도적으로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북한 정권과 한국전쟁 정전협정 사이의 관계가 전통적인 국제법 규정에 따르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비록 김일성이 군사령관의 자격으로 서명했지만 정전협정은 명백히 북한 정권도 구속한다.

  

오히려 ‘유엔군사령부’나 ‘중국인민지원군’의 법적 성격은 훨씬 애매하다. 객관적으로 말한다면, 중화인민공화국 자신이 한국전쟁의 교전 일방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국가이지 군부대가 아니라는 교전 당사자의 지위에 관한 통상적인 국제법의 정의에 따르지 않더라도 중화인민공화국이 1954년 제네바 정치회담에 참가했다는 사실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스스로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한 당사자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더구나,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가 베이징 주재 영국 대사관을 통하여 ‘유엔군 쪽의 다른 나라 정부들“에 보낸 일련의 외교문서에서 정전협정에 근거한 권리를 주장한 바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전쟁 기간 중 ”우리는 교전 당사자가 아니다“라고 고집스럽게 주장한 데 대해 유엔군측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의를 때때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이 문제를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버린 점이 없지 않다.

  

전쟁 기간 중 미국과 그 밖의 유엔군측 참전국들은 내내 유엔 자신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과 함께 정전협정의 서명 일방이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다는 사실은 때때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유엔 자체가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반대로, 북한은 ‘유엔군 총사령관’은 ‘미군 장군’이었기 때문에 정전협정의 한쪽 당사자는 오직 미국뿐이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유엔군 쪽의 그 밖의 다른 참전국들은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 체결 협상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는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양측의 주장의 그 어느 것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 정전협정 제60항에 명시된 문면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들”이 “쌍방 간에 한 급 높은 정치회담을 소집하여 협상을 통하여 모든 외국 군대를 한반도로부터 철수하는 것과 한국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문제 등등....”으로 되어 있다. 이 같은 문면은 유엔이 아니라 개별 참가국 정부의 차원에서 당사국 문제를 언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유엔의 입장도 같았다. 1953년8월28일자 총회 결의 제711-VII호는 문제의 평화회담에 유엔군측에서는 “대한민국과 함께 유엔의 요청에 호응하여 군대를 파견한 회원국들”이 참가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총회 결의는 제네바 회담 참가국들에게 어떠한 가이드라인도 제시하지 않고 다만 “참가국 정부들은 회담에서 완전한 행동의 자유를 가지고, 그들 각자의 나라들이 준수하는 결정과 협정에 의거하여, 독자적으로 행동하라”고 권고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서,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17개국 가운데 회담에 참가한 16개 유엔군측 참전국들은 유엔으로부터 아무런 지침도 받지 않고 각각 독자적인 입장을 가지고 회담에 임했었다.

  

이 같은 경위가 시사하는 것은 유엔군사령부가 정전협정에 서명한 것이 17개 참전국가들을 포함하여 한국전쟁에 실제로 군대를 파견한 모든 나라 정부의 군사 대표들의 이름으로 그렇게 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유엔 그 자체는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가 아니었다. 유엔군측의 ‘전쟁 당사국’ 문제에 관한 이 같은 해석에 대해서는 북한이나 중국인민공화국도 제네바 정치회담에 참가함으로써 묵시적으로나마 이를 수용했었다.

  

III. 제네바 회담 이후의 경과

  

군사정전협정이 가까운 시일 안에 영구적인 평화협정에 의하여 대체될 전망이 어두워짐에 따라서 미국은 미군을 유엔군사령부로부터 분리시키는 작업에 착수했고 1954년 이후에는 계속되는 미군 주둔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유엔군측 참전국들은 대부분 1950년대 중반에 자국 군대를 한반도로부터 철수시켰다. 1975년에 와서는 300여명의 군인만이 유엔군사령부에 소속해 있게 되었다. 1975년6월 미국은 미국이 1976년1월1일을 기해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할 준비가 되었다고 안보리에 보고했다. 미국은 향후의 유엔군사령부 소속 장교들은 정전협정 제17항에 의거하여 미군과 한국군 장교들로 충원할 것을 제안했다. 이 같은 제안은 미국의 입장이 향후에는 미국과 한국만이 정전협정의 당사국으로 남는다는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미국의 제안에 대해 유엔 총회는, 이 제안에 대한 북한 지지국들의 반대를 고려하여, 어느 모로 보나 상호 모순되고 애매모호한 2개의 결의를 채택했다. 그 하나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1991년 유엔은 남북한을 동시에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북한의 유엔 가입 허용은, 얼핏 생각하면, 유엔이, 비록 정전협정으로 전투행위는 중지되어 있지만, 기술적으로는 아직도 북한의 상대방으로 한국전쟁의 교전 일방이라는 주장과 모순된 것이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유엔이 유엔과 아직도, 기술적으로는, 교전 중인 나라를 유엔의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모순을 범한 것이었다.

  

1996년10월 안보리는 정전협정의 지위에 관하여 1950년대초에 있었던 이 문제에 관한 안보리가 최초의 결의를 채택한 이래 가장 결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북한군 잠수정이 남한의 한 해변에서 좌초한 사건과 관련하여 남북한 쌍방이 제기한 상반된 주장과 관련하여 안보리 의장이 안보리를 대표하여 ‘의장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안보리는 “한국전쟁 정전협정은 전면적으로 이행되어야 한다”고 못 박고 이어서 “정전협정은 앞으로 새로운 평화 장치에 의하여 대체될 때까지 효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 성명은 정전협정에 함께 서명한 교전 쌍방이었던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모든 안보리 회원국의 전원일치의 지지를 받았다. 따라서, 이 안보리 의장성명은 향후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효력을 상실했다는 주장의 근거를 박탈하는 것이었다.

  

이러는 동안, 한국전쟁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국들 사이에서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방안에 관하여 몇 가지의 조치가 강구되기 시작했다. 1992년2월, 남북한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이하 ‘기본합의서’)를 합의, 채택하여 발표했다. 이 합의서에서 남북한이 합의한 것은 특히 “남과 북은 현 정전 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 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 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합의는 같은 해 9월에 남북이 합의하여 채낵한 ‘부속합의서’를 통하여 재확인되었다.

  

그로부터 불과 2년이 경과하기도 전에 북한은 이 같은 합의들을 걷어차 버리고 정전협정이 미국과 북한 사이에 체결되는 평화협정에 의하여 대체되어야 한다는 종래의 주장을 다시 꺼내 들었다. 북한은 또한 정전협정을 위반하면서 군사정전위원회 자기측 위원들을 철수하고 폴란드 대표에게 압력을 가하여 중립국감시위원단으로부터의 철수를 강요함으로써 군사정전협정의 잔재(殘滓)들인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단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1996년4월 미국과 대한민국은 미국과 대한민국 그리고 북한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참가하는 4자회담을 열어서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안했다. 북한과 중국은 이 제안을 검토할 뜻을 시사했지만 두 나라 중 어느 나라도 1996년10월 현재 이에 대한 구체적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함께 4자회담을 제안하기는 했지만 대한민국이 그와는 달리 남북한 트랙을 통하여 이 기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IV. 해결방안

  

이 같은 우여곡절 속에서 도대체 어떻게 하면 군사정전협정을 대체할 새로운 협정을 도출함으로써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장 낼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문제를 다루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도대체 어떠한 형태의 새로운 협정이라야 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그 새로운 협정의 당사국은 어느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냐는 것이다.

  

  

1. 형식과 내용의 문제

  

통상적인 국제법에 의거하여 전쟁의 종식을 초래하는 고전적 방법은 첫 단계로 군 지휘관들 사이에 정전협정을 체결하여 전투행위를 중지시키고 이어서 두 번째의 단계로 교전 당사국들 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의 대표적 사례는 나폴레온 전쟁의 경우와 제1차 세계대전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같은 방식이 한국전쟁의 경우에 적용되어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 많은 이해 관계국들 사이에 ‘평화협정’이라는 어휘가 거론되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형식이 본질을 좌우할 수는 없다. 예컨대,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반드시 ‘조약’이라는 이름으로 된 ‘합의’에 의하여 대체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전협정 제62항에 명시되어 있는 문면은 “쌍방 간에 정치적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적절한 합의”라는 것일 뿐이다. 최근에 있었던 안보리 의장성명의 문면에 나타나는 어휘도 ‘평화 장치’(peace mechanism)일 뿐이다. 더구나 국제법의 차원에서 말한다면, 명칭을 어떻게 붙이든지 상관없이, 국가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합의’는 그 ‘합의’의 내용에 의하여 법적으로 구속된다는 의미에서 ‘조약’과 같은 효력을 갖게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필요한 조치들이 국가 간의 ‘합의’에 국한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유엔안보리는 특히 “평화에 대한 위협이 실존하는지의 여부”와 함께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거나 회복하기 위하여 어떤 조치를 권고할지, 또는 취할지를 결정할 권한을 부여 받고 있고 (헌장 제39조) 모든 회원국들은 “안보리의 결정을 수용하고 이행할 의무”를 지니고 있는 만큼 (헌장 제25조) 한국전쟁 평화회담에서 이루어지 정치적 결정에 대해 안보리가 지지하는 조치를 취할 경우, 특히 한국전쟁에 관한 안보리의 입장에 관한 논란을 고려할 때, 그 같은 안보리의 조치는 매우 적절한 것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 문제에 관한 안보리의 결정이 모든 유엔 회원국들을 구속하는 내용으로 작성된다면 그 같은 안보리의 결정은 설혹 어느 특정 국가가 새로운 협정에 직접 서명하지 않았더라도 그 특정국가에게 새 협정이 구속력을 갖게 될 것이냐는 문제를 둘러싼 논란을 효과적으로 해소시킬 수 있기도 하다.

  

2. 새로운 협정의 당사국

  

한국전쟁에는 거의 20개의 국가들이 참전했다. 유엔군 사령관이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모든 국가들을 대표해서 협정에 서명했던 것이니만큼, 협정에 직접 서명한 북한 및 중국을 포함하여 교전 쌍방의 19개국 참전국 대표들이 모두 정전협정의 당사국인 것으로 보는 것이 전적으로 타당하다. 20번째의 국가인 소련은, 비록 스스로 이를 시인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인 교전 당사국이었음에 틀림없는 만큼 유엔과 유엔군측 다른 참전국들이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초기 노력이었던 제네바 정치회담에 소련의 참가를 초청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소련의 입장을 승계하고 있는 러시아를 포함한 20개국 모두가 새로운 협정의 당사국이 되는 것은 법률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실제 문제의 차원에서는, 일부 특정 국가들이 이 새로운 협정 체결에 참가하는 것이 다른 국가들이 참가하는 것에 비하여 훨씬 중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가. 남북한

  

남북한의 두 국가가 모두 새 협정의 당사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2개의 ‘한국’ 가운데 어느 일방이 배제되는 가운데 한반도에서의 영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킨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의 경우가 되는 것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더군다나, 남북한은 동시에 유엔 회원국이 됨으로써 사실상 동등한 주권의 주체로써 합법적인 법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만이 군사정전협정의 당사국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법적 토대가 없는 ‘논쟁을 위한 논쟁’일 뿐이다. 유엔군 사령관이 군사정전협정에 서명한 것은, 다른 14개 유엔군측 참전국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을 대신하여 그렇게 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이 유엔총회의 권고 결의에 의거하여 제네바 정치회담에 참가했다는 사실과 북한과 중국이 한국과 합의한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를 수영했다는 사실은 이 같은 사실에 대한 반론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나. 미국

  

이론적으로 미국이 무대 밖으로 물러나서 남북한 사이에 이루어지는 합의를 지지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 이 같은 합의에 의하여 구속될 것이냐의 여부에 관한 불확실성은 이 합의를 이행하겠다는 미국의 일방적 조치와 함께 안보리가 미국의지지 하에 미국에 대해 구속력을 갖춘 결의를 채택하는 등의 방법으로 해소시킬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의 문제로. 미국이 동북아 지역에서 차지하고 있는 군사적 및 정치적 위상으로 볼 때, 미국이 이 같은 새로운 협정의 당사자가 되는 것은 모든 이해 당사국들이 원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직접적 역할은 모든 현안의 해결책이 장기적으로 효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보장책으로써 필요할 것이 틀림없다. 안보리 결의 제84-V호에 의거하여 ‘통합사령부’로서 한국전쟁 기간 중 미국이 수행했던 역할, 전투행위를 직접 지휘했다는 사실 그리고 40여년에 걸쳐 정전의 유지에 밀접하게 기여했다는 사실 등을 고려한다면, 법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협정 마련과 관련한 미국의 직접적 역할은 명백하게 타당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다. 중국

  

이론적으로 말한다면, 중국의 입장은 국외자(局外者)이지만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정치적 이유 때문에 중국을 ‘국외자’로 취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이나 마찬가지로, 중국도 적절한 일방적 조치와 이를 뒷받침하는 안보리의 결의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한국전쟁의 교전 당사자인가의 여부에 관한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우에는, 중국이 그 동안 한국전쟁에 투입한 자국군의 자격을 ‘지원군’이라고 우겼던 전력 때문에 우선 “중국이라는 ‘국가’가 ‘교전 당사국’이 아니었다”는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는 달리, 중국은 지난 수십년간 정전협정을 유지하는 데 매우 제한적인 역할만을 수행했다는 논란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의 차원에서 본다면,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 중국이 개입하는 것은 미국이 그렇게 하는 것만큼이나 소망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중국의 접경지대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문제와 이 지역 및 전 세계에 대하여 중국이 보유하는 지정학적 중요성에 관한 중국 자신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전쟁에 관한 중국의 역할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모든 당사국들은 중국의 동참을 통하여 평화협정을 위한 협상이나 협상 타결 이후 타결된 협상 내용의 이행 과정에서 추가적인 안정적 담보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논자에 따라서는, 동북아 지역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중요한 방안은 강구하는 과정에 중국이 참여하는 것은 중국으로 하여금 국제 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국의 정치적 및 군사적 능력에 상응하는 보다 적합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라. 다른 나라들

  

유엔군 쪽에서 한국전쟁에 파병을 하여 정전협정의 당사국이 되고 제내베 정치회담에 참가 (남아연방만 불참)했던 모든 나라들은 군사정전협정을 대체할 새로운 협정 체결의 당사국으로서의 법적 권리를 보유한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어느 나라도 한국전쟁의 정치적 해결에 참가할 필요는 없으며 어느 나라도 정전협정 유지에 지속적으로 역할을 감당해 오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그 이후의 상황 전개에 간여하지 아니 한 결과로 그 국가들의 참가 필요성이 소멸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한 때 보유했던 ‘교전 당사자’로서의 지위가 이미 소멸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또 미국이, 과거 동맹 관계에 대한 존중의 차원에서, 이들 국가 정부들에게 북한과의 사이에 진행되는 협상의 진행 경과를 통보해 주고 그들에게 이루어지는 합의 내용을 지지해 주도록 요청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논자에 따라서는, 러시아가, 사실상의 참전국이었고 제네바 정치회담 참가국이었던 소련의 후신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일본이, 지리적 접근성과 이 지역에서의 정치적 비중을 고려하여, 한국전쟁의 최종적 해결에 참여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정치적 주장일 뿐이다. 두 나라 중 어느 나라도 전쟁 당시 공식적인 참전국이 아니었고 현 정전협정의 당사국도 아니었다.

  

  

V. 결론

  

한국전쟁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문제는 이를 통하여 한국전쟁을 결정적으로 종식시켜야 하고 영속적인 평화가 확립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목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지금 미국과 한국이 제안하고 있는 4자회담을 통한 협상이 성사되고 이 것이 안보리의 적절한 결의를 통하여 지지되는 것이 긴요하다. 남북한과 미국 및 중화인민공화국은 전쟁 때 주 교전 당사국이었고, 정전체제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한반도에서의 영속적인 평화의 유지 자체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데 기여할 능력 면에서 명백하게 장기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다. 이들 4개국 간에 한 두 개의 협정만 추가적으로 도출된다면 한반도에서의 무력 분쟁을 법적으로 효과적으로 종식시키고 영속적 평화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가능해 지게 되어 있다. 유엔안보리는 안보리의 권한을 발동하여 한국전쟁의 변칙적인 후과들을 정리하고 거의 반세기 전에 채택한 안보리 결의 제83-V호에 의거하여 최종적으로 “이 지역에서의 평화와 안전을 회복”할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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