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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광주 헬기 조종사들’의 증언록 입수― “5·18 광주 당시 헬기 사격은 없었다” (3)
趙甲濟·李知映
2018년 09월21일  
“벌컨포가 예를 들어서 맞았다, 어디 땅에, 그거는 상상 초월할 사람이 죽어. 그거는 있을 수가 없어”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글 : 이지영  조갑제닷컴 기자


⊙ 사격명령을 거부했던 용감한 조종사들까지 모독한 국방부 5·18특조위 조사결과보고서의 ‘양민학살’ 결론
⊙ 쐈다는 조종사도, 맞았다는 사람도 없는 보고서, 추리소설이나 영화 시나리오도 아니고…
⊙ “헬기 사격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헬기 공중사격 시 발생한 탄흔의 밀집도가 반경 1m가 안 되는 좁은 범위 안에서 수십 발의 탄흔이 생기도록 밀집사격을 할 수 없다”(최해필 전 육군항공작전사령관)
⊙ “벌컨포가 예를 들어서 맞았다, 어디 땅에, 그거는 상상 초월할 사람이 죽어. 그거는 있을 수가 없어” (최○○ 31항공단 506항공대대 작전과장)
⊙ “저와 여단장이 ‘광주가 전쟁터이냐’고 하면서 사격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음” (방○○ 前 육군1항공여단 31항공단장)글 : 이지영  조갑제닷컴 기자

⊙ 사격명령을 거부했던 용감한 조종사들까지 모독한 국방부 5·18특조위 조사결과보고서의 ‘양민학살’ 결론
⊙ 쐈다는 조종사도, 맞았다는 사람도 없는 보고서, 추리소설이나 영화 시나리오도 아니고…
⊙ “헬기 사격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헬기 공중사격 시 발생한 탄흔의 밀집도가 반경 1m가 안 되는 좁은 범위 안에서 수십 발의 탄흔이 생기도록 밀집사격을 할 수 없다”(최해필 전 육군항공작전사령관)
⊙ “벌컨포가 예를 들어서 맞았다, 어디 땅에, 그거는 상상 초월할 사람이 죽어. 그거는 있을 수가 없어” (최○○ 31항공단 506항공대대 작전과장)
⊙ “저와 여단장이 ‘광주가 전쟁터이냐’고 하면서 사격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음” (방○○ 前 육군1항공여단 31항공단장)


“상상을 초월하는 사람이 죽어!”
  




헬기나 장갑차, 군함에 탑재하는 벌컨포는 사람의 몸을 산산조각 낼 수 있다.

  5·18특조위는 ‘코브라 헬기가 벌컨포를 1500발 수령했으므로 코브라 헬기에서 벌컨포를 사격했을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조종사들은 부인한다. 코브라 헬기가 사격을 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코브라에 장착된 20mm 벌컨포는 경장갑차 등을 상대로 한 화기(火器)로 분당 약 750발 정도의 실탄이 발사된다. 위력은 장갑차의 철갑을 뚫고 사람은 한 발만 맞아도 몸이 잘리는 등 큰 부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게 되며 아스팔트에 맞으면 커다란 홈이 팰 정도다.
  
  “(광주川 사격 지시에 대해) 난 전혀 몰랐어. 전혀 들은 적 없음. 서면자료 내려와도 코브라 20mm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화력인데… 나도 국민인데 거기에 대해서 사격한다? 생각도 못했지. 그 코브라가 사격했으면 역사가 바뀌었을 거야.”(차○○ 소령 2018. 1.22. 녹취, 당시 31항공단 103항공대대 조종사)
  
  “그 사람들이 벌컨이 어떤 총인지를 모르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벌컨은 총(銃)이 아니라 포(砲)야. 포하고 총하고는 개념이 틀려. 포는 날아간 게 터져. 총은 그냥 뚫고 들어가는 게 총이야. 벌컨포가 예를 들어서 맞았다, 어디 땅에, 그거는 상상을 초월할 사람이 죽어. 그거는 있을 수가 없어.”(최○○ 2017. 12.26. 녹취, 당시 31항공단 506항공대대 작전과장)
  
  “(코브라 사격 관련) 나는 그거 있을 수가 없는 거야. 시민을 향해 공격헬기가 그걸 당기면 피해가 보통 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걸 볼 때 나는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해. 들어보지도 못했어 사격 자체를…”(최○○ 준사관 2017. 11.1. 녹취, 당시 61항공단 203항공대대 조종사)
  
  1995년 검찰·국방부 합동조사에서도 동일한 취지의 증언을 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인명피해가 없도록 벌컨 사격하라’고 지시한 상관에게 ‘어떻게 그런 무식한 지시를 하느냐’고까지 말한다.
  
  “첫 번째 사격 관련 요청은 5월 22일 김○○ 장군이 이○○ 대대장에게 광주천을 따라 위협사격을 하라는 것이었음. 이 대대장이 ‘코브라의 경우 20mm 벌컨으로 사격을 하면 그 위력이 엄청나 광주천에 사격을 해도 파편으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생긴다’면서 김 장군에게 불가함을 보고하고, 다시 저와 여단장에게 전화보고를 하여 저와 여단장이 ‘광주가 전쟁터이냐’고 하면서 사격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음. 그러자 김 장군이 처음에는 화를 내었지만 전교사의 방침이 바뀌었는지 결국은 사격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고받은 기억이 있음.
  
  그 외에도 언제인지는 기억에 없으나 전교사에서 APC(장갑차)를 타고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시위대에 대해서 벌컨으로 사격을 해 달라고 하면서 사람은 다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를 하였다고 하면서 이○○가 저에게 ‘어떻게 그런 무식한 지시를 하느냐’고 하며 ‘사격을 하지 않았다’고 보고한 기억이 있음.” (방○○ 1995. 5.17. 진술조서, 前 육군1항공여단 31항공단장)
  
  
  ‘영웅’을 ‘양민학살범’으로 모는 特調委
  
  헬기 조종사들은 헬기 기총사격 시 발생할 수많은 인명피해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사격 명령에 대해 부당성을 설명, 납득시켰다는 것이다. 헬기 사격을 지시하는 상관에게 ‘사격 못한다’고 대들고 ‘시키는 대로 하지 무슨 말이 많으냐’는 힐난을 들으면서도 정식 서면 명령서를 요구하며 끝내 헬기 사격을 하지 않았다. 영화에 나올 법한 영웅들인데 국방부 5·18특조위는 이들을 ‘양민학살범’으로 모는 발표를 한 셈이다.
  
  “김○○ 장군이 저에게 코브라로 광주천을 따라 천에다가 위협사격을 하라고 지시하여 코브라의 경우 20mm 벌컨으로 사격을 하면 그 위력이 엄청나 천에다가 사격을 하여도 파편으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생긴다며 불가함을 보고하였음. 이에 김 장군이 ‘배속이 되었으면 시키는 대로 하지 무슨 말이 많으냐’고 힐난하여 저가 ‘그러면 서면으로 지시를 해 달라’고 하였으나 서면지시가 없어 그날은 사격을 하지 않았음.”(이○○ 1995. 5.15. 진술조서, 前 육군1항공여단 31항공단 103항공대대장)
  
  “김○○ 전교사 전투발전부장이 ‘항공대장, 도청 옥상에 있는 대공화기진지를 제압하라’고 지시, 저희가 ‘도청 옥상에 있는 대공진지를 단발로 제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관총 사격의 경우에는 한번 방아쇠를 당기면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수십 발이 한꺼번에 나가기 때문에 주위 민가에 피해가 야기될 수도 있으니 사격이 곤란하다’고 하면서 ‘정히 사격을 해야 한다면 정식 서면명령서를 달라’고 하였더니 그 장군이 흥분을 하여 무슨 말을 하고는 들어갔는데 그 후 다시 지시를 받은 일이 없음.”(김○○ 1995. 5.24. 진술조서, 前 육군1항공여단 31항공단 506항공대대장)
  
  헬기 조종사들의 공통된 진술은 결국 어떤 기종의 헬기든-그것이 코브라든 500MD든 UH-1H든- 일단 기총사격을 하게 되면 수많은 인명피해가 야기된다는 것이다.
  
  
  여단장의 사격명령을 거부한 조종사
  
  앞에서 설명한 보병학교 교도대의 오인 사격과 관련된 조종사의 증언은 국방부 5·18특조위 조사결과보고서에서 ‘사격이 있었다’는 증거로 인용되었는데, 이번에 기자가 1995년 수사자료를 얻어 읽어 보니 ‘사격명령은 있었지만 사격은 없었다’는 증거로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1980년 5월 24일 오후 1시55분경 공수11여단 63대대가 광주 송정리 비행장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효천역 앞에 이르렀을 때, 부근에 매복하고 있던 전교사 보병학교 교도대 병력이 이들을 무장시위대로 오인, 선두 장갑차와 후속 트럭에 90mm 무반동총 4발을 명중시키는 등 집중사격을 가하였다. 이에 63대대도 응사, 계엄군끼리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63대대 병력 9명이 사망하고 63대대장 등 군인 33명과 마을 주민들이 총상을 입었다(검찰 국방부 합동 조사 보고서). 이 사건 직후 출동한 이정부 육군1항공여단 31항공단 103항공대대장의 증언이다.
  
  “5.24.(注: 자료에는 5.23.으로 되어 있음) 공수부대가 비행단으로 철수하는 것을 엄호하라고 하여 코브라 2대를 인솔하고 공수부대 이동로를 엄호하다가 2시간 정도가 지나 연료 재보급을 위해 광주비행장에서 급유를 하고 있는데 헬기의 무전으로 11여단장이 자기 병력이 이동 중 산 쪽에 있는 폭도로부터 공격을 받아 난리가 났으니 폭도들에게 무차별 제압사격을 해 달라고 요청하여 저가 즉각 출동하여 현장으로 갔는데 막상 공중에서 7.5배 망원경을 사용하여 지상에 있는 병력들을 정확히 확인하니 산 위에 있는 병력이 아군 보병학교 교도대로 확인되어 (그 망원경으로는 병력들의 상의 마크까지 확인이 가능하였음) 저가 아군이라고 보고하니 여단장이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사격을 하라고 하여 저가 다시 확인 후 재차 보고를 하였으며, 저가 그 상황을 전교사에도 보고를 하니 처음에는 믿지 않다가 결국은 저의 말을 믿고 조치를 하여 그날도 결국은 사격을 한 사실이 없습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다. 여기서 이정부 대대장은 공수여단장의 사격명령을 두 번 거부한다. 아무리 사격명령이 내려가도 현장에 출동한 조종사들의 주장이 관철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런데 국방부 5·18특조위는 〈당시 교도대가 아니고 시민군이었더라면 실제 사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사격이 있었다’는 결론의 뒷받침으로 삼는다. 가정과 추리를 결합시키면 공상(空想)이 된다. 이번에 이정부 같은 사격명령을 거부한 조종사들을 찾아냈으니 광주시민들이 이들을 의인(義人)으로 기려야 하는 것 아닌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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