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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과 광화문 촛불시위를 연결시킨 문대통령의 短見
趙甲濟
2018년 10월18일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파리를 떠나면서'라는 글을 올렸는데, "우리는 또한 엘리제궁 곳곳을 걸으며 민주주의와 공화정을 이야기했다. 프랑스 혁명과 광화문 촛불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며 "두 나라의 미래가 포용과 화합, 혁신에 있다는 것도 되새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류가 강한 이유는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이 숭고한 정신을 잃지 않는 한 프랑스는 영원히 아름다울 것"이라고 썼다.
  
  프랑스 혁명을 촛불시위와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이다. 프랑스 혁명의 폭력성은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진다.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은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굴절되었지만 유럽의 자유화에 기여하였다. 프랑스 혁명은 길로틴으로 상징되는 공포정치를 수반, 프랑스를 좌우 대결 구도의 국가로 변질시켰다. 1871년엔 파리 코뮌 사건이 일어나 파리에서 시가전으로 3만 명이 죽었다. 지금도 좌우 대결 구도가 잠재된 나라가 프랑스이다.
  
  영국의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저술을 통하여 혁명의 위헙성을 경고하였다. 한국의 근대화 혁명 과정은 피를 덜 흘린 점에서 프랑스 型이라기보다는 英美 型에 더 가깝고, 군대가 주도한 점에선 일본의 명치유신에 비유할 수 있다. 가장 성공한 근대화 혁명이고, 가장 적은 희생을 치렀다. 물론 공산군의 남침으로 희생된 300만 명을 계산에 넣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프랑스 혁명을 광화문 촛불시위에 연결시키면 콩코드 광장의 단두대와 촛불시위 때 광화문 광장에 등장한 단두대 모형이 생각 난다. 좋은 연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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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프랑스이지만 프랑스 대혁명 169년 후인 1958년(4공화국 때), 171년 후인 1961년(5공화국 때)에도 군부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左右(좌우)대결은 프랑스에서 시작된 정치행태이다. 左右대결을 정치의 軸(축)으로 하는 한국은 프랑스型에 가까운데, 그렇다면 좌익 폭동과 우익 쿠데타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인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제1공화국 등장, 루이 16세 부부 처형,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황제 등극, 1814년 왕정復古(복고), 1815년 워털루 전투로 나폴레옹 몰락, 1830년7월 혁명으로 새 왕조 등장, 1848년 2월 혁명으로 왕정 붕괴, 제2공화국 등장(나폴레옹 조카가 대통령에 당선), 1851년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로 공화정 종식시키고 이듬해 황제로 등극, 크리미아 전쟁, 1871년 普佛(보불)전쟁에서 프랑스 패배, 王政폐지, 제3공화국 등장, 파리콤뮨.
  
   대혁명에서 파리콤뮨까지 82년간의 파란 많은 프랑스 민주화 과정에서는 20여년에 걸친 네 차례 전쟁, 두번의 혁명, 두번의 쿠데타, 그리고 파리콤뮨이란 內戰이 있었다. 이런 소용돌이의 軸은 地主-상공업자-가톨릭 교회-군장교 중심의 우익과 노동자-농민-지식인 중심의 좌익 사이 대결이었다.
  
   1870년 독일통일을 노린 프러시아가 프랑스를 친 普佛전쟁에서 나폴레옹 3세가 세단에서 포위되어 항복하였다. 프러시아군은 파리로 진격, 이 도시를 포위하자 새 정부는 이듬해 프러시아에 막대한 배상금과 알사스-로렌 지방을 바치기로 하고 항복하였으나 노동자와 지식인들이 중심이 된 좌파 시민군은 항복을 거부하고 파리 콤뮨이란 독자 정부를 수립, 파리를 장악하였다. 베르사이유에 본부를 둔 정부군(국회파)은 파리로 진격, 두 달 간의 치열한 시가전 끝에 파리시 의회 중심의 좌파세력을 일소하였다. 약3만 명(대부분이 파리 콤뮨 세력)이 죽었다. 빅톨 유고는 '파리는 이 내전으로 最良(최량)의 남녀 10만 명을 잃었다'고 개탄하였다. 이 기간 프러시아는 포로로 잡았던 10만 명의 군인을 프랑스 정부군에 돌려보내, 진압작전을 도왔다. 계급모순은 민족모순보다 더 강하다는 말이 있다.
  
   파리 콤뮨의 참사가 일어난 것은 프랑스 대혁명 82년 뒤였다. 민주주의가 성숙되기엔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2017년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는 나이가 69세에 불과하다. 프랑스를 오늘날까지 흔들고 있는 左右 대결이 한반도에선 南北 사이뿐 아니라 남한내에서도 2重으로 전개되고 있다. 프랑스보다 훨씬 복잡한 內戰的(내전적) 구도를 안고 있다. 파리 콤뮨 같은 사건이 한국에선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는 이들이 있다면 세계사 공부를 다시 할 필요가 있다.
  
  
  *단두대에더 처형된 유명 인사
  
  
  •뒤바리 부인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샤를로트 코르데
  
  
  •생 쥐스트
  
  
  •앙리 데지레 랑드뤼
  
  
  •앙투안 라부아지에(산소와 질량불변의 원칙 발견자, 화학의 선구자)
  
  
  •엘리자베트 필리핀 마리 엘렌 - 루이 16세의 여동생
  
  
  •올랭프 드 구즈
  
  
  •자크 피에르 브리소
  
  
  •자크 르네 에베르
  
  
  •조르주 당통
  
  
  •카미유 데물랭
  
  
  •프랑수아 노엘 바뵈프
  
  
  •프랑수아 조세프 웨스텔만
  
  
  •하얀 장미 단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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