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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칼럼] 5·18 왜곡 발언, 역사를 배반하다
2019년 02월15일  
역사에 직진만 있는 건 아니다. 때로 후퇴하기도 하고 나락에 굴러떨어지기도 한다. 자유한국당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의 '5·18 망언'이 생생한 증거다. 공당(公黨)의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를 모독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겉치레 사과까지 증발시킨 이들의 두꺼운 얼굴은 함께 가는 역사의 진전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웅변한다.

'5·18 망언'은 민주주의 파괴에다 탈진실(脫眞實·post-truth)과 지역감정을 결합한 치명적 발언이다. 탈진실은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신념이 여론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뜻한다. 감성적인 데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일반화한 한국 사회에선 탈진실과 음모론이 범람한다. 개인 모두가 뉴스 생산자인 환경에서 가짜 뉴스(fake news)와 사실의 경계는 쉽게 무너진다. 탈진실과 지역감정의 결합은 우리 사회 저변의 지역차별을 더 강고하게 만든다. 정보의 폭포효과가 부추긴 음모론이 정보 수용자의 확증 편향을 자양분 삼아 무한 증식한다. 결국 '5·18 망언'은 탈진실과 음모론이 얽힌 반동적(反動的) 지역감정의 산물이다.

지난 39년간 여섯 차례의 국가 공식 조사로 명백한 허위임이 판명된 '5·18 북한군 개입설'을 사과하기는커녕 5·18 유공자 명단을 밝히라며 역공(逆攻)을 펴는 게 단적인 증거다. 이들은 5·18 유공자뿐 아니라 4·19 유공자, 보훈대상자, 베트남 고엽제 유공자 명단 등도 비공개라는 사실조차 무시한다.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이 개인정보 보호와 다른 국가유공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기각했다는 사실도 감춘다. 이들에겐 객관적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5·18 유공자가 공무원시험 가산점에서 특혜를 받아 일반 시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루머도 탈진실을 악용한 호남 차별적 음모론이다. 모든 국가 유공자는 공적(功績)에 상응한 혜택을 동일하게 받는다. 2018년 7월까지 공무원시험 가산점 혜택을 받은 5·18 유공자는 총 446명이다. 가점을 받아 공무원으로 취업한 국가유공자 3만3658명의 1.3%다. 2017년도 7·9급 공무원시험 합격자 1만9938명 중 국가유공자는 621명인데 이 가운데 5·18 유공자는 19명으로 전체 합격자의 0.1%에 불과하다.

'5·18 유공자 특혜설'이 악성(惡性)의 가짜 뉴스라는 사실은 국가보훈처 공지에서 바로 확인 가능하지만 탈진실의 신봉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짜 뉴스와 음모론은 호남에 대한 편견을 무의식의 전염병처럼 확산시킨다. 망국병인 지역감정의 실체가 호남 차별이었다는 현대사의 진실은 그 과정에서 철저히 은폐된다. 군사독재 시대에 정치권력과 경제개발에서 배제된 호남이 사회심리적으로도 소외당했던 비극의 역사는 망각되고 만다. 당시 지배 세력의 장기 집권용 정치공학이었던 호남 배제의 논리가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과 궤를 같이했음은 물론이다.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시민사회의 진화를 해친 지역감정을 근원적으로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5월 광주' 정신이다. 따라서 '5월 광주'는 군사독재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임과 동시에 지역 차별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차별을 극복하는 대동(大同) 사상으로 진화해가야 한다. 백년 단위로 볼 때 우리 현대사는 대동과 탕평, 민주와 공화(共和)의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 3·1운동,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월 광주, 6·10 시민항쟁, 그리고 촛불이 가리키는 역사의 흐름이 바로 그것이다. 민주 운동사의 축적은 경이로운 산업화의 기적과 함께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이미 사법적·역사적 평가가 끝나 나라의 일부분이 된 '5월 광주'에 생채기를 내려는 '기억의 전쟁'은 역사의 흐름을 거역하는 자해 행위다.

'5·18 망언'은 시민적 양식(良識)에 대한 모욕이자 대한민국의 성취를 부인하는 망동(妄動)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탈진실의 음모론을 부풀리는 관행이   나라를 망친다. 탈진실과 가짜 뉴스에 맞서 사실의 위엄을 존중하는 태도야말로 시민적 용기의 정수(精髓)다. 시민정신으로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강력한 민주공화국이 탄생한다. 차별과 편견을 넘어 미래로 나아가는 시민정신만이 역사를 만든다. '5월 광주'는 '우리 모두의 나라'로 가는 거보(巨步)였다. 우리는 모두 그 길을 함께 걷는 역사의 동행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14/20190214033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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