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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이란 핵과학자 암살 작전
2020년 12월28일  
趙甲濟  
  
지난 27일(현지시각) 발생한 이란 핵 개발 핵심 과학자 모센 파흐리자데 암살은 “3분간 어떠한 요원의 현장 개입 없이 원격조종 기관총으로” 이뤄졌다고, 이란 반(半)관영 파르스 통신이 30일 전했다. 파흐리자데가 탄 승용차를 선도(先導)하던 경호 차량 근처에서 폭발물이 먼저 터지고, 이후 최소 12명의 저격조가 차량을 벗어난 파흐리자데와 경호원들을 사살하고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갔다는 보도와는 다른 모습이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과 하레츠 등 이스라엘 언론이 파르스 보도를 인용한 상황은 다음과 같다.
  파흐리자데 부부는 이날 아침 경호 차량들의 앞뒤 호위를 받으며 수도 테헤란 동쪽의 별장 지역인 아브사르드로 향하고 있었다. 앞서 가던 경호차량이 사정(射程)거리에 진입하는 순간 암살 작전이 시작했고, 수많은 총탄이 파흐리자데가 탄 방탄(防彈) 차량에도 쏟아졌다고 한다. 파흐리자데는 자신이 공격받는 줄 모르고, 총격음을 어떤 사고나 차량 문제로 인해 발생한 소음으로 생각하고 차량을 도로변에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그가 자동차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150m 떨어진 곳에 있던 닛산 차량에 탑재된 원격조종 기관총이 작동하기 시작했고, 파흐리자데는 옆구리에 두 발, 등에 한 발을 맞았으며 등의 한 발은 그의 척수를 관통했다. 직후 닛산 차량은 폭발했다. 파르스 통신은 닛산 차량의 소유주는 암살 작전 한 달 전인 10월29일에 이미 이란을 출국했다고 보도했다
  
  배후로 의심 받는 이스라엘의 언론 매체들은 “현장 사진을 분석한 많은 군사전문가들은 ‘원격 조종 기관총’이라는 파르스 보도에 의문을 표시한다”며 “파흐리자데 부부가 탄 차량을 겨냥해 정밀하게 이뤄진 총격은 원격조종 자동 기관총으로는 힘들고, 고도로 훈련된 무장요원들의 솜씨에 걸맞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먼저 로터리에 세워진 닛산 차량이 폭발하면서 인근 송전기가 쓰러졌고, 이어 인근의 차량과 모터사이클에서 나온 12명의 저격 요원들이 파흐리자데 부부의 차량에 총격을 가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현장에서 자국 요원이 체포되지 않는 한, 자국의 개입을 부인한다. 29일 유발 스타이니츠 이스라엘 에너지 장관은 TV에 “이란 내 암살은 누가 했든지, 이스라엘뿐 아니라 중동 전(全)지역과 세계에 도움이 된다”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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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핵 개발 관련 과학자가 암살되었다. 이란 정부는 이스라엘을 암살 배후로 지목했다.
  
  이란 국영 IRNA통신 등은 27일(현지 시각) 이란 국방부의 연구원이자 핵 과학자인 모센 파크리자데(59)가 테헤란 동쪽 소도시 아브사르드에서 매복공격을 받고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차량을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접근해온 트럭에서 폭발물이 터졌고, 직후에 괴한들이 차량에 총격을 가했다. 파크리자데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죽었다.
  파크리자데는 1999~2003년 이란이 진행한 핵무기 개발 계획인 ‘아마드 프로젝트’를 주도한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고 조선일보가 전했다. 2011년 유엔보고서에는 그가 이란의 핵무기 기술 개발에 참여했으며 여전히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란에서는 파크리자데를 ‘이란의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비유하기도 한다. 일부 언론은 2013년 이란과 북한의 핵커넥션을 보도하면서 “이란 핵무기 총책임자인 파크리자데를 포함한 이란 핵과학자들이 북한의 3차 핵실험을 참관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18년 모사드가 테헤란 남서부 슈러브드 지역의 비밀시설을 급습해 확보한 핵개발 관련 기밀 자료를 공개하며 “아마드 프로젝트를 주도한 이란 핵과학자 파크리자데가 2018년에도 SPND라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비밀 조직의 책임자다. 파크리자데라는 이름을 기억하라”고 경고했었다.
  
  호세인 살라미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성명을 통해 이 사건을 ‘테러 작전’이라고 규정하며 “이 비겁한 테러 행위의 기획자와 조정자들은 이 같은 야만적인 행동이 우리의 과학 지평을 정복하려는 집단 의지에 주름 하나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점과, 그들을 기다리는 복수가 이미 우리 일의 필수적인 부분이 됐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은 “우리는 이번 일에 연관된 자들을 추적해 처벌할 때까지 쉬지 않겠다”며 “테러 조직과 그 지도자, 이 비겁한 시도의 가해자들은 엄중한 복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했다. 호세인 데흐건 이란 최고지도자 군사 수석보좌관은 “시온주의자(이스라엘)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 말미에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전면전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미 백악관과 CIA는 공식 언급을 피하는 가운데, 한 미국 정부 관리는 이 사건의 배후가 이스라엘이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NYT는 “올해 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암살 때처럼 이란의 날카로운 반응이 빠르게 나왔다”며 “이란 핵협정을 되돌리려는 바이든 당선인의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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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에 영향력의 절정기를 맞았던 영국의 언론 재벌 로버트 맥스웰은 체코에서 출생한 유대인이었다. 그는 거의 모든 가족을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잃었다. 영국군에 들어가 장교가 된 그는 1948년에 이스라엘이 建國(건국)하자 체코가 이스라엘에 무기를 대주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스라엘은 건국하자마자 아랍국가들과 전쟁에 돌입하는데, 체코製(제) 무기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1980년대 그는 데일리 미러, 선데이 미러, 데일리 레코드, 선데이 메일 같은 신문사와 출판사 및 텔레비전 방송국을 소유, 영국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노동당 국회의원도 두 차례 지냈다.
  
  1984년 맥스웰은 이스라엘 핵개발의 代父(대부)이기도 한 수상 시몬 페레스(대통령도 역임)를 만난 뒤 해외정보기관 모사드의 적극적인 협조자가 되었다. 페레스는 모사드 부장 나훔 아드모니를 맥스웰에게 소개해주었다. 맥스웰은 거물 언론인으로서 세계의 지도자들을 쉽게 만나고 다니면서 고급 정보를 수집, 모사드에 전해준다.
  
  1986년 9월14일 맥스웰은 모사드의 아드모니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디모나 핵시설에서 근무했던 한 기술자가 대리인을 통하여 자신이 소유한 신문사 선데이 미러에 核시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하여 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보중엔 비밀 시설에 대한 사진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기술자의 이름은 디모나에서 9년간 근무한 적이 있는 모로코 출신의 유대인 모르데차이 바누누. 아드모니 부장은 페레스 수상에게 直報(직보)하였다. 모사드가 바누누의 행적을 조사하니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바누누는 핵무기를 제조하는 시설까지 볼 수 있는 保安 허가증의 소유자였다.
  
  이스라엘은 당시 핵폭탄을 수백 개나 보유하고 있었지만 대외적으론 "核에 대하여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는 모호성을 核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었다. 이 모호성 덕분에 이스라엘은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핵강국이란 사실을 증명하는 폭로가 이뤄지면 이 모호성과 유연성이 깨진다.
  
  이스라엘 정부는 비상대책반을 구성하였다. 바누누를 암살하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납치로 결정되었다. 모사드는 바누누가 선데이 타임즈와도 접촉을 하기 시작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그들은, 로버트 맥스웰을 동원, 선수를 쳤다. 맥스웰의 지시로 선데이 미러는 바누누가 제공한 정보는 가짜라고 보도하였다.
  
  선데이 타임즈는 기사를 쓰기 전에 영국의 핵전문가를 바누누와 만나게 하여 정보의 眞僞(진위)를 확인하게 하였다. 그 결과는 "진짜"였다.
  
  선데이 타임즈는 바누누를 보호하기 위하여 마운트바텐 호텔에 투숙시켰다. 모사드는 런던에 사는 협조자들을 동원, 바누누의 거처를 알아냈다. 모사드는 美人計(미인계)를 쓰기로 하였다. 모사드의 여성 첩보원 세릴 벤 토브가 동원되었다. 그는 결혼한 상태에서 이 작전을 자원하였다.
  
  9월24일 바누누는 따라다니는 선데이 타임즈 기자를 따돌리고 호텔 바깥으로 산책을 나갔다. 타임즈 기자는 그를 미행하였다. 기자는 바누누가 라시세스터 광장에서 한 여자와 이야기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금발의 미녀였다. 유대인 냄새가 났다.
  
  호텔로 돌아온 바누누는 선데이 타임스 기자에게 "신디라는 미국 여자를 만났다"면서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고 털어놓았다. 기자가 "당신이 그 여자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고 계획된 것 같다"고 경고했지만 바누누는 듣지 않았다. 모사드 첩보원 세릴은 훈련 받은 대로 첫눈에 바누누를 사로잡은 것이다.
  
  며칠 뒤 공작원 "신디"는 로마에 사는 여동생을 만나러 가자고 바누누를 설득, 로마行 비행기에 올랐다. 이 여객기엔 다섯 명의 모사드 요원이 동승하였다. 로마 공항에서 신디와 바누누는 택시를 타고 여동생이 산다는 아파트로 갔다. 여동생의 호실에선 세 명의 모사드 요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바누누를 끌어들여 마취시켰다. 요원들은 바누누를 들것에 실어 바깥으로 데리고 나와선 앰뷸런스에 옮겼다. 걱정스런 표정을 한 이웃사람들에겐 "친척인데 갑자기 발병하였다"고 설명했다.
  
  바누누를 실은 차는 해안으로 달려갔다. 작은 배에 옮겨진 바누누는 먼 바다에서 기다리던 이스라엘 화물선으로 다시 옮겨졌다. 사흘 후 바누누를 납치한 요원들은 이스라엘의 하이파 항에 도착하였다. 선데이 타임스는 10월에 바누누의 폭로를 기사화하였다. 이스라엘이 적어도 100개의 핵폭탄을 갖고 있다고 썼다.
  
  바누누는 간첩죄로 18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11년간 독방에 감금되었다. 국제여론이 나빠지자 1998년에 좀 좋은 방으로 이감되었다. 그는 2004년에 석방되었으나 이스라엘 당국은 엄격한 제한 조치를 취하였다. 출국은 금지되고 외국인을 만날 수 없으며, 항구와 공항에 접근할 수 없게 하였다. 이스라엘 국경의 500m 이내론 다가갈 수 없다. 전화도, 인터넷도 사용이 금지되었다. 이 규정을 어기면 석방조건 위반으로 수시로 잡아 가둔다.
  
  1991년 11월5일 로버트 맥스웰은 카나리아 군도 근해를 항해중이단 자신의 호화여객선에서 바다로 떨어져 죽었다. 失足死(실족사)로 발표되었으나 자살이란 설과 모사드에 의한 암살이란 설도 있다. 사고 직전 한 전직 모사드 요원은 미국에서 발간한 책을 통하여 맥스웰과 데일리 미러의 외신부장 닉 데이비스를 모사드 요원이라고 지목하였다. 데일리 미러는 맥스웰이 모사드에 의하여 암살되었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실었다. 맥스웰은 이스라엘에 묻혔는데 國葬(국장)에 버금 가는 장례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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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公認암살단을 만들어 뮌헨올림픽 테러 관련자들을 20년간 추적, 모조리 처단하다!
  
  1972년 善의 뮌헨에서 열린 여름 올림픽의 선수촌으로 침입한 팔레스타인 "검은 9월단" 테러단이 이스라엘 선수 및 코치들을 인질로 잡아 경찰과 대치한 끝에 11명을 죽였다. 서독 경찰관 1명도 사망하였다. 테러단 5명이 총격전으로 죽었고 세 명이 잡혔다. "검은 9월단"은 그 뒤 서독의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납치하여 善 정부를 위협한 끝에 잡혀 있던 세 명의 동료를 구해냈다.
  
  골다 메이어(여성) 이스라엘 총리는 이 테러를 기획하고 가담한 범인들을 암살하는 조직을 만들게 하였다. 정보기관 모사드와 이스라엘 군대가 합동으로 특수조직을 만들었다. 이 팀의 첫 작전은 1973년 4월 레바논의 베이루트로 침투하여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의 정보책임자 모하메드 유수프 알 나자르 등 세 명을 죽이는 일이었다. 이 特攻(특공)작전의 지휘관은 나중에 이스라엘 군의 총참모장, 그리고 수상이 된 에후드 바락(현재 국방장관)이었다. 이 국가公認(공인) 암살단은 주로 유럽과 중동을 돌아다니면서 팔레스타인 테러단을 추적하여 죽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실수를 하였다. 1973년 6월 노르웨이 릴리함메르에서 한 모로코인을 뮌헨사건 관련자 알리 하산 살라메로 誤認(오인)하여 암살하였다가 요원 다섯 명이 붙들렸다. 이스라엘 정부는 외교를 통하여 2년 뒤 옥살이하던 요원(여성 2명, 남성 3명)을 전원 송환받았다. 이스라엘 암살팀은 살라메에 대한 추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드디어 1979년 1월22일 그를 베이루트에서 발견, 원격조종 폭탄으로 죽였다.
  
  이 보복작전은 "신의 분노"라는 암호명을 가졌다. 1992년까지 20년 동안 계속되었다. 얼마나 많은 테러관련자들을 죽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십 명으로 추정된다. 뮌헨 사건 관련자 중 생존자는 두 명이라고 한다. 이 보복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가 수년 전 개봉되었던 "뮌헨"이란 작품이다. 스필버그가 제작하였다.
  
  한국이 이스라엘 같이 보복하였더라면 1·21 청와대 습격사건 관련자, 육영수 여사 암살사건 관련자, 아웅산 폭파사건 관련자, KAL기 폭파사건 관련자들은 다 죽었을 것이다. 거기에 김일성, 김정일이 포함되었을지도 모른다.

[ 2020-11-30, 21:51 ]

출처: http://chogab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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