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돌파하려면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2023년 10월31일  
조지 케난의 충고

趙甲濟    

1969년에 출판된 딘 에치슨 회고록 [현대사가 만들어지는 현장에서](Present at the Creation)는 6·25 전쟁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당시 그는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다. 이 회고록은 1970년에 퓰리처상을 받았다. 글이 아주 솔직하고 긴박하다. 1950년 11월 통일을 향해 최후의 진격을 개시한 유엔군을 덮친 대재앙, 중공군의 기습을 전후한 대목이 가장 재미 있었다.
  
  맥아더는 중공군의 대공세에 직면하자 38도선까지의 후퇴를 지시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긴 후퇴가 시작된다. 승리 일보 직전에 일격을 당한 워싱턴은 공황 상태에 빠진다. 트루먼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군부는 미군 철수까지 검토한다. 국무부, 국방부 수뇌부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맥아더는 중국 본토를 폭격하고 장개석 군대를 중국에 상륙시켜 중국을 수복하려는 자기 나름의 야망을 워싱턴에 들이민다.
  
  영국은 유럽의 방위가 한국전 때문에 약해질까봐 미국에 대해서 휴전을 제의하도록 압력을 넣는다. 이런 혼란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이성적인 정책결정을 할 것인가로 고민하는 에치슨 장관에게 1950년 12월4일 조지 케난(전 駐소련 미국 대사. 對蘇봉쇄론의 주창자로 유명하다)가 메모를 전달한다. 에치슨은 이 메모를 읽고 머리가 맑아지고 용기가 우러나오더라면서 참모들에게 읽어주고는 자신의 회고록에 그 全文을 소개했다.
  
  <친애하는 장관님: 어제 저녁의 논의를 계속하는 입장에서 한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私的인 일에서도 그렇지만 국제문제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일어난 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 일을 어떻게 감당해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우리 조국의 운명에 지금 큰 실수와 재앙이 일어난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데, 문제는 미국인들이 이 사태에 대해서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사태를 솔직하고 당당한 각오로써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고 倍前의 노력과 결의로써 轉禍爲福의 계기를 만든다면, 즉 진주만의 경우처럼 필요하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자신감이나 우방이나 소련과의 협상력까지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 국민들과 우리 우방들에 우리가 직면한 불행한 사태를 숨기거나 고함을 지르고 신경질을 내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이 위기는 우리의 자신감과 세계 속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위상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해치는 방향으로 악화될 것입니다. 조지 케난>
  
  There is one thing I would like to say in continuation of our discussion of yesterday evening. In international, as in private, life what counts most is not really what happens to someone but how he bears what happens to him. For this reason almost everthing depends from here on out on the manner in which we Americans bear what is unquestionably a major failure and disaster to our national fortunes. If we accept it with candor, with dignity, with a resolve to absorb its lessons and to make it good by redoubled and determined effort-starting all over again, if necessary, along the pattern of Pearl Harbor-we need lose neither our self confidence nor our allies nor our power for bargaining, eventually, with Russians. But if we try to conceal from our own people or from our allies the full measure of our misfortune, or permit ourselves to seek relief in any reations of bluster or petulance or hysteria, we can easily find this crisis resolving itself into an irreparable deterioration of our world position-and our confidence in ourselves. George Kennan>
  
  에치슨 회고록을 읽어보면 1950년 11월의 중공군 기습으로부터 시작된 유엔군의 후퇴, 서울 포기, 중공군의 錦江線 진출 시기에 한국의 운명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워싱턴에서 몇번이나 죽었다가 살아나는 곡절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몇번이나 미군 철수와 한국을 포기하는 계획을 세우다가 몇번이나 한국인을 공산군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고 그 계획을 포기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을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들은 애치슨 국무장관, 마셜 국방장관, 리지웨이 8군 사령관, 그리고 트루먼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다.
  
  1963년 자의 반 타의 반의 외유를 떠난 군사정부의 실력자 金鍾泌씨가 미주리주에서 은퇴생활을 하고 있던 트루먼 대통령을 찾아가 만났다고 한다. 트루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참 미안하게 되었소. 영국 친구들 때문에 통일을 시켜드리지 못했으니 말이오'
  
  당시 영국은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었다. 에치슨 회고록에 따르면 애틀리 수상은 1950년 12월 초 워싱턴에 와서 트루먼 대통령을 만났을 때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하고 유엔 안보리 의석을 대만에서 빼앗아 중공에 주어야 한다고 설득했다는 것이다. 당시 퇴각중이던 미군을 안전하게 빼내어오려면 그 정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서 트루먼은 단호하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한국에 머물고 싸울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면 더 좋고 지지가 없더라도 우리 혼자서라도 한국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국은 캐나다, 인도 등 영연방국가들을 동원하여 1951년 1월 한국을 실질적으로 포기하는 현위치 휴전안을 만들어 유엔의 결의로써 중공에 제의하자고 나섰다. 에치슨은 고민했다. 영국 등이 초안한 제의내용은 '현 위치에서의 휴전(당시 중공군은 수원까지 진출했다), 모든 외국 군대의 단계적 철수' 등으로 한국의 실질적 포기를 핵심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치슨은 만약 이 휴전안에 미국이 동의하여 중공에 제의했는데 중공이 수용하겠다고 나서면 한국을 잃는 것이 되고 이 제의에 동참하지 못하겠다고 나서면 유엔과 동맹국의 지지를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중공이 결코 이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중공은 그 무렵 대만을 유엔 안보리에서 축출하고 그 자리에 중공이 가입해야 한다는 등을 휴전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만약 중공이 받는다면?
  
  에치슨은 트루먼을 설득하여 영국 등이 마련한 휴전안에 동의한다. 속으로는 중공이 거부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과연 유엔이 채택한 휴전안을 중공은 거부한다. 미국은 안도한다. 영국은 그 뒤 할 수 없이 중공을 침략자로 규정하는 유엔 결의안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만약 그때 중공이 유엔의 휴전안을 받았다면 휴전선은 충청도 금강을 따라 그어졌을 것이고 미군 철수 직후 한국은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리지웨이 장군은 교통사고로 죽은 워커 8군 사령관 후임으로 부임하여 중공군의 남진을 저지한 뒤 반격으로 전환하여 1951년 3월 서울을 탈환하고 38선을 회복했다. 이때부터는 한국포기란 말이 사라졌다. 가슴에 수류탄을 주렁주렁 달고 다닌 리지웨이 장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는 공수사단장이었다. 중국군대는 지금도 맥아더보다 리지웨이를 더 높게 평가한다고 한다.

[ 2023-10-29, 11:25 ]

출처: https://www.chogabj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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