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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전 오늘, 박정희가 남긴 말-"난 괜찮아."
趙甲濟
2017년 10월26일  
野獸의 마음으로
  
  
   신재순이 朴 대통령의 등에서 솟고 있는 피를 손바닥으로 막으면서 “각하, 정말 괜찮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한 말`―`“응, 나는 괜찮아`……”는 그가 이승에 남긴 마지막 肉聲이 됐다. 신재순은 이 말엔 ‘난 괜찮으니 너희들은 여기를 빨리 피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그 자리에서 느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일국의 대통령이시니까 역시 절박한 순간에도 우리를 더 생각해 주시는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27일 새벽 金鍾泌이 연락을 받고 청와대에 갔을 때 金桂元은 간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실토하면서 “각하께서는 그 상황에서도 여자 아이들 걱정을 하십디다”라고 말하더란 것이다. 마루로 피해 나온 金 실장은 대통령이 “난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을 다 듣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각하, 진짜 괜찮습니까?”
  
   신재순, 심수봉 두 여자가 번갈아 물었다. 이제는 대답이 없었다. 대통령의 신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정보부장 의전비서관 朴興柱 대령은 이기주, 유성옥과 함께 대통령 경호원들을 죽이기 위해서 주방 안으로 집중사격을 가한 뒤 안이 조용해지자 나棟 건물을 오른편으로 돌아서 현관 앞으로 뛰어갔다. 어두운 잔디밭에서 흰 와이셔츠 차림의 김재규가 황급하게 뭔가를 작동시키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구부린 자세로 양손을 비비는 것 같았다. 불발된 권총의 노리쇠를 앞뒤로 진퇴시키려 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다가간 박흥주 대령은 “박 비서관입니다”라고 하면서 김재규의 두 팔을 잡으려고 했다. 김재규는 박 대령의 손부터 보았는데 총이 없었다. 그는 팔꿈치로 朴 대령을 밀고는 다시 현관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현관에는 위에 달려 앞뒤로 흔들거리는 쪽문이 붙어 있었다. 박흥주가 그 쪽문 사이로 보니 안쪽 마루에서 양복 상의를 벗은 김계원 실장이 안방에서 나와 후다닥 뛰는 것이었다. 황급히 피하는 모습이었다.
  
   이때 金載圭는 車智澈이 권총을 차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간 마음이 급한 게 아니었다. 그는 고장난 권총을 고치지도 못하고 현관에서 마루로 다시 뛰어들어 가는데 플래시를 든 박선호 의전과장과 마주쳤다. 박 과장은 대기실에서 두 경호관을 사살하고 마루로 나와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김재규는 들고 있던 자신의 권총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는 박선호의 권총을 낚아채더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직전 차 실장이 화장실에서 빠져나와 “경호원, 경호원” 하면서 문 쪽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차지철이 흘리는 피가 오른쪽 벽 아래를 따라서 선을 그렸다. 차지철이 문으로 뛰어나가려는 찰나에 권총을 들고 들어오는 김재규와 딱 맞서게 됐다. 김재규가 박선호로부터 받아든 38구경 리볼버 5연발 권총에는 세 발이 남아 있었다. 원래 다섯 발이 장전되어 있었는데 박선호가 두 발을 쏘았던 것이다. 차지철은 안쪽 병풍 옆에 있던 장식용 문갑을 방패처럼 치켜들었다.
  
   “김 부장, 김 부장…….”
  
   차지철은 애원하고 있었다. 그는 문갑을 앞세우고 김재규를 향해 덤벼들었다. 김재규는 차 실장의 가슴을 향해서 한 발을 발사했다. 탄도검사 결과에 따르면 피격 당시 차지철은 문갑을 들고 자세를 낮추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오른쪽 가슴 상부에서 들어간 총탄은 허파 부위를 지나 왼쪽 등 아래로 진행하다가 몸속에서 멈추었다. 육군과학수사연구소 법의과장 정상우 소령의 사체검안서에 따르면 이 제2탄이 치명상으로서 血胸(혈흉)에 의한 호흡부전과 심장부전을 일으켜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한 20여 분 뒤에 일어난 김태원에 의한 두 발의 총격은 확인사살이 아니라 이미 죽었거나 죽을 사람에 대한 사격이란 뜻이 된다. 차 실장은 잡고 있던 문갑과 함께 뒤로 넘어졌다.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문갑 속에 있던 물건들이 쏟아졌다. 이때 심수봉이 박정희 곁을 떠나 방 안을 뛰쳐나갔다.
  
   김재규는 다음 순간에 벌어진 상황을 1979년 11월 8일에 작성한 제2차 자필진술조서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차 실장을 거꾸러뜨리고 앞을 보니 대통령은 여자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있어 식탁을 왼쪽으로 돌아서 대통령이 있는 데로 가자 거기에 앉아 있던 여자가 본인의 얼굴을 쳐다보며 공포에 떠는 눈초리로 보고 있어 총을 대통령 머리에서 약 50센티미터까지 가까이 대고 1발을 발사하여 대통령을 즉사시키고 나온 것이 기억이 되며…….”
  
   제2탄은 박정희의 오른쪽 귀 위로 들어가 뇌수를 관통하고 콧잔등까지 나와서 살 속에서 멈추었다. 이것이 치명상이 되었지만 즉사는 아니고 아직 생명은 붙어 있었다. 끝까지 대통령 곁을 지킨 신재순은 김재규가 방에 들어올 때 발 밑으로 푹 파인 아래쪽으로 숨었다가 차지철을 쏘는 총성을 듣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박정희를 안고 있다가 다가오는 김재규와 눈이 마주쳤다. 신재순은 지금도 “그것은 인간의 눈이 아니라 미친 동물의 눈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녀는 김재규가 박정희의 머리에 총을 갖다 대었을 때는 ‘이제는 나도 죽는구나’ 하고 후다닥 일어났다. 실내 화장실을 향해서 뛰는 그녀의 등 뒤에서 총성. 귀가 멍멍하고 잠깐 정신이 나갔다가 깨어 보니 주위가 조용했다. 방 안은 화약 냄새로 자욱했다. 신 양은 실내 화장실 안에서 문을 잠그고도 손잡이를 꼭 잡고 있었다. 김재규가 박정희의 머리를 향해 쏜 총탄은 이 5연발 리볼버의 네 번째 총탄이었다.
  
   김계원은 김재규가 차 실장과 대통령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나올 때까지 마루에 서 있었다. 이 마루와 만찬장은 붙어 있고 마루에서는 열려 있던 문을 통해서 방 안에서 김재규가 차 실장과 대통령을 쏘는 것을 볼 수 있는 위치였다. 김재규와 그 부하들이 총질을 해 대는 가운데서 무장하지 않은 김계원이 취한 피신행동을 어느 정도 비판할 수 있을지는 쟁점으로 남는다. 김계원은 “낭하에 나가서 불을 켜려고 했다. 대기실, 주방, 만찬장 사이의 중간지점에 있는 화장실 입구에 머리를 대고 멍하니 서 있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김재규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못 보았고 전깃불이 다시 켜지고 방안에서 “총성과 싸우는 소리가 나고 쾅하고 넘어지는 소리가 나고,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나오는 김재규와 마주쳤다”는 것이다. 마루에서 두 사람이 스치면서 나눈 대화에 대해서 김재규는 합수부 조사에서 이렇게 진술했다(1979년 11월 8일 2차 자필진술조서).
  
   본인: 나는 한다면 합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보안 유지를 철저히 하십시오.
  
   김계원: 뭐라고 하지.
  
   본인: 각하께서 과로로 졸도했다고 하든지 적당히 하십시오.
  
   김계원: 알았어.
  
   김계원은 법정에서 “그때 김재규가 총을 들고 살기가 등등하여 그 장소를 모면하기 위하여 ‘알았어’라고 한 것뿐이다”라고 증언했다.
  
   超人
  
   총구 앞에서, 그리고 가슴을 관통당하고서, 또 꺼져 가는 의식 속에서 다가오는 제2탄을 기다리면서 박정희가 보여 준 행동은 세계 암살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超人的인 모습이었다. 김재규의 벽력같은 고함과 차지철을 쏜 첫 총성, 그리고 한 4초간의 여유. 이때 박정희는 “뭣들 하는 거야!”란 한마디만 외친 뒤 그냥 눈을 감고 정좌한 채 가만히 있다가 김재규의 총탄을 가슴으로 받았다. 그리고 “난 괜찮아`……”란 말을 두 번 남겼다. 우선 이런 행동의 목격자인 두 여인의 합수부 진술을 검토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신재순의 기억을 되살려 이것이 사실인가를 알아보았다. 확인 결과 이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이성을 잃었기 때문에 이런 무모하리만큼 태연한 행동이 가능했던가. 그날 밤 시바스 리갈 한 병 반을 주로 김계원, 박정희 두 사람이 1시간 40분 사이에 마셨으니 酒氣가 올라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酒量이 엄청난 박정희는 총격 직전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고 그의 언동은 정상이었다.
  
   거의 같은 양의 술을 마신 김계원은 총성이 나자 마루로 피신했고 그날 밤 정상적으로 행동했다. 따라서 술기운으로 해서 그런 ‘무모한’ 행동이 가능했으리라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박정희의 不可思議(불가사의)한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 기자는 총상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포천의 실탄사격장에 가서 권총사격도 해 보았다. 6·25 때 허리에 총상을 당했던 孫章來(손장래·전 안기부 2차장) 장군은 “벌겋게 달군 쇠갈고리로 푹 쑤셨다가 빼내는 것 같았다”고 했다. 머리를 스치는 가벼운 파편상을 입고도 기절한 경험을 가진 李秉衡(전 2군 사령관) 장군은 “발뒤꿈치에 총상을 당했을 때도 쇠몽둥이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또 “박대통령의 최후는 체험으로써 단련된 고귀한 정신력의 소유자였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가슴을 관통당하는 총상을 입은 박정희가 어떻게 그 고통을 누르고 “난 괜찮아`……”라고 할 수 있었을까는 여전히 불가사의로 남는다. 박정희는 시저가 암살단에 끼인 브루투스에게 말했던 원망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1995년 암살당한 이스라엘의 라빈 수상이 박정희와 비슷한 말을 남기고 운명한 사람이다. 그는 등과 배에 총을 맞고 병원으로 실려 가면서 “아프긴 한데 별것 아니야”라고 말한 뒤 혼수상태에 빠져 사망했다. 기자는 이 라빈 수상이 암살되기 하루 전에 마지막 인터뷰를 했었다. 라빈의 인상은 박정희와 흡사했다. 단아하고 소탈한 모습. 어렵게 태어난 국가의 짐을 고독하게 지고 걸어가다가 동족의 총탄에 맞아 죽어 간 모습까지도 두 사람은 비슷했다. 라빈 수상은 참모총장 시절이던 1966년에 한국을 방문하여 박 대통령을 만났었다.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박정희의 지도력을 높게 평가했다.
  
   박정희는 설마 나를 쏘겠는가 하는 자신감 때문에 피신 동작을 하지 않았으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눈앞에서 총격이 이루어지고 피를 쏟으며 경호실장이 달아나고 하는 아수라장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계산보다 본능적인, 조건반사적인 행동에 지배당한다. 박정희의 태연자약한 행동은 그의 본능으로 내면화된 死生觀과 지도자道의 자연스런 발로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남 앞에서는 부끄럼 타고 누가 面前에서 칭찬을 하면 쑥스러워하고 육영수와 선을 보러 갈 때는 가슴이 떨려서 소주를 마시고 간 사람이었지만 죽음과 대면할 때는 항상 의연했다. 그는 여순반란사건 이후에 軍內 남로당 조직 수사에 연루되어 체포되고 전기고문을 당한 뒤에 수사책임자 白善燁 정보국장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박정희의 生殺여탈권을 쥐고 있었던 백선엽과 수사실무자 金安日은 지옥의 문턱에 서서 구원을 요청하던 박정희의 모습이 비굴하지가 않았고 의연했다고 전한다. 백선엽 장군은 “도와드리지요” 하는 말이 무심코 나오더라고 회고했다. 인격이 그를 살린 것이었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한강 다리 위에서 혁명군 선발대를 저지하는 헌병들의 사격이 쏟아질 때도 박정희는 태연했다.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에서 文世光의 총탄이 날아올 때, 육영수가 피격되어 실려 가고 나서 연설을 계속할 때 그는 비정하리만큼 냉정했다.
  
   10월 26일 밤 나타난 박정희의 행동은 이런 과거 행태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이지 그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死線을 넘나들면서 죽음과 친해지고 그 죽음을 끊임없이 사색하여 드디어 죽음과 친구가 되어 버린 박정희. 그가 제1탄을 가슴에 맞고서 제2탄을 기다릴 때까지의 시간은 1분 내외였을 것이다. 이 시간에 그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허파 관통상을 당하면 허파의 혈관이 터져 다량의 출혈이 생기고 호흡이 곤란하게 된다.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면서 숨이 찬다. 이 상태에서도 한 10분간은 의식을 유지할 수가 있다. 박정희의 사망진단서를 끊었던 국군서울지구병원 金秉洙 원장은 “김재규가 제2탄을 발사하려고 권총을 갖다 대었을 때 박정희는 의식은 하고 있었지만 거부할 힘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의식하면서 그 1분을 기다렸다는 얘기다. 죽었다가 깨어난 사람들의 거의 일치된 증언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는 자신의 생애, 그 중요한 장면들이 走馬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는 것이다. 이 1분 사이 박정희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던 장면들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의 얼굴. 며느리를 둘이나 본 44세의 나이에 박정희를 임신한 것이 부끄러워 이 생명을 지우려고 간장을 두 사발이나 마시고 기절했던 어머니는 효과가 없자 언덕에서 뛰어내리고 디딜방아를 배에 올려놓고 뒤로 넘어지기도 했으나 뱃속의 생명은 죽어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태어나지 못할 뻔했던 생명’이 태어났고 그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운명이 바뀌었다.
  
   李現蘭(이현란)의 얼굴. 첫 부인과 별거한 뒤에 장교시절에 만나 동거했던 이현란은 박정희가 肅軍(숙군)수사에 걸려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생환하여 군복을 벗었을 때 문관신분으로 겨우 군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던 이 조그만 장교를 버렸다. 집을 나간 이 여인을 찾아 헤매던 때 박정희의 어머니는 아들 때문에 병을 얻어 죽었다. 직장, 연인, 어머니를 동시에 잃었던 이 시기의 박정희를 구해 준 것은 金日成이었다. 그의 남침이 박정희를 군대에 복귀시켰고, 그 박정희에 의해서 김일성의 북한은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역사의 오묘한 복수인가.
  
   육영수의 얼굴. 맞선을 보는 날 육영수는 박정희의 뒷모습을 먼저 보았다고 한다.
  
   “군화를 벗고 계시는 뒷모습이 말할 수 없이 든든해 보였어요. 사람은 얼굴로는 속일 수 있지만 뒷모습으로는 속이지 못하는 법이에요.”
  
   궁정동에서 박정희가 보여 준 최후의 모습이 바로 그의 뒷모습일 것이다. 박정희의 뇌리에 마지막으로 남은 영상은 아마도 소복 입고 손짓하는 육영수였을 것이다. 가난과 亡國과 전란의 시대를 살면서 마음속 깊이 뭉쳐 두었던 恨의 덩어리를 뇌관으로 삼아 잠자던 민족의 에너지를 폭발시켰던 사람.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서는 “내가 죽거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면서 일체의 변명을 생략한 채 가슴을 뚫리고도 ‘체념한 듯 담담하게(신재순 증언)’ 최후를 맞은 이가 혁명가 박정희였다.


지금 우리나라가 홍위병이 난동하는 민중민주주의 국가입니까?
우선 대통령, 비서실장, 장관에게 1000억 원의 손해를 배상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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