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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의 舊正공세 50주년, 한국도 월남의 길을 가나?
趙甲濟
2018년 02월09일  
   50년 전 舊正에 즈음하여 월남전에서 밀리던 공산군(베트콩 및 월맹정규군)이 공세로 나왔다. 이른바 구정공세이다. 공산 측은 군사적으론 대패하였으나 미국에서 嫌戰 여론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다. 이는 월남에서 미국이 손을 떼게 만들었고, 그 7년 뒤 월남은 공산화된다. 배고픈 군대가 이념으로 무장, 배부른 군대를 이긴 경우이다. 한국이 걸어갈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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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30일 월남의 공산군(越盟 정규군과 베트콩)은 휴전약속을 깨고 유명한 舊正공세를 시작하였다. 공산군은 全國에서 서른 곳의 목표물을 일제 공격하였다.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 건물 안으로까지 쳐들어왔고 미군 사령부를 쳤다. 古都 후에는 공산군에 한달간 점령당하였다.
  
  군사적으론 공산군의 大敗였다. 게릴라들이 숨어서 싸우지 않고 정규군을 상대로 정규전을 한 것이다. 그들이 유리한 정글이 아니라 大路上에서, 도시에서 싸우니 火力이 우세한 美軍과 월남군 등 연합군의 밥이 되었다. 특히 베트콩은 구조적인 대타격을 입었다. 그 후 월남전은 월맹 정규군이 主導하게 되었다.
  
  군사적으로 大敗한 공산 월맹측은 그러나 정치적으로 大勝하였다. 미국 존슨 행정부의 전쟁의지를 꺾는 데 성공한 것이다. 3월31일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극적인 연설을 하였다.
  
  <북위 20도 以北에 대한 폭격을 일방적으로, 그러나 부분적으로 중단한다. 만약 공산군측이 협상에 응하면 완전히 중단한다. 미군의 增派를 중단한다. 나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
  
  헨리 키신저는 '외교술'이란 책에서 <이 연설은 戰後 미국 역사에서 가장 운명적인 대통령의 결정 중 하나였다>라고 했다. 실패한 舊正 공세에 의하여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공산군을 계속해서 압박하였더라면 훨씬 유리한 高地에서 협상을 할 수 있었는데, 일방적인 양보를 한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월남전의 패배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존슨 대통령의 전쟁의지는 왜 부러지고 말았는가? 여론 때문은 아니었다. 당시 여론조사에 따르면 61%는 '매派(강경대응지지층)'이었고, 23%가 '비둘기派(온건대응론자)'였다. 70%는 北爆의 지속을 지지하였다.
  
  문제는 言論과 식자층의 비관론이 정치인들에게 준 영향이었다. 영향력의 절정에 있던 CBS 뉴스 진행자 월터 크롱카이트는 '이 전쟁은 이길 수 없다. 우리가 擴戰하면 敵도 擴戰으로 대응한다. 끝 없는 지구전으로 갈 것이다'는 요지의 논평을 했다. 존슨 대통령의 월남전을 지지하던 월스트리트저널과 타임지도 反戰으로 돌았다. 時事논평가 월터 리프만도 '월남전에서 우리는 질 수밖에 없다'고 단정하였다. 言論이 만든 비관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것은 정치인들이었다. 맨스필드, 풀브라이트 같은 大정치가들도 擴戰에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존슨 대통령의 협상제의를 월맹측은 즉시 받았다. 그 전의 협상제의들을 거부해오던 월맹이 서둘러 협상테이블로 나오기로 한 것은 舊正공세의 군사적 실패로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1996년 월맹의 전쟁 영웅 지압 장군은 CNN과 인터뷰하면서 '舊正공세의 전략적 목표는 미국측으로 하여금 擴戰을 중단시키고 협상으로 나오도록 유도하려는 것이었다'고 회고하였다. 월맹은, 舊正공세를 통하여 미국의 여론과 언론을 反戰으로 돌아서게 함으로써 미국 정부를 압박, 불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제의하도록 꾸몄다는 것이다. 월맹의 작전은 월남의 戰場에선 실패하였지만 미국내의 심리戰場에선 성공한 것이다. 미국 지도부의 전쟁의지를 꺾은 것이다.
  
  존슨 대통령의 협상제의는 미국이 월남전에서 공산군에 이길 생각이 없다는 공개선언이었다. 시간이 자신들의 편이라고 확신하게 된 공산월맹측은 협상을 질질 끌면서 '완전승리'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파리에서 시작된 평화 협상은 5년간 이어졌다. 월맹측은 '미군철수와 월남정부의 포기'를 요구하였다. 이는 미국의 무조건 항복에 다름 아니었다. 미국은 미군철수는 약속하였으나 사이공 정부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버티었다. 미국과 월맹이 주도한 협상에서 사이공 정부는 들러리로 전락하였다.
  
  1973년 초 미국과 월맹측은 평화협정을 맺는다. 駐越미군은 철수하고, 월남에 들어온 월맹군은 그대로 두고 휴전하기로 하였으니 사이공 정부의 붕괴는 시간문제였다. 월맹은 휴전협정이 발효되자 말자 그것을 어기면서 전투를 재개하였다. 미국의 닉슨 행정부는 그러나 이를 응징할 의지를 상실하였다. 미국의 언론과 의회가 휴전협정 준수를 강제할 美軍의 개입을 막았다. 1975년 월남은 공산화되었다.
  
  공산군의 舊正공세는 미국이 군사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 찬스를 제공하였으나 美 지도부의 전쟁의지가 먼저 꺾이는 바람에 정치적으로 패배함으로써 치명적 위기로 변질되었다.
  
  2010년 11월23일 북괴군이 연평도를 포격하였을 때 한국 공군기 8대는 즉시 출격, 폭격명령을 기다렸다. 한국의 국가 지도부가 폭격을 결단하였더라면 북괴군의 해안포 진지는 파괴되고 도전한 미그기는 모조리 격추되었을 것이다. 이는 남북관계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쥐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군사적으로 결정적 찬스를 잡고도 한국 지도부는 전투의지를 상실, 폭격명령을 내리지 못하였다. 문재인 정권은 핵무장한 북한정권에 굴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게 한국의 월남화를 의미하는지 지켜볼 시간이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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