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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동아시아 - 한중일 관계를 생각해보다
2014년 03월10일  
격동의 한중일 관계 – Remember 1894, Again 1894)

  

    

격동의 동아시아 1 - 아편전쟁에서 메이지유신까지

  

영국의 엘리어트 전권대사(全權大使)는 1840년 6월 약 4,000여 명의 원정군을 이끌고 중국의 광동 앞바다에 도착했다. 인도 정부가 영국을 대표하여 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쟁은 시작되었다. 바로 아편전쟁(1840~1842)의 시작이다. 강력한 대포를 갖춘 영국의 증기선(蒸氣船)앞에 청나라의 재래식 범선(정크선)은 상대가 되질 않았다. 결국 청나라는 영국에 굴복하고 굴욕적인 텐진(天津)조약을 체결했다. 이 소식은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서 일본 도쿠가와(德川)막부에 즉각 알려졌다.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쇄국정책을 피고 있었지만 나가사키의 데지마(네덜란드 상인 주거지)를 통해서 서양의 문물과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대국(大國) 청나라가 영국해군에 굴복했다는 소식은 일본 도쿠가와 막부를 뒤흔들어 놓았다.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도쿠가와 막부에는 더 큰 충격이 엄습하고 있었다. 바로 미국의 페리제독이 일본에 통상을 요구하면서 내항(來航)하겠다고 알려왔다. 일본 막부는 비상이 걸렸다. 아편전쟁을 통해서 영국이나 미국등 서양열강의 힘이 얼만큼 쎈지를 막부는 알고 있었다. 막부는 우왕좌왕했다. 드디어 1953년 6월 검은 연기를 내뿜으면서 일본 동경만에 페리제독이 이끄는 미국 함대가 들어왔다. 이 검은 미국 군함을 일본인들은 ‘쿠로후네(黑船)’라 불렀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미국 증기선 군함 ‘쿠로후네’에 일본은 기가 질렸다. 미국함대가 온다는 소식에 쇼군(將軍) 도쿠가와 이에요시(徳川 家慶)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죽어 버렸다. 미국 군함에서 도착을 알리는 대포를 쏘자 그 소리는 동경만 전체를 뒤흔들었다. 미국의 힘을 알고 있었던 일본 막부는 일단 페리제독과 중재를 뒤로 미루었다. 그러나 그 이듬해 2월 미국 페리제독은 더 많은 함선을 이끌고 일본 동경만에 다시 찿아왔다. 결국 일본 막부는 개항을 미룰 수 없었다. 미국 페리제독의 검은배의 힘에 눌려서 일본은 미국과 통상조약을 맺었다. 일본으로서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동경만에 나타난  미국 페리제독의 함대

  

미국의 거대한 함대가 동경만에 들어오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일본 메이지유신의 촉매제 역할을 했던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였다. ‘사카모토 료마’는 서양열강의 세력에 맞서기 위해선 막부체제로선 안된다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토사(土佐藩) 하급무사 출신의 료마(龍馬)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당시 앙숙관계였던 조슈번(長州藩:현재의 야마구치현)과 사쓰마번(薩摩藩:현재 가고시마현)이 화해를 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도쿠가와막부를 무너트린 원동력이었던 삿초동맹( 薩長同盟)이다. 조슈번과 사쓰마번은 서로 앙숙관계였지만 한편으로는 도쿠가와 막부에 대해선 원한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게되는 세키가하라전투(1600년)에서 조슈번과 사쓰마번은 토요토미(豊臣)편에 가담하였다가 전투에서 졌다. 그래서 도쿠가와 막부에 대해선 복수하겠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결국 조슈번과 사쓰마번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통해서 도쿠가와막부에 대해 복수한 셈이 되었다. 일본 초대 수상인 이토 히로부미는 조슈번(長州藩)출신이고 아베수상 역시 과거 죠슈번이던 야마구치(山口)縣이 고향이다.






  

일본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는데 사쓰마번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사쓰마번은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렸다. 막부의 감시를 피해가면서 네덜란드와 밀무역을 했다. 18세기 말 유럽에선 중국의 청화백자가 최고 사치품이었다. 영국과 네덜란드 모두 중국의 청화백자를 수입해 갔다. 영국은 중국의 청화백자를 수입하면서 무역역조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아편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청나라 내부가 혼란해지면서 청화백자를 수입할 수 없었던 네덜란드는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일본의 사쓰마번에서 중국의 청화백자보다 더 화려한 일본식 채색도자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네덜란드는 일본의 채색도자기를 유럽에 팔면서 막대한 무역이익을 낼 수 있었다. 이렇게 밀무역으로 사쓰마번은 富를 축적하고 막부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사쓰마번에서 생산된 도자기는 임진왜란때 끌려갔던 조선의 도공(陶工) 후손들이 만들었다. 사쓰마번은 힘을 축적하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도쿠가와 막부는 힘을 잃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미국 페리제독 함대가 왔다는 소리에 죽은 도쿠가와 이에요시(徳川 家慶) 뒤를 이은 쇼군(將軍) 도쿠가와 이에사다(徳川家定)는 지금으로 말하면 자폐증(自閉症)환자였다. 그러니 도쿠가와 막부는 허약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틈을 노리고 사쓰마번의 번주(藩主)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는 양녀 텐쇼인(天璋院)을 도쿠가와 이에사다에 시집보내면서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또한 메이지유신의 주축인 조슈번(長州藩)과 사쓰마번(薩摩藩)은 처음에는 서구 열강에 대항하기도 했다. 조슈번(長州藩)은 미국·영국·프랑스·네덜란드의 4개국에 맞써서 1863년과 1864년 2차례에 걸쳐서 전투를 벌였으나 서구열강의 압도적인 화력(火力)에 밀려서 무참히 패하였다. 이 전쟁을 시모노세키전쟁이라고 한다. 같은 시기 사쓰마번 역시 영국과 전쟁을 벌였다. 사쓰에이 전쟁(薩英戦争)이다. 영어로는 Englo-Satsuma War라고 부른다. 1863년 8월 15일 ~ 1863년 8월 17일 영국과 사쓰마번(薩摩藩)간의 가고시마 만에서의 포격전이다. 이 전투는 영국의 일본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했다. 사쓰마의 무사들이 용감하게 싸웠다. 이로 인해 영국은 지금까지 도쿠가와 막부를 지지(支持)하는 방침을 바꾸어서 사쓰마 번을 파트너로 삼았다. 그러자 막부는 영국과 경쟁관계였던 프랑스와 연계하기 시작했다. 사쓰마 번은 영국과의 전쟁을 통해서 서구열강의 힘을 몸소 체험하고 기존의 존왕양이(尊王攘夷)정책에서 양이(洋夷)정책은 실현 불가능을 깨닫게 되었다. 두 전쟁을 통해서 사쓰마번과 조슈번은 일본의 막부와 번(藩)체제로부터 존왕(尊王)중심의 천황체제로 일본역사를 바꾸었다.













  

같은 시기 조선(朝鮮)은 어땠을까? 아편전쟁시기 조선에서는 헌종이 왕위에 있었다. 헌종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서 명목상 임금일 뿐이었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끝나면서 풍양조씨(豊壤趙氏)의 세도정치가 이어졌다. 1853년 페리제독이 흑선(黑船)으로 일본을 개항시키고 1863년 삿초번(藩)이 서구열강과 전투를 벌이던 그때 1863년 철종이 재위 14년만에 후사없이 승하했다. 대왕대비 조씨(大王大妃趙氏, 憲宗의 生母)는 흥선군 하응(興宣君昰應)의 2남(男)을 왕위에 올렸다. 그가 바로 훗날 고종(高宗)이다.

  

격동의 동아시아 2 -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은 급속하게 서구열강의 대열에 편승했다. 반면에 대국(大國)이었던 청나라는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국세(國勢)가 기울어갔다. 서태후(西太后, 1835 ~1908)의 등장은 청나라 몰락을 가속화 시켰다. 몰락하는 청나라와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화된 일본이 조선에서 전쟁을 했으니 청일전쟁이다. 청일전쟁의 발발원인을 보면 당시 조선의 위정자(爲政者)들이 얼마나 국제정세에 무지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대원군과 민비(閔妃, 훗날 명성황후)는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지만 또한 정적(政敵)이기도 했다. 대원군이 배후에서 조종했던 임오군란(壬午軍亂)으로 민비는 충주까지 도피하기도 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진압한 것은 청나라와 일본이었다. 갑신정변 후 청나라와 일본은 텐진(天津)에서 조약을 맺었다. 조약의 핵심은 “조선에서 兩國은 동시에 철수하고 만약 조선에 진주(進駐)할 경우 필시 상대국에 통보하고 같이 진주한다”는 것이다. 텐진조약은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동학난(東學亂)이 일어나자 조선조정은 진압(鎭壓)할 힘이 없었다. 공권력(公權力)이 무너진 지 오랜 조선이었다. 동학군에 관군(官軍)은 패퇴했다. 그러자 조선조정은 청나라에만 도움을 청했다. 조선 조정이 국제조약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청군(靑軍)이 조선의 동학난에 개입하자 일본 역시 텐진조약에 따라 곧 바로 동학난 진압에 개입했다. 그리고 일본의 선제공격으로 한반도에서 청일전쟁이 시작되었다. 근대화된 일본군은 청나라 군대를 압도했다. 청일(淸日)전쟁으로 인해 수천년간 한반도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던 중국이 물러났다. 청나라 다음 일본은 더 큰 러시아를 상대해야 했다. 러시아는 일본 혼자 상대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일본은 영국(미국)과 동맹을 맺었다. 러시아는 영국과 일본의 공동의 적이었다. 영국은 일본을 적극 후원했다. 일본이 러시아 발틱함대를 궤멸시킬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는 영국이 최신예 함정과 포탄을 일본에 제공했기 때문이다. 도고헤이하치로 제독의 기함(旗艦)인 미카사(三笠) 함(艦)은 영국에서 제작된 함정이었다. 청나라와 러시아를 물리친 일본은 한반도를 전리품으로 획득했다. 이로서 한반도는 수천년간 중국이라는 대륙의 영향권에서 일본이라는 해양세력으로 편입하게 되었다.

  

  

격동의 동아시아 3 - Remember 1894, Again 1894

  

  

현재 동아시아의 세력 판도는 1894년과 거의 흡사하다. 1894년은 청일전쟁이 발생한 해다. 청일전쟁으로 일본은 급부상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줄을 잘 잡았다. 러시아의 팽창에 맞서서 영일동맹을 성사시켰다. 영일동맹의 후원자는 미국 디어도어 루즈벨트였다. 영국과 미국을 배경삼아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다.

  




19세기말 20세기 초 한반도를 묘사한 프랑스 르몽드지 삽화








일본은 1894년의 기억을 똑똑히 하고 있다. 100여 년 전 러시아의 팽창은 21세기에 중국의 팽창으로 치환(置換)되었을 뿐이다. 이에 발 빠르게 미일동맹을 강화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일본은 ‘AGAIN 1894년’을 향해 가고 있다. 반면에 중국은 ‘REMEMBER 1894’를 되세기고 있다. 중국은 1894년의 패배를 되갚겠다고 벼르고 있다. 급속도로 발전한 중국의 경제력이 그 기반이다. 1894년에 청나라와 일본이 한반도에서 쟁패를 겨뤘다면 현재는 센가쿠제도에서 오픈게임을 치루고 있다. 센가쿠제도 분쟁은 단순한 영토분쟁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미래를 두고 쟁패를 벌이는 것이다. 마치 1894년 때처럼.


  

박근혜 정부의 친중반일(親中反日) 외교정책은 문제가 있다. 아베정권의 역사적 인식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일본보다 중국을 친근하게 여기면 안된다. 왜냐하면 중국은 우리의 주적(主敵)인 북한을 후원국하는 군사적 동맹국이다. <적(敵)의 적(敵)은 친구이고 적의 친구는 적(敵)>라는 국제역학의 불문율이 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을 유지 발전시킨 근본은 한미동맹이었다. 한미동맹 下에서 중국은 대한민국의 군사적 파트너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정부의 외교방향을 보면 너무 노골적으로 친중반일로 가고 있다. 이것은 한미동맹, 미일동맹으로 연결되는 불완전하지만 지금까지 동아시아의 균형과 발전을 가져온 한미일동맹이라는 역학구도에서 역행하는 일이다.

  

한국의 반일감정을 이용하하여 한미일 삼각동맹의 균열을 노리는 중국

  

혹자(或者)는 대중(對中) 무역이 한미 한일 무역의 합(合)보다 많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일본보다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한-미-일-중의 무역 메카니즘을 보면 한중간의 무역의 결과물 상당수는 또 다시 미국으로 수출된다. 세계 최대 시장은 여전히 미국시장이다. 미국의 GDP는 2012년 시점에서 약 16조 달라다. 이에 비해 중국은 8조달라이고 일본은 7조달라다. 한국은 약 1.2조 달라 규모다. 즉 시장규모면에서 중국은 미국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중국을 가리켜서 미국과 더불어서 G2라고 하는데 이것은 엄밀히 보면 잘못된 말이다. 중국의 경쟁상대는 미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정승조 前합참의장은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을 보고 한국의 전략적 동반자라는 말을 했다. 매우 위험한 말이다. 경제적 파트너와 군사적 사항을 내포하는 전략적 파트너는 차원이 다르다. 이 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반미 좀 하면 어때”라는 말보다 동맹국인 미국을 더 심각하게 자극하는 말이다. 게다가 바로 내년인 2015년이면 한미연합사가 해체된다. 반면 미일연합훈련은 계속 강화 확대 중이다. 미국은 초유의 Sequester(자동예산삭감)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 대한 군사력은 증강시키고 있다. 미국 전체군사력의 60%를 아시아로 재배치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샌디에고가 기항인 미 3함대 소속 니미츠항모전단의 작전지역을 서태평양 쪽으로 확대변경하고 있는 것도 아시아 중심의 미국방정책의 반증이다. 그 목적은 중국의 팽창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종북세력과 위안부관련단체의 연결성 주목해야

  

동맹은 공동의 적에 맞서 함께 싸울 때 형성된다. 문서쪼가리로 동맹은 유지 되지 않는다. 한미동맹은 한국전쟁에서 북한과 중국 공산세력에 맞서 싸우면서 형성되었고 월남전에서 함께 피를 흘리면서 발전되었다. 이러한 한미동맹은 지난 이라크전과 아프간 전에서 불협화음을 냈다. 한국이 미국과 함께 싸우기를 꺼려했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당시 미국방장관인 럼스펠트는 노무현과 껄끄러웠고 결국 주한미군의 일부를 철수시켰다. 그런데 이제 또 다른 동맹으로서 시험대에 서고 있다. 중국에 맞서 같이 싸울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일본은 기꺼이 미국과 사활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이에 한국은 반일감정을 내세워서 한미일 동맹에 가담하기를 회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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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정권의 역사인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아베정권의 역사인식의 문제에 대해선 한일간의 민족적 감정차원을 넘어서 인류보편적 인권이라는 가치 차원에서 지적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가 또 하나 간과해선 안되는 것이 있다. 한국의 언론이 반일감정을 이용해서 애국우파를 향해 “극우(極右)”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런 한국 언론의 태도는 내심 일본을 이용해서 한국내 우파에 대해 “극우”인상을 덧씌우기 위한 언론공작의 일환도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위안부관련 단체는 종북세력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일관계는 감정적으로 접근해선 안된다. 전략적 시각이 필요하다




노무현정권 당시 한국의 외교정책을 비꼰 그림




박정희 전 대통령때도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때도 일본은 독도관련 망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땐 바로 다음날 망언을 한 장관은 경질되었다. 당시 정부는 일본 정부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매우 전략적으로 상대했다. 일본 정권의 장관이 망언을 하면 당시 우리 정부는 강력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미국 워싱턴을 움직였다.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하여 일본 장관의 독도망언은 공산국가에 맞서는 한미일 관계에 심각한 저해 요소가 된다고 설명하면 미국은 일본 정부에 압력을 행사했다. 일본은 우리의 말은 안들어도 미국의 말은 들을 수 밖에 없다는 국제역학을 이용한 외교전략이었다. 일본의 망언을 잠재울 수 있는 핵심도 역시 강력한 한미동맹에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2차대전 후 다른 민족을 강제로 병합한 것은 중국이 유일하다. 중국의 먹잇감이 된 나라는 티벳이다. 일본이 얄미운 여우라면 중국은 늑대같은 존재다. 여우가 밉다고 늑대 편에 서면 안된다. 이춘근 박사는 “미운나라와 적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언이다. 국제역학은 감성적으로 접근해선 안된다. 적의 적은 친구이며 적의 동맹은 적이다. 일본이 밉다고 중국과 손잡아선 안된다. 한미일 동맹에서 한국이 이탈하면 또 다시 수천년간 그랬듯이 중국의 속방으로 전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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