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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武鉉은 金大中-金正日과 결별할 것인가?
조갑제 칼럼
2006년 03월13일  
그가 共犯되기를 거부한다면 한국은 마지막 순간에 危機一髮의 탈출에 성공할 것이고 金正日의 退路는 막힐 것이다


  1991년 6월에 필자는 左翼囚들이 收監되어 있던 大田矯導所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無期懲役을 살고 있던 간첩 辛光洙를 만나서 그가 저지른 하라타다아키씨 납치에 관해서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이 교도소의 左翼囚를 통제하고 있던 국가안전기획부 직원에게 부탁하여 면회를 하게 해달라고 했다. 그 직원은 “辛光洙의 뜻을 알아봐야 한다”면서 사람을 辛에게 보냈다. 그 사람이 곧 돌아오더니 辛이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는 말을 하더라고 전해주었다. 安企部 직원은 "본인 의사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 그는 안기부의 搜査에 협조적이었지만 북한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여 기자를 만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辛光洙는 金大中 정부 시절에 減刑-석방-北送되었다.

  일본 경찰은 요사이 金大中 당시 대통령이 2000년 남북頂上회담 직후에 非轉向 長期囚로 취급하여 北送해준 辛光洙가 일본인 하라타다아키氏(북한에서 사망)뿐 아니라 다른 일본인들의 납치에도 관여했다는 증거를 잡고 북한당국에 대해 辛의 身柄引渡를 요구하고 있다.

  金大中 당시 대통령이 辛을 북송할 때 일본에선 이미 납치자 문제가 크게 부각되어 있었지만 모리 수상이 이끌던 일본 정부는 공식으로 金 대통령에게 辛을 보내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辛이 安企部 조사에서 일본인을 납치했다는 증언을 이미 했고, 이는 범인과 被拉者가 밝혀진 유일한 경우라 노벨평화상을 노리던 金大中씨로서는 보내지 않는 것이 정상적이었다. 그럼에도 金大中씨가 辛을 북송해준 것은 金正日의 국제범죄를 국제사회에 증언해줄 유일한 物證을 인멸하기 위함이었다는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된다. 만약 지금 辛光洙가 한국에 있다면 그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金正日의 국제범죄를 증언하는 소중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金大中 당시 대통령은 辛光洙를 보내주면서도 이 자가 납치해간 하라타다아키씨의 生死 여부도 묻지 않았다. 납치범에겐 자유를 주고 납치되어간 사람에 대해서는 모른 척해버린 것이다. 문명국가의 정부가 도저히 해선 안될 일을 한 것이다.

  金大中씨가, 피해자가 日人이었기 때문에 그런 無道한 짓을 했다면 그는 히틀러類의 인종차별주의자이며, 소위 ‘民族共助’ 차원에서 辛을 金正日 품안으로 北送시켜주었다면 그 내용상 ‘國際犯罪共助’이다.

  1997년에 한국으로 탈출했던 黃長燁 북한 노동당 전 비서는 최근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金大中 전 대통령의 訪北을 막을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의 正體性이 그렇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金大中 전 대통령의 訪北으로 조성될 ‘湖南지방주의’와 所謂 ‘民族共助’ 지지세력 결집을 相殺시킬 전략이 필요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으면서도 말하기 어려운 부분을 지적했다. 만약 金大中씨가 訪北하여 金正日과 만나 6.15 선언을 실천한다면서 反헌법적인 연방제나 연합제를 추진할 때 金大中 지지세력이 남한내의 從金세력(金正日에 대한 추종 굴종 세력)과 손잡을 가능성은 생각만 해도 하나의 惡夢이다.

  黃長燁씨는 이 最惡의 가능성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한 전략수립은 국가이념의 확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理念에서 戰略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가이념은 헌법이 闡明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大韓民國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국가이며 민족사의 正統국가라는 세 礎石에 근거하고 있다. 한국인은 헌법의 명령에 따라 北韓政權을 不法집단이자 反국가단체로 보아야 할 의무가 있다. 金大中씨는 대통령에 在職할 때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런 헌법의 명령을 무시해왔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法的, 정치적 制裁와 膺懲이 가해지지 않고 있는 것은 全有權者의 20%~25%에 이르는 단단한 지지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金大中씨에 대한 이 지지층의 愛好와 충성의 强度가 남다르기 때문에 金씨가 反헌법적이고 反국가적 노선을 취할 때 이 지지층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死活的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金大中 지지층은 그가 2000년 평양회담에서 金正日의 對南赤化 노선을 그대로 수용한 6.15 선언에 합의해주었을 때나, 그가 평양회담을 열기 위하여 現代그룹을 통해서 4억5000만 달러의 현금을 金正日이 관리하는 海外의 對南공작 계좌 등으로 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도 지지를 철회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다.

  金大中씨가 희망하는대로 올해 上半期에 평양을 방문하여 金正日과 만나 또 다시 反憲法的이고 反國家的인 연방제(또는 연합제) 실천 계획을 논의할 때 그 지지자들은 어떤 판단과 행동을 보일 것인가. 金大中-金正日 연합 路線이 명백하게 대한민국의 헌법과 정통성과 자유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될 때 기존 金大中 지지자들이 金大中씨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대한민국과 헌법 수호에 나선다면 연방제 事變음모는 事前에 진압되고 한국은 위기를 극복하여 자유통일과 선진국 건설의 길로 매진할 수 있다.

  만약 기존 金大中 지지자들이 ‘金大中+金正日 세력’ 對 ‘대한민국+헌법’의 對決 구도에서 지역주의나 집단이기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金大中 지지를 계속한다면 한국은 國家분열 사태를 맞을 것이고, 이것이 선거나 정치적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內戰으로 치닫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1997년12월 대통령 선거 때 金大中씨를 찍었던 사람들중 과연 몇 명이 그에게 反대한민국 활동의 면허증을 주었겠는가?

  故鄕출신 정치인을 選好하는 것은 그 행위가 헌법정신에 위반되지 않을 때는 아무도 탓할 수 없다. 문제는 고향출신 정치인이 헌법에 위반된 행위를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慶尙道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세 번 大乘的 태도를 보인 적이 있다. 즉 慶尙道 출신 朴正熙, 全斗煥 두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한다고 판단했을 때 맨 먼저 또는 가장 격렬하게 慶尙道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두 사람의 정치적 운명을 바꾼 적이 있다.

  1979년10월16~18일 釜山 馬山 시민들은 朴正熙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야당 탄압에 항의하여 거리로 뛰쳐나와 釜馬사태를 일으켰다. 朴정권은 비상계엄령과 衛戍令으로 대응했고, 권력층 내부의 갈등 속에서 朴대통령은 同鄕人인, 경상북도 善山 출신 金載圭 정보부장에 의해 피살되었다. 이때 朴대통령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야당 지도자도 부산 출신 金泳三이었다. 즉, 朴대통령은 그의 强壓정치에 반대하는 慶尙道 사람들에 의해 거세되었던 셈이다.

  1985년 2.12 총선 때 경남 陜川 출신 全斗煥 정권에 가장 선명히 반대했던 것도 경상도의 兩大도시 釜山과 大邱였다. 당시는 한 지역구에서 2명의 의원을 뽑을 때였는데 부산에선 3명의 與黨 후보가 낙선하고, 대구와 서울에선 與黨 현역의원이 1명씩 낙선했다. 이 異變이 2.12 총선을 민주화 흐름의 分水嶺으로 만들었다. 당시 서울에선 택시기사들이 부산사람들한테서는 요금을 받지 않는다는 말도 돌았다.

  1987년 6월사태 때 가장 대규모의 시위를 했던 곳도 釜山이었다. 특히 6월18일의 부산 大示威는 데모群衆 이 부산시청을 함락시키기 직전까지 갔다. 다음날 全斗煥 정권은 경찰력에 한계가 왔다고 보고 비상계엄령을 준비하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포기하고 6.29 민주화 선언으로써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위의 세 사례들은 경상도 사람들, 특히 慶南사람들이 ‘민주주의냐 慶尙道 정권이냐’의 岐路에서 민주주의를 선택함으로써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국가이익을 수호했음을 보여준다. 金大中씨를 지지해온 湖南사람들의 선택은 더 쉬울 것이다. 그것은 '金大中이냐 大韓民國이냐'의 선택 구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朴正熙냐 민주주의냐’의 선택에선 “민주주의를 유보하더라도 朴正熙를 밀어 우선 경제개발을 하고 국가안보를 튼튼히 한 다음에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논리가 상당한 설득력을 가졌었다. ‘金大中이냐 대한민국이냐’의 선택에서는 과연 “대한민국의 안전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金大中을 밀어 민족공조의 口號 아래서 金正日의 對南赤化를 도와주자”는 주장이 합리화될 것인가.
  
金大中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평양회담을 준비할 때 金正日 정권과 장사꾼 같은 뒷거래를 했다. 노벨평화상을 갈망하고 있던 그는 현금을 북한에 보내주면 군사력 增强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國情院의 견해를 묵살하고 4억5000만 달러를, 국민들 몰래 그것도 불법적으로 현대그룹을 窓口로 삼아 간첩 잡는 국정원을 시켜서 金正日의 비자금 관리소 39호실 직속 대성은행 계좌(중국은행 마카오 支店內 개설) 등으로 보내주었다. 마카오의 이 대성은행 비자금을 실질적으로 관리했던 것은 마카오에 주재하고 있었던 朝光貿易 대표 박자병이었다. 작년 미국 정부는 이 朝光貿易이 위조달러를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을 통해 유통시키고 범죄자금을 세탁했다고 단정하여 이 방코델타아시아은행과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금지시킴으로써 간접적인 對北금융제재에 착수했었다. 한국의 國政院은 그 前身인 안기부 시절부터 朝光貿易을 對南테러 및 공작 기관으로 규정했었다. 1983년 10월9일 미얀마 랭군에서 발생했던 全斗煥 대통령 일행에 대한 북한의 테러로 17명의 長次官級 人士들이 살해되었는데, 안기부는 이 테러의 준비과정에서도 朝光貿易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파악했었다.

金大中씨가 군사력 증강 목적으로 쓰일 줄 알면서도 4억5000만 달러를 보낸 것도 문제이지만 이 돈을 국가정보기관을 시켜 主敵집단의 對南공작기관 계좌로 보낸 것은 국가반역혐의를 걸 만한 범죄행위였다. 그러나 2003년 이 사건에 대한 수사 때 검찰은 그를 조사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해버렸다. 金大中 정권의 정치적 養子인 盧武鉉 정권이 金大中 지지층을 두려워하여 그를 治外法權 지대로 만든 때문이다. 金大中 정권에 의한 對北불법송금은 그 성격상 金正日의 국제범죄에 대한 공조 내지 협력행위이다.

  위에서 예로 든 金大中의 두 가지 행위, 즉 辛光洙 北送과 4억5000만 달러 北送은 한국의 법률과 국제평화의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인류의 양심에 반하는 無道한 짓이었다. 金大中씨는 강력한 지지세력과 좌파정권의 庇護로 斷罪를 면한 이후 自肅하기는커녕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평양을 방문하여 소위 민족문제에 대해서 역할을 하겠다고 公言해왔다. 盧武鉉 대통령측도 金씨의 訪北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金씨의 이런 언동에 대해서 野黨과 보수층이 비판하고 나오자 金씨는 訪北을 5월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겠다고 했으나 진짜 이유는 金正日의 허락을 받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金大中씨는 평양회담에서 金正日로부터 서울 答訪 약속을 받아내고서도 그 약속을 지키도록 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 상태에서 그가 또 다시 訪北하고싶다는 희망을 여러번 (김정일을 향하여) 밝히는 모습은 너무나 굴욕적으로 보여 많은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지만, 金大中 지지자들은 공개적 비판을 하지 않고 있다.

  金大中씨가 訪北하면 金正日과 만날 것이고 이 자리에서 그는 6.15 실천 2항에 따라 남북한 연합제 또는 연방제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盧武鉉-金正日 회담을 권유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盧-金 首腦회담이 이뤄지면 두 사람은 ‘연방제(연합제) 통일 시대의 개막’을 선언하고 남북한이 헌법개정과 평화협정 체결 등 冷戰구조를 해체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한다는 합의를 할지도 모른다. 이는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또 승리하여 제3기 좌파정권을 등장시키려는 ‘統一狂風’을 만들어낼 것이고, 金正日 정권엔 달러위조 등 국제범죄에 대한 제재를 中和시킬 수 있는 탈출로를 뚫게 될 것이다. 金正日은 盧武鉉 대통령과의 회담으로 형성된 남북한의 좌파연대로써 한국의 여론을 反美로 몰고가고 한국정부로부터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아내 미국의 對北금융제재를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金正日이 盧武鉉 대통령과 회담에 응하기 위해서는 對北지원 증액, 反美노선 강화, 그리고 金正日-金大中-盧武鉉 공조체제 구축, 한국의 國論분열 등 多目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확신이 서야 할 것이나 展望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달러위조를 이유로 한 미국의 對北금융제재는 비타협적으로 진행될 것이고, 남한내 보수층의 반발도 거세질 것이며 무엇보다도 레임덕 현상에 빠져들고 있는 盧武鉉 대통령이 퇴임후 감옥행을 각오하고 金正日-金大中이 들이미는 국가반역적 연방제(연합제) 카드를 받는 무리를 강행할지가 의문시되기 때문이다. 金正日로서도 두 번째 頂上회담 도박이 실패하고 2007년 大選을 통해서 우파 정권이 들어설 때 발생할 사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발등에 떨어진 불인 미국의 對北금융제재를 鎭火할 길이 없어 답답한 상태이다.

  평양회담에서 발표된 6.15 공동선언은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를 혼합한 방식의 통일방안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선언은 본질적으로 詐欺이다. 왜냐 하면 남북한이 분단된 것은 민족은 같은데도 이념과 체제가 달라서인데, 그 이념과 체제를 그대로 두고 ‘民族共助’라는 선동으로써 “민족은 하나이니 우선 통일되었다고 선언하자”는 것이 6.15 선언 제2항의 본심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한국식 자유민주주의로 통일되든지 金正日식 전체주의로 통일되는 수밖에 없는데 반쪽은 노예 상태로, 다른 반쪽은 자유민 상태의 國體를 만들겠다는 것이 金大中-金正日 합작의 사기극 시나리오이다. 金日成은 생전에 당 간부들에게 “연방제를 한다고 해놓고 남한이 보안법을 폐지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도록 하면 남한사람들의 반은 우리 편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한반도 전체 인구의 3분의 2를 장악한다. 그런 뒤에는 우리가 인구비례에 의한 총선거로 통일하자고 제안할 것이다”고 말해왔다.

  이런 對南赤化戰略에 넘어가 6.15 선언에서 연방제(연합제)안을 받아들인 金大中씨는 이 야합에 盧武鉉 정권까지 共犯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盧 대통령이 정권내의 親金大中 極左세력에 끌려가 이 야합에 同參한다면 한국은 親金正日 세력과 애국세력으로 갈라져 지금의 ‘말로 하는 內戰상태‘에서 ’피를 흘리는 內戰상태‘로 악화될 것이다. 盧 정권이 共犯되기를 거부한다면 한국은 마지막 순간에 危機一髮의 탈출에 성공할 것이고 金正日의 退路는 막힐 것이다. 盧 정권의 최대 株主는 정권지지 세력의 반 이상을 장악한 金大中씨이고 盧 대통령은 임기가 정해진 월급장이 사장격이다. 정권내의 논리와 力學 관계로써는 盧 대통령이 최대 주주 金大中을 상대로 叛旗를 들기가 어렵다. 盧 대통령이 金大中씨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힘과 논리는 패거리나 정권속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헌법 속에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민족사적 정통성과 헌법에 근거할 때 그를 막을 자는 한반도엔 없다. 즉, 盧 대통령이 남은 임기중에 金正日-金大中 세력과 결별하고 ’國憲을 준수하고 國基를 保衛하겠다’는 취임선서를 실천한다면 그는 지금의 20%대 지지율을 60%대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며 박수 속에서 퇴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金正日-金大中 노선에 동조한다면 다음 정권을 좌파가 잡더라도 盧 대통령은 퇴임 즉시 左右 협공 속에서 희생물로 바쳐질 것이다. 金大中씨와 같은 고정지지표가 없는 盧 대통령은 권력의 갑옷을 벗는 순간 자신을 지킬 수 없게 된다. 가장 확실한 퇴임후 보장은 대한민국과 헌법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2006-03-12
趙甲濟  월간조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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