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改憲의 위험성에 대한 李會昌의 명쾌한 反論
조갑제닷컴
2014년 10월21일  
"불완전한 인간이 이상적인 헌법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건 치명적 자만이다."

  
  2006년 7월13일 프레스 센터에서 헌법포럼 주최로 열린 특별초청 강연에서 李會昌 전 한나라당 총재는 '헌법 개정을 가장한 헌법파괴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상적인 헌법을 만들겠다는 치명적 자만을 경계하기도 했다. 대통령 단임제의 장점을 설명하면서 내각제와 이원집정제의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國政(국정) 경험자의 改憲(개헌)에 대한 가장 통찰력 있는 글이란 느낌이다. 다음은 연설 全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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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 함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1. 머리말
  
  요즘 헌법개정론이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현 정권의 전현직 국무총리가 모두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더니, 새로 취임한 여당출신의 국회의장도 취임일성으로 개헌론을 들고 나와 21세기에 맞는 헌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또 학계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개헌논의가 활발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요컨대,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의 논거는 현재의 헌법이 부분적으로 불편하거나 미흡한 점이 있으므로 이를 보완해야한다는 견해와, 이번에 전반적으로 이상적인 헌법,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헌법을 만들기 위해 개정해야 한다는 견해로 대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헌법은 이른바 경성헌법(硬性憲法)으로 개정절차가 까다롭다. 헌법개정안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또 국민투표에 회부하여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만 개정이 된다. 이는 그만큼 헌법개정에 신중을 기하라는 취지이다. 조금 불편하거나 미흡한 점이 있다고 해서 헌법을 손대야 한다는 것은 이런 취지에 비추어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 이상적인 헌법, 21세기형 헌법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개헌론도 역시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상적인 헌법, 21세기형 헌법의 개념자체가 현실성이 없을 뿐 아니라, 전반적 개정을 통한 새로운 헌법은 장차 통일의 단계에서 제정할 통일헌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학계나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개헌론의 학문적, 전문적 논거에 대해서는 충분히 경청하면서도 요즘 들어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개헌론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나 계산이 깔려있는 것 같아 자칫 개헌이 정치의 도구로 이용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먼저 개헌론자들이 주장하는 주요한 개헌의 논리와 이에 대한 반론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2. 왜 헌법을 고치려고 하는가?
  
  헌법개정론자들이 주장하는 주요쟁점을 사항별로 보면 아래와 같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학자도 전문가도 아니므로 학문적 또는 전문적 논리를 펼 뜻은 없다. 다만 과거 대법관으로서 또 국무총리로서 직접 국정운용의 현장에 참여해보았고, 또 야당의 총재 및 대통령후보로서 정치현장에서 대통령과 국회의 기능 및 상호관계를 직접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요즘의 헌법개정논의에 관해 느끼는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고 싶을 뿐이다.
  
  
  (1) 중임제 개정주장에 대하여
  
  단임제와 중임제의 장단점은 1987년 개헌당시에 이미 논의된 바 있는데 당시는 중임제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단임제가 제의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지금 중임제 개헌론자들은 단임제는 그 임기 중 성과가 가시화될 수 있는 단기적 정책에 치중하게 되고, 재임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임기초기부터 권력누수현상, 이른바 레임덕이 올 수 있으며, 또 재심판의 기회가 없어 민주적 책임성이 결여된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우선 단임제가 단기정책에 치중한다는 점은 실제로 생각만큼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과거의 단임제의 역대대통령 하에서도 임기를 넘는 많은 중요한 국가장기정책이 입안되고 추진되어 왔다(예컨대 노태우 대통령 때의 고속철도사업, 인천공항사업, 김영삼대통령 때의 농업구조조정사업, 초고속정보통신망구축사업 등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오히려 4년 중임제 하에서의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서도 임기 중 성과가 나올 수 있는 단기정책에 집착할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 또 레임덕현상이 단임제의 경우에 임기 초기에 올 수 있다는 주장 또한 상당히 과장된 것이다. 대체로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은 임기초반에 높은 여론지지율을 기반으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상례이다 (취임 초에 김영삼전대통령은 87%, 김대중전대통령은 81%의 높은 지지율 상승을 보였다).
  
  레임덕 현상은 통상적으로 임기종료 1년 여를 남기고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임기초반에 몇 가지 국정의 난맥상이나 혼란징후가 생겼다고 하여 이를 곧바로 레임덕 현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중임제 하에서는 2기 초반부터 레임덕 현상이 시작된다는 보고도 있다. 유독 노무현대통령이 임기초반부터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레임덕현상이 아니라 국정운영의 미숙과 무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단임제가 정권에 대한 재심판의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민주적 책임성을 해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한 논거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논리라면 중임제의 경우에도 재선을 포기하거나 재선된 대통령은 재평가의 기회가 없으므로 민주적 책임성을 결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단임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같은 당 공천의 차기 대통령후보에 대한 선거를 통해서 또는 임기 중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를 통해서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IMF사태와 1997년 대선 및 지난 5·31 지방선거가 좋은 예이다).
  
  오히려 중임제의 경우에 단임제에서 볼 수 없는 단점들이 있다. 우선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항은 재선일 터이므로 초임기간 중 득표를 의식한 인기영합적인 국정운용과 정책에 치중할 가능성이 크다. 또 재선에 임하는 대통령은 현직대통령으로서 야당후보에 비해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으므로 선거의 공정성과 형평성의 문제가 항상 나올 수 있다.
  
  이밖에도 개헌론자들은 현행 5년단임제 하에서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선거시기가 달라 빈번이 선거를 치루는 폐단이 있고, 선거시기의 차이로 인하여 여소야대 국회 즉 분점정부(分占政府)출현의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4년중임제로 하여 선거 시기를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선거시기가 달라 선거를 여러 번 치러야하는 불편은 분명히 있고 선거 시기를 일치시키는 것이 보다 편리함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을 지금 시급히 헌법을 고쳐야 할 정도의 폐단이라고까지 볼 수 있을까?
  
  먼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런데 동시 선거를 하게 되면 어느 한쪽은 소홀해질 개연성이 있다.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할 정당의 소속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선거에 매달려 자칫 대통령선거는 후보개인의 이미지선거, 포퓰리즘선거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국회의원 선거가 지역이슈보다 지나치게 대통령선거의 전국이슈의 영향을 받는 반대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분점정부의 문제는 뒤에서 따로 논한다. 이렇게 본다면 나는 단임제와 중임제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제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지금 단임제를 중임제로 바꾸어야 할 만큼 필연적이고 시급한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러한 부분적인 개헌이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헌법의 기본이념과 정체성까지 건드리는 개헌으로 번질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지금 부분적인 개헌을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 총리제 폐지와 부통령제 신설의 주장에 대하여
  
  총리제 폐지론자는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총리를 행정수반으로, 자신은 오직 국가수반으로 인식하고 의회나 야당의 비판을 자신의 초정파적 국가통치에 대한 정략적 방해세력으로 간주하여 무시하거나 대결하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총리의 존재는 대화와 타협보다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어서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대대통령들이 자신의 위치를 행정수반보다는 국가수반으로 인식하여 국정운영에서 대화와 타협보다는 제왕적인 군림으로 대립과 갈등을 조장해온 점은 정확히 지적한 대로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대 대통령들이 권력분립 하에서의 대통령의 지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데서 비롯된 것이지 총리제라는 제도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총리제가 없었더라도 대통령들은 자신을 단순한 행정수반이 아닌 국가수반으로서 입법부나 사법부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총리제는 과연 필요한 것인가? 헌법상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리이면서 내각을 통할하는 책임을 진다. 그러나 실제로 역대대통령들은 자신들이 내정, 외정할 것 없이 직접 국정을 장악하고 총리나 장관들은 대통령의 뜻을 충실히 보좌하는 것이 대통령제의 본령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총리는 이른바 대독총리, 방탄총리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
  
  이것은 총리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대통령이 방대한 국정의 전반을 직접 챙기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일뿐 아니라, 내각을 통할하는 총리에게 일정부분 역할을 분담케 하는 것이 총리의 내각통할권을 규정한 헌법의 취지에도 맞는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에서 책임총리제란 용어를 쓰는데 이는 부적절하다. 헌법상 총리는 대통령의 보좌기관이므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분담한다고 해도 국민이나 국회에 대해 헌법상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총리의 내각통할권은 행정 각 부처에서 입안 형성되고 집행되는 정부정책이 종(縱)적으로 과거와 미래에 걸쳐 일관성과 계속성을 유지하고 횡(橫)적으로는 각 부처 상호간의 이해 조정을 이루어내기 위해 참으로 중요하다.
  
  대통령도 이러한 총리의 내각통할권을 존중하고 총리를 통해 내각의 일에 관여하는 관행을 확립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비서실이 직접 각 부처 장관에게 간섭하거나 일일이 챙기려고 들면 각 부처는 각개약진으로 청와대 눈치를 살피게 되어 정책의 일관성이나 각 부처 간의 협조는 실종되기 쉽고, 결과적으로 대통령과 청와대는 감당키 어려운 무거운 부담을 떠맡게 될 것이다.
  
  나는 김영삼정부 시절 국무총리로 있으면서 이러한 총리의 역할분담을 김대통령에게 강하게 제의했으나 거절당했고, 실제로 역할분담을 시도하다가 김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총리와의 역할분담을 공언하고 시도한 대통령이라고 생각된다. 당시 이해찬 총리의 지나치게 오만한 행동으로 역할분담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지만 역할분담을 시도한 점만큼은 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총리제 대신 부통령제 신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통령이 대통령 유고시에 비상역할을 담당할 수 있고 평시에도 권력분업이 가능하다는 점과 소수파안배나 지역안배의 정치적 실익이 있다는 점 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 유고시 대행역할은 현행 헌법상 국무총리가 맡도록 되어있는데 어차피 대행기간은 장기간일 수 없으므로 총리의 대행역할에 큰 문제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2004년 국회의 탄핵소추결의로 노무현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기간에 당시의 고건총리가 대통령대행 역할을 수행한 사례를 직접 겪어보지 않았는가?
  
  또 평시 대통령과의 권력분업은 오히려 국무총리의 역할분담이 보다 실제적이다. 또 부통령에 대한 소수파안배나 지역안배는 오래된 예이긴 하지만 이승만대통령의 제1공화국정권 하에서 이시영부통령과 김성수부통령이 모두 정권주류와의 갈등을 이유로 사임한 사례를 보더라도 성공의 가능성이 희박하다.
  
  부통령제 찬성론자 중에는 정당의 응집력이 강하고 위계질서가 확실한 한국의 상황에서는 같은 정파끼리의 러닝메이트 또는 유사한 정파간의 연대로 운영되는 정부통령제는 심각한 권력갈등의 가능성이 적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같은 정파끼리나 유사한 정파간이라면 굳이 정부통령제를 활용할 정치적 실익이 없다. 또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여야간 정당의 응집력이나 위계질서가 과거와 달리 이완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할 것이다.
  
  
  (3) 여소야대, 분점정부의 문제에 대하여
  
  헌법개정론자들은 지금의 헌법 하에서는 대통령의 정당이 의회의 다수파를 차지하지 못하는 여소야대, 즉 분점정부의 출현가능이 크다는 점을 들고 있다.
  
  특히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선거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대통령 인기의 동반효과가 발휘될 수 없고 오히려 대통령에 대한 견제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여 여소야대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분점정부 하에서는 정부의 통치성 즉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폐단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선거시기가 다르더라도 대통령의 인기가 높을 때는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주장이 먹혀들 수 있으므로 여당이 다수당을 차지할 확률이 더 클 수도 있다.
  
  한편 대통령의 인기가 높더라도 집권당과 소속의원의 인기가 없을 때에는 동시선거의 경우에도 유권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별개라는 의식으로 투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선거시기가 다른 점이 분점정부 출현의 가능성을 높이는 큰 원인이라는 주장에는 정반대의 논리가 가능하여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다음에 분점정부 하에서는 정부의 통치성,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문제삼는 주장에 대해서는 솔직히 어리둥절한 느낌이 든다.
  
  여대야소 즉 단점정부(單占政府)의 경우처럼 여당이 다수당(과반수)을 차지하여 대통령의 의도대로 국회가 움직여주는 경우에는 정부의 통치성, 효율성은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에 대한 권력의 집중으로 제왕적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어왔고 그래서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히 이어져오지 않았던가?
  
  이렇게 본다면 여소야대로 분점정부가 되어 입법부의 대통령 견제기능이 더 커진 것을 정부의 통치성이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라 하여 문제삼는 것은 권력분립의 본질인 견제와 균형의 논리와 그동안 제왕적대통령의 권력집중을 비판해왔던 기억을 망각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내각책임제로 바꾸지 않는 한 대통령제하에서는 물론 이원집정제하에서도 분점정부의 현상은 언제든지 출현가능하고 또 권력분립의 본질상 이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분점정부의 출현자체를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먼저 분점정부가 되지 않도록 선거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하는데 노력해야 하고, 분점정부가 되었을 때는 대통령은 야당의원 빼가기와 같은 저질스런 방법이 아닌 정당한 방법으로 정부의 효율성을 높일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그것은 대통령의 민주적 국정운용능력과 적극적인 설득에 의한 통합의 리더십밖에 없다. 다수당인 야당을 국정운용의 한축을 이루는 파트너로 인식하고 수시로 협의하고 협조를 구하는 국정운용 스타일을 보이고, 필요할 때는 야당의원들을 직접 설득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주적 국정운용의 능력이고 통합의 리더십이다.
  
  미국의 대통령제 하에서도 여소야대 상황은 빈번히 출현하며, 최근의 예로는 야당이 상하 양원의 다수당을 차지했던 클린턴 행정부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여소야대 상황자체를 이례시(異例視)하여 법제도를 고쳐 이를 방지하려는 시도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국정을 주도해가는 대통령의 설득의 리더십이 돋보일 때가 많다.
  
  개헌론자 중에는 설득에 의한 통합의 리더십은 미국의 경우처럼 약한 정당(분권화되고 규율이 약하면서 원내중심적이란 의미에서)에 의한 의회정치 하에서만 가능하고, 한국과 같이 정당운영의 행태가 집단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경우에는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정당 특히 야당의 경우에는 소문과 같이 집단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것은 아니며, 최근에는 정당의 규율약화와 원내정당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고 의원각자의 다양한 의견표출이 활발해지고 있어 위와 같은 주장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나는 여소야대였던 김대중 정권 시절 야당의 총재로서 분점정부에 관한 많은 경험을 한 바 있다. 당시 김대중정부는 여소야대 상황에 대해 불평을 많이 했지만 정부의 효율성을 떨어뜨린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여소야대보다도 이른바 공동정부를 구성한 자민련과의 사이에서 내각제 약속이행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모적인 내부갈등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민생과 경제사안 등에 있어서는 적극 협력하는 원칙을 지키되 남북관계 등에 있어서는 정부의 대북정책이 우리의 체제와 안전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다고 보아 강한 비판과 견제의 자세를 고수했던 것이다.
  
  상호주의와 투명성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지원해온 대북정책이 결국 오늘날 북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여 동북아와 세계를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는가?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분점정부가 정부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입법부 특히 야당의 반대보다도 대통령과 정부가 야당과의 협의와 설득에 무성의하거나 설득에 의한 통합의 리더십이 부족한데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식물 대통령 운운”하면서 대통령의 고충을 호소한 바 있다. 여소야대가 대통령에게 힘든 상황임은 수긍이 가지만, 한편 총리인 이해찬씨는 국회에 나와 오히려 야당과 야당의원을 경멸하고 면박을 주는 등 야당과의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켰다.
  
  결국 이 정부가 분점정부로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여소야대 그 자체보다도 입법부 특히 야당과 협의하고 설득하는 민주적 국정운용의 의지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내각책임제와 이원집정제에 대하여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는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그 내용은 대체로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에서 되풀이하지 않겠다. 다만 대통령제를 내각책임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논리로 흔히 인용되는 대표성과 책임성에 관해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즉, 대통령제하에서의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초당적 역할과 여야정당간의 대결에서 여당을 지휘하는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는데, 국가원수로서 초당적 자세를 강조하다 보면 정당과 연계된 민주적 대표성과 책임성이 약해지고, 반면에 여당의 총수로서 야당과 부딪치다보면 국민통합보다 분열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 이러한 딜레마를 피하기 위해 내각책임제나 이원집정제로의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분히 이론에 치우친 논리라고 생각된다. 현실적으로 내각책임제하의 총리도 대통령제 못지않게 국가를 대표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리더십이 요구되기는 마찬가지다.
  
  한편 대통령제하의 대통령은 정권의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야당을 설득하고 타협과 양보를 이끌어 내야 하는 반면에, 자신이 속한 여당의 법안이나 정책안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때에는 여당으로 하여금 이를 철회 또는 개정하게 하여 정국이 극한 대결로 치닫는 것은 피해야한다.
  
  이것은 대통령제하의 수반이든 내각책임제하의 수반이든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여야 간에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고 대결로 치닫는 상황이 생긴다고 하여 대통령의 대표성에 문제가 생긴다고 볼 것이 아니다.
  
  이 밖에도 학계나 전문가들은 내각책임제의 장점으로서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고 모두 다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이러한 내각책임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대통령제보다 내각책임제가 더 적합하다는 확신을 줄 만큼 설득력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서로의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지역구의 여론과 압력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국회의원이나 정당과는 달리 일부 여론이나 이익단체 등의 압력에 구애받지 않고 국가이익과 국민복리를 위한 정책과 국가방향을 결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대통령제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대통령이 포퓰리즘이나 편향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어 위태로운 국정혼란 상황을 야기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이는 대통령의 개인적 자질의 문제이지 대통령 제도자체의 문제라고 볼 것이 아니다.
  
  끝으로 이원집정제는 한마디로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의 타협의 산물이다. 그래서 장점도 있겠지만 두 제도의 단점을 모두 가질 수 있다.
  
  이원집정제를 채택한 프랑스의 경우를 보면, 대통령의 정당이 의회과반수를 차지할 때에는 분권형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한 대통령의 지배상태가 되고, 이와 달리 대통령의 정당이 소수파 즉 여소야대가 될 때는 이른바 동거정부 상태가 되어 대통령과 의회간의 갈등의 가능성은 대통령제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 관측자들의 견해이다. 구태여 이원집정제로 바꿀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된다.
  
  
  3. 헌법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이상에서 헌법개정론자들이 주장하는 주요한 논거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반론을 제시해 보았다. 이는 어느 쪽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판단하기 보다도 개헌론자들의 주장이 어느 것이나 반론가능하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점에서 헌법개정을 반드시 해야 할 시급한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점을 나의 경험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헌법은 국가의 이념과 정체성 및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권력구조의 기본틀을 담은 국가의 기본법이다. 기본법인 만큼 일반 법률과는 다르게 존중되어야하며 조금 불편하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하여 함부로 건드릴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헌법의 해석으로서 시대의 상황변화에 적응하여 이를 보완해 나가야 한다.
  
  후진국일수록 헌법을 자주 뜯어고치는데 이것은 바로 헌법경시의 풍조를 낳고 나아가 헌정질서의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1948년 헌법제정 후 1987년 개헌 시까지 8차례의 개헌으로 후진성을 보여주었으나 1987년 개헌 후 20년 가까이 개정이 없이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왔으며,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 민주화 이후의 시기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헌법에 일부 불편하거나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까다롭고 복잡한 개헌절차를 거치면서까지 개헌을 해야 할 시급하고 불가피한 필요성이 있는 지에 관하여, 위에서 본 개헌론자들의 논거는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나는 현 시점에서의 개헌론에 반대한다. 위에서 설명한 개헌론자들의 쟁점별 논거에 대한 반론 외에도 지금 이 시점에서의 헌법개정에 반대하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본다.
  
  첫째로, 헌법을 정치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개헌론을 경계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개헌론은 대개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과거의 예로는 DJP연합의 공동정부당시 DJP간에 약속된 내각제 개헌론을 들 수 있다. 그럴듯한 내각제 당위론을 내세웠지만 많은 국민은 그 목적이 DJP간에 권력 나누기였음을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
  
  또 과거에도 정계개편과 같은 정치판 흔들기의 수단으로 헌법개정을 들먹이는 일이 있었다. 최근 여권에서 제기되는 개헌론은 다분히 그러한 의심을 갖게 하는데, 개헌을 빌미로 더 이상 국민을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된다.
  
  또 역대대통령마다 임기 말이 가까워오면 의례히 내각제 개헌론이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자신의 퇴임 후 후임대통령이 정권을 잡는 것보다 내각제로 바꾸어 자신의 지지세력을 국회 안에 유지하는 것이 정치보복을 피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더구나 정권교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집권 측은 내각제 개헌의 유혹을 강하게 받게 된다. 이렇게 헌법개정을 정치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
  
  둘째로, 헌법의 핵심인 대한민국 체제의 이념과 정체성에 관한 부분을 건드리려는 개헌론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헌법의 핵심가치는 큰 역사의 흐름이면서 이 시대의 보편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의 인권존중과 자율을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이다.
  
  지금 제기되고 있는 개헌론은 대부분 단임제나 선거시기의 개정 또는 총리제 폐지와 부통령제 신설 등 부분적인 것이고 좀 더 나아간 것이 권력구조 개편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가기본질서와 관련된 영토조항, 통일조항, 평화조항 및 경제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심지어 자유민주주의 조항까지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분개헌을 계기로 일단 개헌의 물꼬가 터졌을 때, 인권보다 통일, 자유보다 평등, 동맹보다 자주를 내세우는 좌파세력들이 우리헌법의 핵심요소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의 가치를 훼손하더라도 남북통일을 최고가치로 하거나 사회주의적 평등지상(平等至上)을 지향하는 헌법개정을 주장하고 나와 극심한 국론분열과 사회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더욱이 좌파세력들이 다음 大選정국에서의 국면전환을 위해 이러한 국론분열과 갈등을 활용하는 상황이 온다면 참으로 우리나라에는 큰 재앙이 될 것이다. 우리는 헌법개정을 가장한 헌법파괴 시도를 극력 경계하고 미리 차단해야 한다.
  
  셋째로, 개헌으로 이상적인 헌법을 만들겠다는 ‘치명적 자만’을 경계해야 한다. 21세기에 맞는 헌법이란 말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우리는 1948년 헌법제정 후 반세기 넘게 여러 차례의 개헌과 헌법질서유린의 아픔을 겪으면서 오늘의 헌법으로 키워왔다. 이제 우리헌법은 법전 안에 사장(死藏)되어 있는 한 묶음의 조문이 아니라 실생활 속에서 우리의 자유와 권리, 행복 그리고 국가권력구조를 좌우하는 살아 있는 최고 규범으로 기능하고 있다.
  
  헌법은 다양하고 변화하는 생활 속에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적용되고 해석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다듬어지고 구체화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헌법을 몇 사람이 책상머리에 앉아 이상적인 헌법, 21세기에 맞는 헌법 즉 완벽한 헌법을 만들어 내겠다고 하는데,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우리인간의 이성은 한계가 있고 각자는 제한된 경험과 지혜 그리고 정보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완벽한 헌법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인간의 이성과 모든 경험, 지혜 그리고 정보를 갖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선 무엇이 이상적인 헌법이고 21세기에 맞는 헌법인지에 관해서부터 견해가 엇갈릴 것이다. 더구나 우리의 후세에까지 남을 헌법인데 현재의 우리에게 미래나 후세의 일은 그야말로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어떻게 미래까지 감안한 완벽한 헌법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이상적인 헌법, 완벽한 헌법을 만들겠다는 주장은 오만이며,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치명적 자만(The Fatal Conceit)’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상주의적 개헌론을 보면서 나는 개혁에 관한 우리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연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理想)과 현실 가운데 개혁은 현실의 영역에 속한다. 이상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하는 것으로 인간사회에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하지만 이상은 반드시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일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일수록 보다 매력적으로 비치는 측면이 있다.
  
  한편 개혁은 보다 좋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인간의 현실적인 개선노력이다. 유토피아적인 이상사회를 개혁목표로 그려놓고 이를 일거에 이루어 내겠다고 밀어붙이는 개혁과, 이와 달리 보다 좋은 사회를 이루기 위해 사회구성원의 공감 위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가는 개혁, 이 둘중 어느 것이 더 현실적이며 가능한 것인가?
  
  전자의 개혁은 칼 포퍼가 말하는 ‘유토피아적 사회공학(Utopian Social Engineering)’에, 후자는 ‘점진적 사회공학(Piecemeal Social Engineering)’에 가깝다. 유토피아적인 이상사회, 완전한 사회란 인간의 제한된 이성과 능력으로 그려내기도 어렵거니와 이를 성취한다는 것은 더 더욱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유토피아적 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우기는 자만이고 정치적 기만일 뿐 아니라, 불가능한 것을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사회를 혼란과 재앙으로 빠뜨린다는 점에서 치명적 자만이다.
  
  과거 볼쉐비키 혁명, 공산주의의 사회개조론 등이 무산대중의 천국, 프롤레타리아 독재사회라는 허황된 유토피아를 내세우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생활을 파괴했던 일은 그 극단적인 예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좌파세력들이 우파시대의 철저한 청산 및 자주와 평등사회의 실현이라는 개혁목표를 내세우고, 입만 열면 개혁을 말하고 개혁을 내세우고 있다. 이 정부의 역점사업인 과거사정리와 양극화해소를 위한 중과세정책 및 하향평준화의 교육정책 등은 같은 맥락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치명적 자만에 빠진 사이비 개혁론을 경계해야 한다.
  
  헌법개정도 개혁과 마찬가지이다. 헌법은 유토피아 사회를 그려놓은 꿈의 경전(經典)이 아니다. 우리의 현실생활의 바탕이 되는 규범이며 그래서 헌법의 개정은 현실에 맞는 보다 좋은 헌법을 갖기위한 점진적인 개선노력이 되어야한다.
  
  신기루와 같은 이상적인 헌법, 21세기에 맞는 헌법, 완벽한 헌법을 들먹여 국론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제도운용을 통해 드러나는 개선해야 할 부분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의 헌법해석으로 가능한 부분은 헌법해석으로, 그렇지 않은 부분은 국민의 공감 위에서 점진적으로 개정해가는 것, 이것이 옳은 길이다.
  
  
  4. 맺음말
  
  이상에서 그동안 제기된 헌법개정론에 대해 내가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헌법개정논의를 보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우리는 제도운용의 문제를 제도자체의 탓으로 돌리고 너무 쉽게 제도만 고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국정의 어려움은 헌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국정운용이 미숙하거나 정치를 잘못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헌법이나 제도도 진선(眞善), 진미(眞美)한 것은 없다. 결국 이를 운용하고 적용하는 사람의 문제인 것이다.
  
  덧붙여 지금은 정치권이 헌법개정을 말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학계나 전문가들의 개방된 폭넓은 개헌논의는 뒷날 개헌을 하게 될 경우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또 유익하다.
  
  그러나 정치권은 지금 개헌을 입에 올릴 때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북한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개발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동북아에서 갈피를 못잡는 외톨이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 일어난 북한의 미사일발사사태는 이러한 우리나라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미사일 발사사태가 일어나자 美日은 즉각 공동방어체제 하에 미사일 추적을 하고 후속조처로 안보리회부와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한편 중러는 美日의 MD체제에 대응하는 최첨단무기개발을 서두르고 있어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사이에 치열한 군비경쟁과 세력각축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 틈바구니에서 한미동맹과 한미일 공조체제를 소홀히하고 자주외교, 자주국방을 외쳐온 한국은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외톨이가 되고 있고, 심지어 북한에게까지 무시당하는 기막힌 처지가 되고 있다.
  
  북한의 무분별하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흔들리는 중대한 사태가 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며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1세기 전 한반도에서 벌어진 인접 강대국사이의 세력 각축 가운데서 외로이 버티다가 나라를 잃어버린 통한의 역사가 떠오르는 것이 나만의 신경과민일까?
  
  여기에다가 지금 우리의 국가경쟁력은 계속 추락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최근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작년의 29위에서 올해 38위로 추락했고 정부행정의 효율성은 16단계나 떨어졌다는 기막힌 보도가 있었다.
  
  우리는 나라 안팎으로 밀어닥치는 위기의 파도 앞에 서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며 나라를 구할 것인가, 이것이 오늘날 정치권이 머리를 싸매고 씨름해야 할 과제이다. 정치권으로서는 한가하게 헌법개정을 말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끝)
  
  이회창/ 前 한나라당 총재 konasnet@kona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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