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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戰에 대한 世界史的 재인식(1) 세계의 자유민이 이긴 전쟁
趙甲濟
2016년 05월19일  
"저한테 고맙다고 하지 마세요. 내 인생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 이는 당신들입니다. 나를 (가치 있는 인간으로) 키워준 이는 바로 당신들입니다."(글로스터 대대 참전 군인)

                1960년대 월남전 취재기자로서 월남과 미국 지도부를 혹독하게 비판하여 반전(反戰)기자로 유명하였던 데이비드 핼버스탐은 교통사고로 죽기 직전 완성한, 한국전을 다룬《가장 추운 겨울》의 결론 부분에서 한국의 전후(戰後) 발전에 대하여 최상급의 찬사를 보낸다. 읽고 있기가 민망할 정도의 칭찬인데 물론 사실과 부합한다.

   그는 한국의 발전은 마셜 플랜에 의한 유럽의 부흥보다 더한 성공이라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유럽을 재건하기 위한 미국의 경제원조는 독일, 프랑스 등 이미 산업적 전통의 기반이 있는 나라에 준 것이었다. 한국은 정치적, 문화적, 산업적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더구나 전란(戰亂)으로 폐허가 된 가운데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하였기에 더욱 빛난다는 것이다.

   그는 개화기에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한국인의 잠재력을 간파한 점에 주목하였다. 교육에 대한 유교적 존중심, 잘 살아 보려는 열망, 제한된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는 능력, 그리고 일본인에 못지않은 근로 윤리. 하지만 이런 잠재력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제약으로 구현될 수가 없었다. 해방과 전쟁으로 미국이 한반도에 등장함으로써 이 숙명이 깨진다.

   한국을 괴롭혔던 주변 국가와 미국은 달랐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한국에 대한 무지(無知)였다. 오히려 이 점이 도움이 되었다고 핼버스탐은 평한다. 미국은 한국 땅에서 기꺼이 자국(自國)의 아들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정복자로 온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지도하에서 한국은 처음엔 군사적으로, 다음엔 기술적으로, 그 다음엔 산업적으로 근대화되기 시작하다가 민주화까지 이르게 되었다.
   핼버스탐은 한국전을 계기로 커진 장교단이 이런 놀라운 속도감으로 전개된, 혁명과 진화가 혼합된 한국형 근대화의 주체세력이었음을 높게 평가한다. 미국의 웨스트포인트를 본 딴 한국의 사관학교 교육이 젊은이들을 모아서 능력 위주로 가르치고, 사회적 제약을 돌파할 수 있는 개혁 세력으로 키워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장교단이 새롭고 현대화된 사회를 만들어낸 요람이었다고 했다. 어떤 의미에선 새로운 한국을 이끌 새로운 계급이기도 하였다.
  
  
  “장교단이 근대화 개혁의 주체 세력”
  
   그들은 먼저 군대를 개혁하였다. 그들을 가르친 미국 장교들의 영향이 컸다. 한국군 장교단은 계급사회 속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개인적 자유를 누렸다. 그들은 교육, 사회, 경제, 그리고 정치를 근대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에서 최초의 결정적 발자국을 내디뎠다는 것이다. 장교단 주도의 근대화는 한국인들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국제무대에서 경쟁하도록 하였으며 이를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가 밀어주었다. 핼버스탐은 한국의 근대화는 일본의 근대화보다도 더 큰 성공이라고 평한다. 일본의 성공엔 전례(前例)가 있었지만 한국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1960, 70년대 한국의 발전은 역경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위대한 교훈을 남긴 경이로운 인간 드라마>라고 표현하였다. 한국 현대사의 발전 속도는 너무나 빨라 위대한 지도자 이승만(李承晩)까지 퇴장시키고 달려갔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李 박사를 존경하지만 역사가 그를 무너뜨린 것이다. 그런 사태 발전을 지켜본 나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핼버스탐은 한국의 민주화에 끼친 미국의 영향 중 하나를 이렇게 소개하였다.
  “미국에 유학 간 한국 학생들은 충성스러운 시민이 되는 것과 자유를 누리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국에 충성하면서도 정부를 비판할 수 있다는 점을 배운 것이다.”

   19세기에 조선에 온 선교사들이 감지(感知)할 수 있었던 한국인의 장점들-어려운 일을 해내는 능력, 엄청난 규율, 그리고 교육에 대한 열정이 거국적(擧國的) 차원에서 폭발하면서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대세(大勢)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눈부신 발전으로부터 득을 본 이들이 바로 미국의 한국전 참전자였다. 한국을 찾은 그들은 자신들이 싸워서 지켜준 나라의 발전에 놀라면서 자랑스러워졌을 뿐 아니라 한국인들의 감사에 감동하였다. 미국에서 받아본 적이 없는 감사를 한국에서 확인하였으니.
  
  
  英聯邦 글로스터 대대 출신들의 감동
  
   서울에서 활동하면서 영국의 ‘더타임스’ 등 여러 언론기관에 기사를 쓰는 앤드류 살먼 기자는 영연방(英聯邦) 글로스터 대대의 결사항전(決死抗戰)을 다룬 《마지막 한 발까지》라는 책을 썼다. 그는, 1951년 4월 하순 중공군의 대공세로 포위당한 영연방(英聯邦) 군의 영웅적 전투(설마리 전투)를 취재하면서 여러 생존 참전자들을 만났다. 상당수는 전란 중의 한국에 대한 끔찍한 기억 때문에 ‘그런 나라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식이었다. ‘우리의 희생은 헛된 것이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을 다시 찾은 참전자들은 달라졌다.

   <그들은 새롭고, 용감한 나라 한국을 발견한 것이다. 유엔군이 흘린 피값은 미국의 돈으로 보증되고 한국인의 땀으로 상환되었다. 미국으로부터 무역과 기술이전에 특혜를 받은 데다가 권위적 정부가 들어서고, 유일한 자원이자 발전의 지렛대인 사람에 투자함으로써 한국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올림픽을 열기 전해엔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민주화까지 이뤘다. 오늘의 한국이 누리는 생활수준과 개인의 자유는 유럽의 중급 정도가 된다.>

   한국을 찾은 참전자들은 눈을 의심할 만큼 놀랐다. 가난은 사라지고, 어린 거지들, 기지 옆에 있던 쓰레기더미들, 판잣집들도 보이지 않았다. 아스팔트로 덮인 고속도로와 차량행렬이 피난민 행렬을 대체하였다. 자연 경관도 달라졌다. 국가적 식목 사업으로 벌거벗은 산은 숲의 옷을 입었다. 전란 중의 좌절한 인간군상은 사라지고 맹렬할 정도도 자부심이 강하며 역동적인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웃음꽃이 피는 학생들에게 둘러싸였던 호주 참전 군인에게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가 뭐냐고 묻자 이렇게 답하는 것이었다.

  “전쟁 때는 아이들이 모두 말이 없고 겁에 질려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떠들고, 유쾌하며, 행복해 보인다.”
  참전자들이 어리둥절해질 정도로 감동적인 것은 한국인들이 보여준 감사의 표현이었다. 영국 군인들은 그 어떤 해외 전장(戰場)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환대를 받았다. 사인을 받겠다고 몰려오기도 하였다.
  
  
  “한국인들이 나의 인생을 값진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2001년 글로스터 대대 전투 50주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참전자 일행은 전쟁기념관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의장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시 대통령 환영 행사에 잘못 온 게 아닌가’ 착각을 하였다고 한다.

   한 참전자는 “한국이 이런 나라가 되다니 하느님 맙소사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허리띠가 고장 나서 상점에 들어갔더니 주인은 새 허리띠를 주면서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당신은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싸웠잖아요. 작은 선물입니다.”

   살먼 기자는 ‘zero to hero’란 표현을 쓰면서 한국처럼 전란의 잿더미 속에서, 그야말로 제로 상태에서 일어나 영웅적 나라를 만든 것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국가적 성공 사례라고 주장하였다.

   헨리 울프스라는 영국군 참전자는 이 책(《마지막 한 발까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남북한 생활수준의 차이를 본다면 자유가 공짜가 아니란 말이 맞다. 반세기가 흘러서 뒤돌아보니 ‘잊혀진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존 프레스턴 벨 씨는 저자(著者)와 한 인터뷰에서 오히려 한국인들에게 감사하였다.
   “주는 것(giving)과 사랑하는 것(loving)의 공통점이 뭘까요? 차이가 없습니다. 같은 거예요. 50년 전 나는 내 생명의 1년을 주었습니다.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뻔했지요. 나는 한국인들이 내가 준 그 작은 것으로 무엇을 하였는지 모르고 지냈습니다. 내가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그들의 감사를 받고는, 그리고 그들이 만든 완전히 새롭고 멋진, 유쾌한, 평등하고, 야심만만하며, 번영하는 새 나라를 만든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저한테 고맙다고 하지 마세요. 내 인생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 이는 당신들입니다. 나를 (가치 있는 인간으로) 키워준 이는 바로 당신들입니다.’”

   살먼 기자는 이 감동적인 문장으로 자신의 저서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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