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동본부 - nac.or.kr

흥남철수 지휘 아몬드 장군의 生前 증언: “우리만 바라보는 피란민 외면할 수 없었다”
金永男(자유기고가)
2016년 05월23일  
戰史家인 외손자에게 전한 韓國戰의 秘話···인터뷰가 진행된 앨라배마주 저택 지하실 천장엔 한국 지도 그려져 있어. 외손주, “할아버지는 훌륭한 軍人이자 가정에 헌신한 家長이었다”
        
                
한국 전쟁 당시 흥남 철수 작전을 지휘한 미 10군단장 에드워드 아몬드 장군. 그는 흥남 철수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피란민들은) 공산주의가 싫어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다. 나는 인도주의적으로 해야 할 일을 했다. 철수 작전을 계획할 시간도, 안전성을 검토해 볼 시간도 없었다. 그냥 기본 상식을 따랐을 뿐이다.”

후퇴하는 군대가 10만 명의 피란민을 구출한 전쟁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작전을 펼친 名將(명장)이 82세 때 외손자인 토머스 퍼거슨 예비역 대령에게 남긴 말이다. 1943년에 태어난 퍼거슨 대령은 할아버지와 아주 각별한 사이였다고 했다. 퍼거슨의 아버지는 1944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戰死했다. 군인이었던 그의 외삼촌 역시 같은 해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의 어머니는 아기 퍼거슨을 데리고 자신의 아버지, 즉 아몬드 장군이 주둔하던 일본 동경으로 가서 함께 생활했다.



퍼거슨 대령이 아몬드 장군 초상화 앞에서 자신의 눈으로 본 할아버지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퍼거슨 씨 역시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해 장교로 임관했다. 월남전 때 라오스에서 근무했으며 그 후에는 교단에 오르기 위해 듀크 대학교에서 역사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이후 미국 군역사 연구소에서 공부하던 그에게 다음과 같은 과제가 내려졌다. “존경할 만한 군인을 인터뷰하라.”

1975년, 퍼거슨은 외할아버지 아몬드 장군이 지내던 앨라배마州를 찾아 한 週를 같이 보내면서 14시간에 달하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할머니는  남편 아몬드 장군의 기력이 혹시 떨어질까 우려해 손주의 인터뷰를 계속 막으려 했다고 한다.

내가 14시간 가량의 녹취 파일을 들어보니 아몬드 장군이 한국에 갖고 있는 특별한 애틋함이 느껴졌다. 인터뷰가 진행된 앨라배마주의 자택 지하실 천장에는 크게 한국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흥남 철수의 秘話를, 지도를 가리키며 소개해나갔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고 그가 태어난 버지니아주 특유의 사투리가 인상적이었다.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흥남 철수 당시 상황을 소개해달라

“당시 지휘관으로서 내 임무는 최대한 많은 민간 군무원들과 反(반)공산주의자들을 배에 싣는 것이었다. 우리만 바라보는 피란민을 외면할 수 없었다. 화물칸에 있던 탱크와 물자들 사이에도 공간이 많았기에 그곳에 피란민들을 태우기로 했다.

철수 작전 때 人力이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차마 싣지 못하고 버리고 가야 하나 고민하던 기름 드럼통 같은 물자들이 많았다. 그때 피란민들에게 일을 시켜보자고 결정했고 그들은 2인 1조로 50갤런짜리 드럼통을 굴리며 배에 싣기 시작했다. 이들이 없었으면 이 물자들은 불 태워졌거나 적들에게 뺏겼을 것이다. 아주 큰 도움이 됐다.”

아몬드 장군은 철수 상황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영화에서처럼) ‘아비규환’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피란민들이 미군의 지시를 잘 따랐다고 설명했다. 손주 퍼거슨 대령은 흥남 철수 당시 화물칸 안에 있던 피란민들이 어떻게 불을 지폈는지 요리를 하고 있어서 선원들이 화를 냈다는 얘기도 할아버지를 통해 들었다고 했다.

흥남 철수를 회고하며 아몬드 장군은 외손주에게 “철수하지 않고도 중공군을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맥아더 장군도 같은 생각이었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중공군에게는 이렇다 할 무기도 없었고 사람이 많은 것뿐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퍼거슨 대령에 따르면 백악관을 비롯한 워싱턴에서는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에 무조건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38선 이북으로 북진할 시 중공군이 개입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맥아더 장군도 중공군 개입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은 어땠는가?



인천상륙작전 당시 맥아더 장군(가운데)에게 인천 방향을 가리키는 아몬드 장군(오른쪽).  

“나는 당시 원산 지역에 있었다. 맥아더 장군은 대규모 중공군 개입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소규모의 중공군 부대가 압록강을 건널 것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소규모 개입은 美 해군과 공군 폭격으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우리가 당시 알지 못했던 점은, 영국군을 비롯한 유엔군 일부는 중공군에 대한 폭격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당시 영국은 북경에서 모택동과 일종의 외교적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은 중공군이 개입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공격할 마음도 없었다.”

-맥아더 장군은 1950년 10월 15일 웨이크 섬에서 트루먼 대통령에게 중공군 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10군단이 원산 지역에 상륙하기 직전 상황인데, 당시 압록강 북부에 중공군이 모이고 있는 것을 알았는가?

“10월 29일 맥아더 장군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7사단이 함흥 지역에 도착했을 때 장진호 부근에서 무장한 중공군을 만났다. 당시 군복과 무기를 들고 있던 중공군 16명을 포로로 잡고 인터뷰를 했다. 통역을 대동했지만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했다.

내 첫 질문은 어디 소속인가였다. 그들은 당시 중공군 지휘관 중 한 명인 ‘린뱌오 (林彪임표)’라는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임무가 무엇인지 묻자 그들은 부산까지 가는 것이었다고 했다. 부산에서 무엇을 할 계획인지를 물으니 미군과 한국군을 비롯한 적군을 물리치기 위해서였다고 답했다.

제대로 무장한 중공군을 처음 봤기 때문에 이를 맥아더 장군에게 보고하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10군단을 동부에 상륙시킨 맥아더 장군의 초기 계획은 서쪽으로 진군해 8군과 합류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8군이 평양으로 진군하게 되자 10월 19일 10군단의 임무를 만주 쪽으로 북진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그 계획은 무엇이었는가?

“초기 10군단의 목적은 8군의 평양 공격을 돕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군 26연대가 함흥 지역에서 중공군을 발견한 뒤 맥아더 장군은 10군단을 북동지역으로 진군하도록 명령했다.

8군과 10군단 사이는 산과 중공군이 가로막고 있어 비행기를 사용하지 않고는 물자를 나를 수 없었다.”

퍼거슨 대령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훌륭한 군인이자 가족에 헌신하려 최선을 다한 가장으로 기억했다. 퍼거슨은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만났을 때 약속을 하나 했다고 한다. 나는 군인이기 때문에 한 곳에 정착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약속한다. 내가 은퇴하고 나면 당신이 원하는 곳에서 여생을 함께 하겠다고”라고 전했다.

이러한 이유로 아몬드 장군은 부인의 고향인 앨라배마주로 이주했다. 손주들이 놀러 오면 놀 수 있도록 운동기구도 만들고 할머니를 위한 화원을 가꾸기도 했다.

아몬드 장군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 중 한 명은 아마도 퍼거슨 대령일 것이다. 퍼거슨 대령의 어머니=아몬드 장군의 딸은 전쟁 이후 戰死한 남편의 동기생인 군인을 만나 재혼했다. 퍼거슨 대령은 저녁 식사 자리 등에서 새 아버지와 맥아더 장군과 관련해 대화를 많이 나눴다고 했다.

퍼거슨 씨는 맥아더를 존경한 반면 자신의 새 아버지는 맥아더를 독불장군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신기한 점은 아몬드 장군과 퍼거슨의 새 아버지, 그리고 퍼거슨 대령 모두 한국에서 근무를 했다.

퍼거슨 대령은 1979년 아몬드 장군 장례식을 위해 직접 弔辭(조사)를 작성하기도 했다. 장례식장에서 조사를 읽지는 못했지만 그가 작성한 글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했던 말은 셰익스피어의, ‘겁쟁이는 천 번을 죽지만, 사나이는 한 번만 죽는다’였다. 오늘 우리는 한 사나이에게 작별을 고한다. 그는 애국자이자 군인이었고, 지도자이자 아버지, 그리고 나의 할아버지였다.>

퍼거슨 대령은 영화 ‘국제시장’이 미국에서 상영되자 여러 차례에 걸쳐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 시작 부분에 아몬드 장군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를 본 뒤 “할아버지는 수염을 기르지 않았는데 그건 조금 어색하긴 했다. 하지만 너무 좋은 영화다. 빨리 영상 파일이 공개된다면 친지와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했다.

끝으로 퍼거슨 씨는 이러한 말을 했다.

“흔히 한국 전쟁이라고 하면 인천상륙작전이나 서울 수복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흥남 철수 역시 매우 중요한 작전이라고 생각한다. 피란민을 군용선박에 태우기로 결정한 할아버지가 매우 자랑스럽다.”


국가적 自殺만 하지 않는다면
[양영태 칼럼] 새누리 ‘김용태 전 혁신위원장 사퇴 유감!’


서정갑 본부장, 백선엽 대한민국육군협회 명예회장 예방(禮訪)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은 지난 9월 9일 미국에서 오신 국군포로송환 운동 회장이..
황당무계한 '광주사태 600명 북괴군 침투설'은 대한민국 國軍을..
99주년 3.1절 국가회복 범국민대회, 수십만 명의 애국시민 ..
국민행동본부, 트럼프 美 대통령 방한 환영 국민대회 열어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 美 백악관 안보정책 보좌관 만나 '韓美동..



영웅에게 드리는 감사패
워싱터 동포들이 드리는 감사패
국군 포로 송환 위원회 감사패
이지구씨의 질의와 답변
서정갑씨, 마지막으로 당부합시다(추태중지)



[문화일보] "우파를 조롱거리 만들어" 보수진영서도 강력 비판

2019년 2월11일자 [문화일보] 보도 “천안함 北소행 여부 놓고, 토론회..
검찰, 지만원의 서정갑 본부장 고소(告訴) 관련 “혐의 없음” ..
서정갑 본부장 MBC 출연영상 - 2019.2.24 탐사기획스트..
경제풍월 2017년 12월호 -[아스팔트 우파의 상징] 서정갑 국..
경제풍월 (2017년 10월호)

서울 서초구 나루터로 4길 28 304동 206호 (우) 06522     (C) 2002 nac.or.kr

 접속문제로 게시판을 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