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신임 국사편찬위원장에 柳永益 교수 내정
김필재
2013년 09월23일  
학계에서 建國 대통령 이승만 전문가로 평가 받아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좌(左)편향 문제가 잇따라 지적되고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유영익(柳永益, 77세, 사진) 한동대 석좌교수를 신임 국사편찬위원장에 내정했다.



학계에서 이승만 대통령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는 柳 신임 국사편찬위원장은 50년간 역사연구를 수행한 학자 출신으로 한림대 부총장과 국사편찬위원을 역임했다.

경남 출신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정치학과, 미국 하버드대 동양사 박사, 고려대 사학과 교수 등을 거쳤다.




유영익 교수 “한강의 기적은 이승만의 작품”
이승만 대통령 재조명 국제 학술회의


연세대 국제대학원 ‘현대한국학연구소’(소장 한성신)는 지난 12~13일 교내 상남경영원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적 재평가’를 주제로 제6차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李承晩, 1875-1965)대통령을 통치자, 사상가, 외교가, 교육가, 동아시아 반공지도자 등의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이번 학술회의에는 그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쏟아졌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10여 년간 이승만 연구에 몰두해 온 유영익 연대 석좌교수를 비롯하여, 고정휴(포항공대), 이정식(美 펜실베니아대), 김일영(성균관대), 김한교(美 신시네티대), 차상철(충남대), 전상인(한림대), 김세중, 박명림, 오영섭(연세대), 김흥수(목원대), 정진석(한국외국어대), 온창일(육사) 교수 등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김흥수 목원대(한국개신교사) 교수는 “이승만은 20대 후반 기독교에 귀의한 후 이후 줄곧 ‘기독교 국가 건설’을 구상했고, 대통령이 된 후 기독교 신자를 국가 기구에 등용하며 그 구상을 실현에 옮겼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전상인 교수도 “이승만은 예수교 받드는 나라들이 문명부강하다고 생각했으며, 기독교의 보급을 통해 한국인을 시장경제 및 자본주의 사회에 적합하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전상인 한림대(사회학과) 교수는 <문화변혁 주도자로서의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이승만은 배재학당에서 신학문을 접한 이후, 조선 역시 사회진화의 법칙에 따라 산업화*근대화라는 서구의 발전 행적을 따라가야 한다는 개화파의 서향(西向)노선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이어 “이승만은 특히 미국을 인류문명의 이상으로 보았고, 한국 사회를 미국 사회와 닮은 모습으로 바꾸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차상철 충남대(사학과) 교수는 <외교가로서의 이승만 대통령>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철저한 반공-반일주의자이자 철저한 지미(知美)*용미(用美)주의자로 평가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생존과 안보를 담보할 수 있는 최선의 제도적 장치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고 판단하고 이 조약의 체결을 위해 미국에 대한 엄포와 협박, 그리고 최후통첩과 같은 ‘벼랑 끝’전략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유영익 연대 석좌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 : 거시적 재평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이승만에 대한 총체적 평가를 시도하면서 그가 “유엔(UN)의 권위를 빌려 미-소 양국의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남한 단독으로 자율적 민주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남한을 동아시아 유일의 미국식 대통령제 국가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교육가로서의 이승만은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하고 각급 학교를 대거 신설했다. 이로써 1945년에 비해 1950년에는 초등학생 2.6배, 중학생 10배, 고등학생 3.1배, 대학생 12배가 증가해 전후 한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된 ‘교육기적’의 기초를 놓았다”고 했다.



유 교수는 경제면에서도 이승만은 농지개혁을 단행해 토지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전환시켰으며, 1958년 신설된 산업개발위원회를 통해 ‘3개년 경제발전계획 시안’을 마련해 ‘한강의 기적’의 청사진을 기초했다고 말했다.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 2004년 11월16일자 보도(출처: 인터넷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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