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씨에게 수사 받던 중 자살한 4명중 3人 이야기
趙成豪(조갑제닷컴)
2013년 10월04일  
안상영(前 부산시장), 전 某 씨(前 부산지방국세청 공무원), 박석안(前 서울시 주택국장).

  
채동욱 검찰총장이 과거 수사를 맡았던 사건의 관련자 중 네 명이 자살했다.

남상국 前 대우건설 사장, 안상영 前 부산시장, 전 某 부산지방국세청 공무원, 박석안 前 서울시 주택국장이 그들이다. 이들의 수사 책임자는 채동욱 검사였다.

이중 2004년 3월 자살한 남상국 사장의 경우, 채 씨가 부장으로 있던 서울지검 특수2부가 수사를 맡았으나 검찰 수사에 의한 자살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남 전 사장의 자살 원인은, 자살 당일 노무현 前 대통령이 공개 기자회견에서 한 ‘인신공격性 발언’ 때문이라는 게 定說(정설)이다. 따라서 검찰 수사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안상영 前 시장과 전 모 씨, 박석안 前 국장의 자살 배경만 다루기로 한다.


■ 안상영 前 부산시장

安相英(안상영) 부산시장은 2003년 10월16일 진흥기업 박영준 회장으로부터 1억 원을 받고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2004년 1월27일, 검찰은 安 시장이 부산 동성여객 대표 이광태로부터 3억 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추가 발표했다. 그는 같은 해 2월4일 새벽 1시 경 부산 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安 시장은 1963년 서울시청 근무를 시작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서울시 도로국장, 도시계획국장, 종합건설본부장 등을 거쳤다. 1988년 부산시장, 1990년 해운항만청장을 역임했고, 1998년 民選 부산시장으로 당선된 뒤 2002년 再選(재선)에 성공했다.


'수갑 채우고 포승줄까지 묶어 이송'

安 시장 주변 인물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평소 명예를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이들은 安 시장이 본인의 명예가 실추된 데 따른 부담감과 인간적인 모멸감이 컸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그의 친구이자 한나라당(現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최병렬 前 의원은 <월간조선> 2004년 3월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부산구치소에서 서울구치소로 호송해 가는데, 손에는 수갑을 채우고 그 위에 포승줄을 꽁꽁 감았다고 해요. 안상영이가 도망갈 흉악범입니까. 화장실도 못 사용해서 교도관이 깡통으로 오줌을 받았답니다. 이게 얼마나 모멸감을 주겠어요. 그렇게 갔으니 얼마나 심신이 지쳤겠어요. 그런데 다음날 조사한다고 서울지검에 불러 다 놓고 앉혀서 오후 4시까지 기다리게 했다고 해요. 계산된 건지는 몰라도 엄청난 모멸감을 안겨준 거예요.>

安 시장을 서울로 불러올린 서울지검 특수2부 부장검사가 바로 채동욱 씨였다. 그의 자살 직후 검찰은 安 시장에 대한 수사경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채동욱의 서울지검 특수2부가 수사 주도

검찰은 安 시장이 동성여객 등 부산 운수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2004년 1월29일 부산구치소에서 서울 구치소로 移監(이감)했고, 다음날 서울지검 內 구치감으로 데려왔다고 밝혔다.

검찰은 安 시장 부인 金 모 씨가 ‘몸이 아프다’며 출석하지 않아 安 시장을 조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安 시장을 구치소로 돌려보냈고, 그 뒤 사건을 부산지검으로 移牒(이첩)하면서 2월3일 그를 부산 구치소에 再이감했다고 밝혔다. 최병렬 씨 주장처럼, 安 시장이 이 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安 시장을 부산 구치소로 이감할 때까지 별도의 조사를 하지 않아 수사과정에서 강압이나 가혹행위가 벌어질 가능성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야만적인 검찰권 행사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검찰이 起訴狀(기소장)에서 밝힌 安 시장의 혐의 중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바로 安 시장이 박영준으로부터 돈을 받은 과정이다. 검찰은 安 시장은 2000년 4월경 자신의 서울 자택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앞길에서 박 씨로부터 1억 원을 받았다고 했다.

이에 安 시장 측 柳秀烈(유수열) 변호사는 “칠십을 넘긴 노인네(박영준)가 1억 원이 담긴 13kg짜리 가방을 들고 길거리에서 부산시장에게 주었다는 검찰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이 사건은 “뇌물을 주었다”는 진술만 있는 사건입니다. 검찰 공소장에 뇌물을 주었다는 날짜와 시간이 빠져 있습니다. 朴회장은 택시에 돈가방을 싣고 와서 전달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걸 安 시장이 길거리에서 받아서 자기 아파트로 가방을 끌고 갔다는 얘기입니다. 기업체 회장과 부산시장이 이런 방법으로 길거리에서 돈을 주고 받았다는 게 납득이 갑니까? 검찰은 安 시장이 받았다는 1억 원을 어디 썼는지 돈 1만 원도 증거로 내놓지 못했어요.> (출처: <월간조선> 2004년 3월호)
  
유 변호사는 “이건 야만적인 검찰권의 행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거듭 비판했다.

박 씨는 검찰에서 ‘진흥기업 소유인 부산 도심의 부산 고속버스터미널을 부산 외곽 그린벨트로 이전하고, 터미널 부지에 대한 용도 변경을 신속하게 처리해 달라고 뇌물을 주었다’고도 진술했다. 검찰은 박 씨의 이 같은 진술만을 구체적 증거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安 시장의 변호인단은 “고속버스터미널을 옮기는 계획은 이미 1995년에 계획되어 安 시장이 부산시장에 취임하기 전에 관계 법령이 고쳐졌다”고 반박했다.


전 모 씨의 焚身자살

이밖에도 동성여객으로부터 수천 만 원의 뇌물을 받아 검찰로부터 계좌추적을 받던 부산지방국세청 공무원 전 모 씨(당시 53세)도 같은 해 2월2일 승용차 안에서 焚身(분신)자살했다. 전 씨에 대한 수사 역시 서울지검 특수2부가 맡았다. 서울지검은 전 씨가 자살한 당일인 2004년 2월2일, 사건을 부산지검에 이첩시켰다. 전 씨 역시 서울지검 특수2부에 의해 수사를 받았다는 뜻이다. 당시 검찰은 “사건 관련자 대부분의 거주지가 부산인데다 관할문제가 있어 사건을 부산지검으로 넘겼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違法 사실 발견 안돼”

사건 발생 직후 법무부는, 차관을 반장으로 하는 특별진상조사반을 편성해 安 시장 자살 원인과 문제점을 조사했다.

법무부는 “구치소의 수용이나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 등의 위법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교정 측면에서, 수용거실의 점검을 소홀히 하여 자살의 의사가 표출된 편지와 메모지를 사전에 발견하지 못하는 등 일부 규정 위반이 확인되었고, 수사 과정에서도, 安 시장에 대한 인간적 배려가 다소 부족하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미흡한 점이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유족과 知人들의 분개

부인 金 모 씨는 그의 殯所(빈소)에서 “추위만 안 왔어도, 추위만 안 왔어도…”라는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시장님은 가을에 파카를 입고 이불을 덮어도 춥다고 하신 분이에요. 면회 갔다 올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어요.… 너무 춥다고 하셔서 시신을 선산에 안 모시고 절에 모시기로 했다.> (출처: <월간조선> 2004년 3월호)



安 시장을 6년간 보좌했던 박상헌 前 부산시 정책특보는 그가 수감되었던 獨房(독방)을 확인한 뒤 “창문에 바람막이 비닐을 하나 했는데 바깥 온도나 방 안 온도나 똑같았다”고 밝혔다. 朴 前 특보는 “刑이 확정되지 않은 사람은 무죄다. 대명천지에 무죄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육체와 정신을 이렇게 황폐하게 만드는 權能(권능)을 누가 검찰에 주었는가”라고 비판했다.



■ 박석안 前 서울시 주택국장

2006년 5월, 대검 중앙수사부(부장 박영수 검사장)는 현대자동차그룹 양재동 社屋(사옥) 증축 인허가 과정에 특혜 의혹이 있었다며 이를 집중 수사하고 있었다.


“檢, 서울시 책임을 무리하게 만들어”

대검 중수부는 서울시가 인허가에 주도적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박석안 前 서울시 주택국장을 소환조사했다. 서울시는 2005년 1월, 현대차 양재동 사옥을 유통 업무시설에서 연구시설로 용도변경 승인을 해줬다. 이 과정에서 당시 서울시 주택국장 겸 서울시 건축심의위원장이었던 박 씨가 현대차로부터 뇌물을 받고 불법 용도변경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박 씨를 다섯 차례나 소환조사 했고, 박 씨 처남의 금융거래 내역도 수사했다. 박 씨는 6번째 소환조사를 앞둔 同年 5월14일 팔당호에 투신자살했다. 그가 남긴 유서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건물 증축과 관련된 종합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서울시의 책임을 무리하게 만들어가고 있음. 이 과정에서 수사관들은 금융거래 내역을 조사하여 이미 본인이 현대자동차나 설계회사로부터 金品(금품)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수사관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충분히 인지하였을 것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을 괴롭혀서 항복을 받아낼 욕심으로 저와 돈 거래한 처남은 물론 처남과 돈 거래한 사람까지 계속 확대하고 있음. 따라서 검찰에서는 본인은 물론 기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과정에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힘들게 싸워야 하나 변호사가 아무리 유능하고 사법부가 공정하다 해도 대검 중수부를 이길 수가 없다고 판단됨.…>

박 씨는,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했다’며 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판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나타났다.

채동욱 “유서는 본인의 주관적 말 쓰는 것”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은 채동욱 씨였다. 박 씨가 자살한 다음 날인 5월15일, 검찰은 긴급 브리핑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4월28일 첫 소환해 자동차 구입대금 출처를 물어보니 ‘본인(注: 박석안)과 부인 명의의 예금계좌에서 대금을 지불했다’고 진술했고 관련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박 씨가) ‘2005년 7월4일 처남 강 모 씨로부터 빌린 3000만원으로 차량 대금을 냈다’고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고 설명했다. 채 씨는 조사과정에서 “폭언은 없었다”며 “폭언까지 하며 자백을 받으려 하겠나”고 강압수사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박 씨의 유서 내용과 관련해 “유서는 본인의 주관적인 말을 쓰는 거다. 코멘트할 가치가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수사를 받는 사람이 중압감이 왜 없겠나. 자기 말이 자꾸 달라지는데…”라며 “돌아가신 분의 혐의 有無(유무)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에 자꾸 이야기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채 씨는 ‘박 씨 처남 계좌에 현대차 돈이 들어온 것을 확인했냐’는 질문에 “현대차 돈은 아니다”라고 했고, ‘현대차 돈이 아니면 이번 수사와 거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거기까지만 하자. 수사 대상자는 돌아가셨고 喪中(상중)에 있다”고만 답했다.(발언출처: 인터넷 <한국일보> 2006년 5월16일字 ‘<일문일답> 대검 채동욱 수사기획관’)


“오죽 억울했으면 목숨까지 끊었겠느냐”

하지만 검찰 발표와는 달리 유족들은, 박 씨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모욕적인 대우를 받고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한 知人은 “처남의 계좌를 통해 자동차 값이 지불된 것에 대해 박 씨가 수표까지 제시하며 결백을 주장했는데 검찰이 계속 추궁했다”며 “오죽 억울했으면 목숨까지 끊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유족은 “보통사람은 경찰서만 가도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해지는데 평생 공무원으로 지낸 그가 검찰에 다섯 차례나 불려가 죄인 취급을 받으니 수치심이 한계를 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발언출처: 인터넷 <국민일보> 2006년 5월16일字 “檢 ‘작품만들기’ 강압수사 논란… 박석안 前 국장 유족들 ‘오죽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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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相英 부산시장 자살과 채동욱 부장 검사

친구인 崔秉烈 한나라당 대표는 『安相英 시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인간적인 모멸』이었다고 했다.

조갑제닷컴


2004년 3월호 月刊朝鮮은 옥중에서 자살한 安相英 부산시장 사건을 깊게 다뤘다.

<安相英 부산시장은 2003년 10월16일 「진흥기업 朴英俊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고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安시장은 朴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며 재판을 진행 중, 2004년 2월4일 새벽 1시에 부산 구치소에서 목을 매 숨졌다.
安시장은 구속 당일부터 2004년 1월27일까지 일기를 썼다. 安시장의 일기는 安시장이 구속 후 자살하기까지 심경 변화가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처음엔 재판에 강한 집념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명예의 실추」를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
2004년 1월27일, 「安시장이 부산 동성여객 대표 이광태씨로부터 3억원을 받았다는 사건」이 추가로 발표되었고, 安시장은 1월29일 이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安시장은 서울지검에서 아무런 조사도 받지 않고, 2월3일 서울구치소에서 부산구치소로 再이송되었으며, 이날(4일) 새벽 목을 맸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채정(65), 딸, 혜원(37), 아들 정훈(30)씨가 있다.>

李相欣(이상흔) 기자가 쓴 이 기사는 서울지검으로부터 받은 '대우'가 자살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주장하였다.

[1월29일 安相英 시장은 「이광태 사건」을 조사받기 위해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朴相憲 특보는 『서울구치소로 이감한 것이 安시장을 죽게 만든 직접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1월29일 오전 8시에 安시장을 수갑을 채운 뒤 포승줄을 묶고 호송차에 태워 서울로 끌고 갔습니다. 호송차에서 오줌을 누겠다고 하니까, 교도관이 깡통을 가지고 와서 받아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검찰은 安시장을 한 번도 조사하지 않고 2월3일 부산구치소로 다시 보냈습니다. 安시장이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겠습니까?』

1월30일 오전 9시30분 서울지검은 安시장을 서울지검 구치감에 데려와 기다리게 했다. 安시장은 이날 오후 4시30분까지 일곱 시간 동안 구치감 독방에서 조사를 기다렸다. 朴相憲 특보의 얘기다.

『구치감에는 이불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허리가 아픈 분이 추운 데서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安시장이 어디 도망갈 사람입니까? 도대체 조사도 안 할 거면서 왜 노인네를 서울지검에 불러 간 겁니까』

당시 서울지검은 언론 브리핑을 통해 安시장을 조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安시장이 「부인을 통해 이광태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을 돌려줬다」고 주장해서 부인에 대한 수사를 동시에 할 필요가 있었다. 1월30일 시장 부인 金埰貞씨에게 소환통보를 했고, 이에 따라 安시장은 서울지검의 구치감까지 왔다. 그러나 安시장 부인이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출석하지 않아서 安시장을 서울구치소로 돌려 보낸 것이다』

安시장은 2월3일 부산교도소行 죄수 5명과 함께 호송되어 부산구치소에 되돌아 온 후 곧바로 자살했다.

1월27일 이후 일기쓰기를 중단한 安시장은 1월29일 「서울구치소」로 옮겨간 이후의 생활에 대해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친구인 崔秉烈 한나라당 대표는 『安相英 시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인간적인 모멸』이었다고 했다.
『부산구치소에서 서울구치소로 호송해 가는데, 손에는 수갑을 채우고 그 위에 포승줄을 꽁꽁 감았다고 해요. 安相英이가 도망갈 흉악범입니까. 화장실도 못 사용해서 교도관이 깡통으로 오줌을 받았답니다. 이게 얼마나 모멸감을 주겠어요. 그렇게 갔으니 얼마나 심신이 지쳤겠어요. 그런데 다음날 조사한다고 서울지검에 불러 다 놓고 앉혀서 오후 4시까지 기다리게 했다고 해요. 계산된 건지는 몰라도 엄청난 모멸감을 안겨 준 거예요』

친구 朴煐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安시장은 명예를 제일 소중하게 여겼어요. 그런 사람이 자신이 부산시장 관용차를 타며 자랑스럽게 오르내리던 경부 고속도로를 수갑을 찬 채 올라갔으니 죽고 싶었을 거예요』

한나라당의 진상조사단은 安시장의 자살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은 安시장을 무리하게 이감 지휘를 해서 서울로 올려 보냈다. 검찰 구치감에 불러 하루 종일 대기시켰다. 조사도 하지 않고 다시 安시장을 부산구치소에 돌려보냈다. 수갑과 포승을 찬 채 서울-부산을 장시간 오르내리도록 하면서, 용변을 호송차 안에서 처리하도록 했다. 극도의 인간적 모멸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케 만들었다. 이것이 安시장을 자살로 몰아간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법원가에는 「6조지」라는 재미있는 속설이 떠돌아다닌다.
『형사는 때려 조지고, 검사는 조사한다고 불러 조지고, 판사는 기일 연기해서 조지고, 감옥 간 사람은 먹어 조지고, 가족들은 재판 비용 마련하느라 재산을 팔아 조진다』는 얘기다.

모든 피의자는 법원의 판결이 있을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해야 하는 것이 형사소송법의 정신이다. 판결할 때까지 피의자는 무죄라는 얘기다. 하지만 피의자 신분인 安시장은 흉악범들과 똑같은 처우를 받았다. 수갑에 묶이고 그 위에 포승줄까지 묶여 경부고속도로를 오르내렸다. 여론은 힘있는 사람들을 구속하고 수모를 주는 검찰에 박수를 보냈다. 검사는 서울로 安시장을 불러 올려 놓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법무부는 2월14일 「수사 관련자들은 구속 피의자를 소환해 구치감에 장기 대기토록 하였다가 조사 없이 돌려보내는 경우, 조사하지 못한 사유를 설명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서울지검에 주의를 줬다.
한국의 사법부는 이 피의자가 자살할 때까지 보석 신청을 허용하지 않았다. 40년 가까이 공직자로 근무한 그의 경력, 400만 시민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고려대상이 되지 못했다. 安시장의 한 친구는 『安시장의 죽음은 야만적인 검찰권의 행사가 초래한 것』이라며 『누가 검찰에게 피의자를 무조건 감옥에 가두고 시들어 죽게 하는 권한을 주었느냐』고 흥분했다.
우리는 安시장이 닦은 사직터널을 지나며, 목동 新시가지를 지나며, 올림픽대로를 달리며 그를 기억할지 모른다. 『나는 코피 난다고 쉴 만큼 한가한 팔자가 아니다』며 밤낮 없이 일한 개발연대의 神話 安相英은 그렇게 갔다. 그는 무죄인으로 죽었고, 그런 점에서 검찰은 패배했다.]


국민일보는 2004년 2월4일자에서 이렇게 보도하였다. 이 기사에 채동욱이란 이름이 나온다.
<그동안 안 시장을 수사해왔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채동욱)는 이날 불필요한 의혹을 차단하기 위한 듯 극히 이례적으로 수사경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검찰은 안 시장이 동성여객 등 부산 운수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지난달 29일 부산구치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이감한 뒤 다음날 서울지검내 구치감으로 데려왔다. 검찰은 중요 참고인인 안 시장의 부인 김모씨가 ‘몸이 아프다’며 출석하지 않자 안 시장을 조사하지 않고 구치소로 돌려보냈고,그 뒤 사건을 부산지검으로 이첩하면서 3일 안 시장을 부산구치소로 재이감시켰다. 따라서 안 시장에 대한 조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과정에서 강압이나 가혹행위가 벌어질 개연성 자체가 없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그러나 동성여객으로부터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아왔던 부산지방국세청 공무원 전모(53)씨가 지난 2일 승용차안에서 분신자살한 데 이어 안 시장마저 자살함으로써 수사방식에 문제가 있었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검찰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법무부는 사안이 중대하다고 보고 이날 곧바로 법무부차관을 반장으로 22명이나 되는 초 매머드급 특별진상조사반을 편성했다. 조사반은 부산 및 서울구치소의 수감관리 소홀 및 질병치료 관련 의혹,서울지검 및 부산지검의 관련자 수사과정 등에서의 문제점 등을 집중조사하게 된다.>





“검찰총장 찍어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도둑의 큰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