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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과 마키아벨리, 국가와 권력
趙甲濟
2014년 06월28일  
실용적인 富國强兵策
  
   기원 전 7세기 중국 전국시대 齊(제) 나라 재상 管仲(관중)의 정책은 요사이 말로 하면 富國强兵(부국강병) 정책이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万乘(만승), 즉 万臺(만대)의 戰車(전차)를 가진 나라에는 萬金(만금)의 상인이 있고, 千乘(천승), 즉 天臺의 전차를 가진 나라에는 千金의 상인이 있으며 百乘, 즉 百臺의 戰車를 가진 나라에는 百金의 商人이 있다.」
   富國이 되어야 强兵을 육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管仲은 이런 말도 했다.
   『나라는 원래 財貨(재화)가 많으면 먼 데서도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어 있다. 땅을 개간하고 개발하면 몰려온 사람들은 머문다. 곡식창고가 차 있으면 사람들은 예절을 안다. 입고 먹는 것이 충족되면 사람들은 榮辱(영욕)을 안다.』
   管仲의 이 말은 정치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관중을 모델로 하여 소설을 썼던 일본작가는 이 말이야말로 춘추전국 시대 최고의 名言(명언)이라고 했다.
   관중은 인간이란 물질적으로 안정이 되어야 도덕도 지킬 수 있고 예절도 알게 된다고 했다. 그래야 法治가 이루어질 수 있다.
   孟子(맹자)의「恒産(항산)이 있어야 恒心(항심)이 있다」는 말도 비슷하다.
   <안정된 생업(恒産)이 없으면서도 안정된 마음(恒心)을 품는 것은 오직 선비에게만 가능한 일이고, 백성으로 말하자면 안정된 생업이 없으면 안정된 마음도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안정된 마음이 없으면 방탕하고(放), 편벽되고(僻), 사악하고(邪), 사치한(侈) 짓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마침내 죄를 저지르게 한 다음 좇아서 처벌한다면 이것은 백성을 그물로 긁어서 투옥시키는 짓[罔(=網)民]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군주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을 그물질할 수 있겠습니까?>
   (孟子: 안외순 옮김)
  
   상공업자들에게 병역 면제
  
   管仲은 위대한 개혁자였다. 관중은 齊 나라를 21개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이들 중 6개 지역은 상공업자들이 사는 지역이었다. 管仲은 이 상공업 구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兵役(병역)의무를 면제해주었다. 管仲이 보기에는 상공업이 농업보다는 생산성이 높으므로 상공업자들을 군대로 데리고 가는 것보다는 이들로 하여금 열심히 돈을 벌고 물건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 군사력을 강화시키는 데 있어서도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管仲의 이런 실용적 개혁정책으로 해서 齊나라에는 많은 상인과 기술자들이 몰려와서 장사도 하고 물건도 많이 만들게 되었다. 특히 해안지방에서는 소금을 만드는 산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당시 소금은 곡식만큼이나 중요한 물자였다. 요사이 말로 하면 管仲은 외국인들이 많이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戰國시대 최고 인물로 꼽히는 管仲은 또 관리들의 임무를 전문화한 사람이었다. 그때까지 齊나라의 공무원들은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들을 총람하는 식이었다. 관중의 건의에 따라 桓公(환공)은 전문영역을 설정하여 업무를 세분하였다. 사회가 발전하여 복잡하게 되는 데 따른 정부기능의 조정이었던 것이다. 이런 管仲의 사상을 담은 책이 「管子(관자)」 24권이다.
  
   인간의 본성을 간파한 사람
  
   管仲의 위대성은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정확하게 간파했다는 점이다. 인간을 미화하지도 않고 인간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는 富國强兵 정책을 폈지만 전쟁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管仲은 그러나 백성의 약점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凡人은 남에게서 혜택받기만을 기대한다. 그러므로 사랑은 미움의 시작이고 德(덕)은 원망의 바탕이 된다.>
   인간심리의 통찰자인 管仲의 현대성은 그가 法治(법치)를 德治(덕치) 위에 놓은 점이다.
   <聖君(성군)은 나라를 통치할 때 法에 의존할 뿐 良識(양식)에 의존하는 일이 없다. 근거 있는 계수에 의존할 뿐 막연한 이론에 얽매이는 법이 없다. 공적인 기준에 의존할 뿐 개인적인 사정에 의존하는 법이 없다. 당당한 태도에 의존할 뿐 임시변통의 책략에 의존하지 않는다.>
   管仲은 '법은 변하지 않아야 변란이 생기지 않는다. 법을 자주 바꿔서 백성을 지배하는 나라는 불행을 당한다'고 말했다. 管仲은 富國强兵을 통해서 백성이 ‘배 부르고 등이 따뜻하도록’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君主의 권력이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대목을 읽으면 근대 정치학의 개척자인 16세기 프로렌스 사람 마키아벨리의 ‘君主論’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므로 군주는 지나치게 미워해서도, 지나치게 사랑해서도 안 된다. 지나치게 사랑하면 失德(실덕), 지나치게 미워하면 失威(실위)가 된다. 총명한 군주가 쥐고 있는 여섯 가지 권한이 있다. 그것은 살리고 죽이고 부유하게 하고 가난하게 하고 귀하게 하고 천하게 하는 것이다. 군주가 처해 있는 자리가 네 가지이다. 文과 武, 威와 德이다. 그럼에도 군주가 쥐고 있는 권한을 신하에게 넘겨주는 수가 있는데 이를 脫柄(탈병)이라고 한다. 군주가 처해 있어야 할 자리를 신하에게 넘겨주는 것을 失位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군주의 명령은 먹히지 않는다.>
  
   非戰論 비판
  
   중국의 戰國시대에 齊나라를 패권국가로 만들었던 桓公의 명재상 管仲은 인물을 평가하는 방법을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을 놓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도 알아낼 수 있다. 그 사람이 교제하는 상대를 살펴보면 그 사람이 현명한 사람인지 못난 사람인지를 알 수가 있다.>
   管仲은 요사이 한국에서 판을 치고 있는 평화지상주의를 예감한 듯 이를 兼愛(겸애)사상이라고 부르면서 비판했다.
   <非戰論(비전론)이 판을 치면 아무리 견고한 요새가 있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兼愛사상(남이나 자신을 똑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묵자의 사상)이 판을 치면 병사들은 戰意(전의)를 상실한다. 無爲長生(무위장생) 사상이 판을 치면 염치심이 없어진다. 민본사상이 판을 치면 군주의 명령은 지켜지지 않는다. 다수결주의가 판을 치면 賢者(현자)와 愚者(우자)의 구별이 없어진다. 拜金(배금)사상이 판을 치면 작위와 家門의 가치는 떨어진다. 정실만능 사상이 판을 치면 법률은 제 구실을 못한다. 아첨과 거짓이 판을 치면 간교한 인간이 득세한다.>
   管仲은 위정자가 명심해야 할 國政운영의 다섯 가지 원리를 이렇게 제시했다.
  
   1. 토지는 정치의 기본이다.
   2. 朝廷(조정)은 사회질서의 중추이다.
   3. 市況(시황)은 물자의 수급상황을 보여주는 기본이다.
   4. 화폐가치는 경제 동태의 척도이다.
   5. 軍備(군비)는 國力에 맞추어야 한다.
  
   너무나 명확한 뜻이므로 달리 해설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管仲의 제자들: 鄧小平, 명치유신 主役들, 李承晩, 朴正熙, 李光耀
  
   管仲의 동양적 실용정치의 泰斗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명분론이 퇴색하자 管仲型의 실용론자들이 東洋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았다. 이것이 東北亞와 東南亞 발전의 리더십이 되었다.
   일본의 明治維新(명치유신) 주도세력, 중국의 鄧小平, 싱가포르의 李光耀, 한국의 李承晩 朴正熙가 성공한 동양적 실용정치가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렇다.
  
   1. 富國强兵을 국가목표로 했다.
   2. 이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서 對外的으로는 개방정책을 썼고, 對內的으로는 시장주의에 따른 경쟁과 자율을 촉진시켰다.
   3. 애국적 국가엘리트 집단을 만들어 이들이 민중지향적인 정책을 펴도록 했다.
   4. 이들은 自主的이었으나 닫힌 自主가 아니라 열린 자주를 지향했다. 민족주의자라기보다는 국가주의자였고, 배타성이 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애국자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5. 이들의 행태는 합리성, 과학성, 愛國愛族心(애국애족심)에 바탕을 두었다. 朱子學的 명분론의 결정적 결함은 명분을 실천할 방법론이 없었다는 점인데 管仲型 지도자들은 효율적인 공조직을 건설하여 생산성을 확보했다.
   6. 이들 실용정치인들이야말로 동양의 先進세력이다. 金日成으로 상징되는 교조적 공산주의자들은 주자학적 명분론의 정치 전통을 이어받은 守舊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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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상스 사람 마키아벨리
  
   14~16세기 유럽의 르네상스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꽃이 핀 문학과 예술은 인간과 神(신), 그리고 국가를 보는 시각을 바꿔놓았다. 神이 지배하던 중세유럽 사회는 문예부흥, 종교개혁, 인쇄술 발전을 통해서 인간중심으로 바뀐다. 피렌체에 살았던 사람들의 천재성이 그 뒤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켰다. 이 도시를 찾을 때마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한다. 피렌체는 메디치와 같은 商人(상인) 겸 정치인의 도시이고, 미켈란젤로 같은 위대한 예술가의 도시이며, 동시에 니콜로 마키아벨리 같은 사상가의 도시였다.
  
   이 도시의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지름이 45m나 되는 돔을 이고 있는, 두오모라고 불리는 성당이다. 이 성당에서 남동쪽으로 약 800m 떨어진 곳에 ‘피아자 디 산타 크로세’(Piazza di Santa Croce)라는 광장이 있다. 이곳에 ‘바질리카 디 산타 크로세(Basilica di Santa Croce)’가 있다. ‘聖(성)십자가 성당’(Basilica of the Holy Cross)이란 뜻이다. 하얀 정면이 인상적이다. 서기 1294년에 기공하여 1442년에 준공되었다. 길이가 115m로서 프란시스코 계통의 성당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성당 안에 있는 16개의 예배당은 지오토와 그 제자들이 장식한 프레스코로 유명하다. 이 성당안에는 피렌체 출신의 수많은 위인들 무덤과 墓碑(묘비)가 있다. 갈릴레오, 기베르티, 단테(무덤은 라벤나에 있고 묘비가 여기에 있다), 롯시니, 미켈란젤로, 그리고 최근 인물로는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묻혔다. 이 성당에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묘비석이 있다. 마키아벨리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모른다.
  
   마키아벨리는 1469~1527년간 생존했다. 아버지는 변호사였다. 마키아벨리의 생존시기는 피렌체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문예부흥(이는 물론 후세에 붙인 이름이다)이 이탈리아 전체로 확산되던 시기였지만 전쟁과 정변이 끊이지 않는 질풍노도의 시대였다. 분열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프랑스, 스페인, 신성로마제국(독일)의 영향권에 들어가고 있었고, 교황은 직할지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있었다. 정규군보다는 傭兵(용병)들이 더 활약을 많이 했고, 이들은 돈에 팔려 하루아침에 편을 바꾸기도 했다. 1527년엔 신성로마제국 군대가 유럽의 정신적 支柱(지주)인 로마를 점령하여 약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게르만족의 로마 약탈 이래 1000년 만에 처음 일어난 일이었다.
  
   이런 시기에 마키아벨리는 공부를 많이 했다. 특히 로마에 대한 탐구심이 많았다. 메디치 家門(가문)이 다스리던 피렌체는 선동가 사브나로라에 의한 민중혁명, 공화정, 王政(왕정)복고의 과정을 거치면서 격동하고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공화정에 참여하여 외교와 국방분야 고위직에 종사했다. 대사, 특사로 일하기도 하고 1509년엔 라이벌 도시국가인 피사의 군대를 패배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그는 용병을 싫어했고, 시민군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피렌체 시민군이 피사의 용병을 이긴 것이다.
  
   현실을 떠나 古代 속으로
  
   1512년, 쫓겨났던 메디치 가문이 교황과 스페인 군대의 도움을 받아 피렌체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복귀했다. 마키아벨리는 反메디치 음모를 꾸민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고문까지 받았으나 불리한 자백을 하지 않아 풀려났다. 관직에서 떠난 그는 두오모 성당의 돔이 보이는 근교에서 칩거하면서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들 '君主論'(군주론) 등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富國强兵(부국강병)에 로마와 베니스를 성공사례로 연구하면서 국민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현실정치를 멀리 하고 著述(저술)에 매진하던 때 친구 프란세스코 베토리에게 쓴 편지가 남아 있다. 그는 일상 생활을 이렇게 묘사했다.
   <저녁이 오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서재로 간다. 문턱에서 나는 옷을 벗고 궁정복으로 갈아 입는다. 이런 옷차림으로 나는 古代(고대)로 들어간다. 그들은 나를 반가이 맞아준다. 이 세계에서 나는 혼자서 먹고 살면서 그들에게 묻는다. 네 시간 동안 나는 현실의 세계를 떠나 그들의 세계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古代는 로마의 세계이다. 그는 피렌체의 현실을 비관하면 할수록 찬란한 로마의 시스템과 자주적 로마인의 세계로 들어가 위안과 교훈을 얻으려 했다. 르네상스의 모토는 “로마로 돌아가자”였는데, 그런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전형적인 ‘르네상스型(형) 인간’이었다.
   마키아벨리란 이름은 여러 가지 인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냉혹한 권력주의자란 인상이 하나 있고 냉철한 정치학자란 인상이 있다. 냉혹한 권력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근대 정치학의 문을 열었다고 칭찬하는 사람도 많다.
   그가 쓴 君主論은, 일부 인사들로부터는 권력자들이 좋아할 말들만 담은 책으로서 도덕과 원칙이 결여된 권모술수만 소개하고 있는 나쁜 책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하면 권력을 잡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를 가리킨다. 로마 교황청은 오랫동안 君主論을 禁書(금서)목록에 올렸다.
  
   정치에서 도덕론을 제거한 사람
  
   이처럼 부당한 비판을 많이 받는 마키아벨리는 실제로는 대단한 사상가요 선각자였다. 그는 권력과 인간의 本性(본성)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권력의 속성, 인간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권력자만을 위한 위선적인 정치가 아니라 국민들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실용적인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확신이었다.
   그는 근대 정치학의 嚆矢(효시)이다. 그가 과학으로서의 정치학의 아버지가 된 것은, 정치를 지배하던 원리를 도덕론에서 현실론으로 교체하고, 권력의 안정적 관리의 목표를 國利民福(국리민복)를 위한 것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무식한 식자층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온 것도 그가 도덕을 앞세운 識者層(식자층)의 허구와 철없음과 僞善(위선)을 많이 벗겨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동양의 韓非子(한비자)가 욕을 먹고 있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인간이란 원래 권력을 두려워하고 미워하게 되어 있다. 어느 사회이든 권력자는 소수이고 절대다수는 그 권력행사의 대상이 되는 弱者(약자)이다.
   그러니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권력을 두려워하고 권력을 기피하는 사람이 항상 많은 법이다. 권력의 이익을 보는 사람도 많지만 인간이란 원래 피해에 대한 기억은 오래 가는데 이득을 본 데 대한 고마움은 쉬 사라지고 그 이익은 모두 자신이 똑똑한 덕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정치가는 권력을 富國强兵을 위해 써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부하들을 통제할 수가 있어야 한다. 소수의 부하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군주만이 다수 국민들의 복지와 행복을 구현할 수 있다. 권력자는 인기에 영합해선 안 된다. 말없는 다수 국민들의 욕구를 항상 느끼고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말 많은 지식인들의 위선을 깨고 무시할 수 있어야 다수 국민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용주의를 정치학에 도입하다
  
   마키아벨리야말로 실용주의를 정치에 적용한 최초의 학자이다. 그 실용주의를 담은 ‘君主論’은 군주가 어떻게 권력을 잡고 그 권력을 유지할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마키아벨리보다 2000년 전의 사람인 管仲(관중)의 주장과 90% 이상 일치한다. 그는 君主의 폭력 행사를 변호했으나 그 폭력행사는 최단시간 내에 최소한으로 그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君主論만큼 중요한 著作(저작)은 ‘티투스 리비우스의 첫 열권에 대한 담론’이다. 리비우스는 로마사를 쓴 로마인이다. 마키아벨리는 이 책에서 로마 시절의 경험을 인용하면서 공화국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고 권력은 어떻게 견제되어야 하는가를 다뤘다. 마키아벨리는 공화정이 公國(공국)보다 효율적이라고 믿었다. 이 책에 나오는 몇 가지 문장만 읽어도 마키아벨리를 권모술수의 大家(대가)라고 욕하는 것이 얼마나 무식한 짓인지 알 수 있다.
  
   <시민의 정부는 군주의 정부보다 더 좋다>
   <시민과 군주들의 잘 잘못을 비교하면 시민이 항상 우월한 자질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군주는 臣民(신민)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불평해선 안 된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군주들의 失政(실정)에 있기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오늘의 정치인들에게도 통용이 되는 명언들을 많이 남겼다.
   <머리에 넣어두지 않으면 안 되는 사실은 신질서를 만들어내는 것만큼 어려운 사업은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런 개혁의 실행자는 현체제 아래서 단물을 빨아먹고 사는 사람들 전체를 敵(적)으로 돌려야 하며 신질서로부터 득을 보는 사람들로부터는 아주 미미한 지지밖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체제를 즐기는 사람들은 공포감을 갖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불신감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여기서 개혁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혁으로 손해 볼 사람의 저항은 확실하고 끈질긴데 개혁으로 득을 볼 사람들은 아직 그 구체적 혜택에 대한 체험이 없으므로 反개혁 세력을 잠재울 만한 지지를 개혁자에게 보내주지 않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또 이런 말을 남겼다.
  
   <권력을 가진 인간들 사이에서 최근에 베풀어준 은혜에 의해서 이전의 원한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인간은 은혜를 쉽게 잊지만 원한을 좀처럼 잊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말을 또 들어보자.
   <자신의 안전을 자신의 힘에 의하여 지킬 의지를 갖지 않은 경우, 어떤 국가라고 해도 독립과 평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신을 지키는 데 있어서 힘에 의존하지 않고 운에 의존하려들기 때문이다. 「인간 세계에선 자신의 실력에 기초를 두지 않는 권세나 명성만큼 허무한 것은 없다」는 타키투스의 말은 어느 시대에나 유용한 현명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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