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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 한 방으로 大戰이나 核戰이 일어날 수 있는 곳-한반도!
趙甲濟
2014년 01월27일  
1차 대전 때의 유럽과 2014년의 한반도는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

     1차 세계대전은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 한 방으로 시작되었다. 한 달여 사이에 유럽의 모든 강대국들이 연쇄적으로 전쟁으로 끌려들어갔다. 이런 일이 지금의 세계에서 일어난다면 그곳은 한반도일 것이다. 예측불능의 잔인한 독재자가 核(핵)미사일 발사 단추를 만지작거리는 한반도에선 재래식 전투로 시작한 충돌이 核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차 대전 때의 유럽 상황과 東北亞(동북아)의 상황은 비슷하다.
  
   1. 국제질서의 현상타파가 전쟁을 부른다. 당시 유럽에선 독일이 普佛(보불)전쟁에서 이긴 후 프랑스를 젖히고 유럽의 패권국가가 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육군국인 러시아와, 해군국인 영국과 긴장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특히 독일의 해군력 증강에 위협을 느낀 영국은 전통적인 主敵(주적) 프랑스를 대신하여 독일을 경계하게 되고 프랑스와는 가까워진다.
   지금 동북아에선 현상타파의 主役(주역)이 중국이다. 중국이 독일처럼 막강한 경제력을 군사력 증강에 쓰고 있다. 해군력 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태평양과 석유수송로의 안전을 걱정하는 미국 및 일본과 긴장관계이다. 중국은 세계패권 국가 자리를 놓고 미국에 도전할 생각은 없으나 아시아의 孟主(맹주) 자리는 탐할 것이다. 여기서 일본과 부딪치게 된다. 中日(중일) 전쟁이란 역사적 경험이 두 나라를 과민하게 만들 수 있다.
  
   2. 1차 대전은 발칸 반도의 복잡한 사정이 뇌관 역할을 하였다. 민족, 종교 문제가 배경이었다. 러시아가 같은 슬라브 族(족)인 세르비아를 지원하면서 오스트리아를 견제하고, 독일은 이 오스트리아를 후원하는 형국이었다. 동아시아의 발칸 반도는 이념대결과 核경쟁이 진행되는 한반도이다. 미국과 일본이 한국을,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형국인데, 최근엔 美中, 日中에 이어 韓日관계마저 악화되었다.
  
   3. 지도력의 결핍. 비스마르크, 몰트케, 빌헤름 1세가 주도한 독일 통일 이후 오래 평화가 계속되던 유럽에선 대인물이 사라지고 편협한 국가주의에 함몰된 지도자뿐이었다. 1914년 여름 유럽이 전쟁을 향하여 치닫는데도 어느 정부의 어느 지도자도 전쟁을 회피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의 軍 지휘부는 거의가 實戰(실전) 경험이 없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1차대전 때도 전선에 나가지 않고 먼 후방의 사령부에서 지도를 펴놓고 수만, 수십 만 명을 죽이는 작전을 지휘하였다. 전투경험이 없는 지도자일수록 더 好戰的(호전적)이란 이야기가 있다.
   지금 동아시아도 비슷하다. 드골, 아데나워 같은 지도자들이 나와서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를 이끌어냈듯이 동북아의 긴장을 주도적으로 해소하려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동북아 군대 지휘자들도 거의 전부가 實戰 경험이 없다. 특히 애송이 같은 김정은은 현실감각이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고, 예측불능이고, 폭력적이며, 과대망상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미국 정보기관의 평가). 동북아에서 일단 위기가 발생하면 분쟁 국가 간 조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전쟁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있다.
  
   4. 당시 독일군 참모본부가 맹신하던 공격적 작전계획이 1차세계대전의 한 요인이 되었다. 그들은, 철도의 발달로 총동원령을 먼저 내린 쪽이 전투지역으로 병력을 집중배치할 수 있게 되었기에 선제공격이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기습을 당하지 않으려는 강박관념이 무모한 행동을 유발하였다.
   한반도에서도 공격적 작전계획이 主流(주류)이다. 북한정권은 늘 기습남침을 준비하고 있으며 한국도 남침 징후 포착 시의 선제공격 계획을 발전시킨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를 갖게 됨으로써 한국은 선제공격을 당하면 망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5. 독일군은 1914년에 시간이 자기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러시아가 군비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지금 전쟁을 하면 유리하고 2년 뒤엔 불리하다'는 판단이 독일군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오스트리아 제국 황태자 암살은 독일의 국익을 침해하는 것도 아닌데 독일군이 開戰(개전)을 향하여 달려 간 데는 위기를 찬스로 본 때문이다.
   북한정권은 한국이 미사일 방어망을 완성하기 전에 核미사일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도 북한정권이 핵폭탄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기 전에 결정적 해동을 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릴지도 모르다.
  
   6. 김정은으로 하여금 '내가 核을 쓰는 순간 나와 一族(일족)이 죽는다'는 확신을 갖게 해야 한다.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을 24시간 감시하고 치명타를 날릴 수 있는 무기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韓美日(한미일) 정보 협동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한반도의 총성 한 방이 동북아 大戰(대전), 또는 核전쟁으로 연결될 수 있는 最惡(최악)의 시나리오를 써 볼 때이다.
  
   7. 국가의 모든 정책, 국민들의 모든 정치적 판단엔 核공격 저지가 최우선 순위로 올라야 한다. 北이 핵개발을 하도록 도운 남한의 반역자들을 색출, 응징, 배제, 낙선시켜야 한다. 北의 핵미사일 實戰배치와 南의 從北(종북)정권 등장이 결합되면 한국은 망한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전쟁을 막는다. 이 순간에도 미친 자가 核미사일 발사단추를 만지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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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대전의 원인과 결과
  
  
   2014년은 1차 세계 대전 발발 100주년이다. 1914년 6월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帝國(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드와 부인 소피아가 제국령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하였을 때 이웃한 세르비아의 암살단이 잠복해 있다가 황태자 부부를 사살했다.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의 보호국인 세르비아를 이 기회에 정리하려고 결심, 무리한 요구를 했다. 세르비아 정부가 암살에 관련하였다는 증거는 없었다.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의 요구를 거의 다 받아들였다. 오스트리아는 이를 무시하고 7월28일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준비부족으로 8월12일까지는 전투를 할 수 없음에도 서둘러 한 것이다. 그 직전, 독일제국의 빌헤름 2세는 오스트리아가 모험정책을 펴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일종의 백지수표를 발행하였다. 이게 결정적이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는, 보호국인 세르비아를 위하여 오스트리아를 겨냥한 부분적인 동원령을 내렸다. 문제는 러시아 군대의 작전계획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대상으로 한 총동원령만 있었지 부분 동원령 계획은 없었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독일은 7월29일 러시아에 동원중지를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음 날 총동원령을 내렸다. 니콜라스 2세는 전쟁을 피하기 위하여 동원령을 중지시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경우 이미 세워진 전쟁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장군들이 반발할 것이 분명하였다. 그는 7월30일 부분 동원령을 총동원령으로 바꿨다.
  
   러시아와 독일은 양국 간 문제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때문에 전쟁으로 치닫는다. 독일은 7월31일 러시아에 대하여 재차 동원 취소를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자 8월2일 선전포고하였다.
  
   8월1일 독일은 프랑스에 대하여는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하였으나 프랑스는 國益에 따라 행동하겠다고만 답했다. 독일이 세워놓은 전쟁계획-슐리펜 플랜에 따르면 독일의 전략은 프랑스를 먼저 쳐서 항복을 받은 뒤 러시아 전선으로 병력을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독일이 이기려면 선제공격을 해야 했다. 당시 유럽의 군사 전력가들은 공격중심의 사고를 했다. 러일 전쟁의 여순 기지 공방전을 보면 방어가 유리한 면이 많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공격위주의 전략에 집착하였다. 먼저 선수를 치려면 총동원령을 먼너 내려 병력을 기차로 전선에 먼저, 대량으로 실어날라야 한다.
   독일은 8월3일 프랑스에 선전포고하고, 슐리펜 계획에 따라 벨기에를 침공했다. 슐리펜 참모총장은 죽기 전에, 獨佛 접경지대에선 프랑스 군의 요새가 너무 견고하므로 벨기에를 통과하는 침공계획을 세워놓았던 것이다. A.J.테일러 같은 역사학자들은 1차 대전의 진짜 원흉은 슐리펜이라고 지적한다.
  
   독일군의 전략 판단에 의하여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프랑스와 벨기에가 전쟁에 끌려들어갔다. 벨기에를 지키기로 약속했던 영국이 독일에 공격중단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자 다음 날 독일에 선전포고한다. 독일은 벨기에 침공이 이렇게 빨리 영국의 개입을 부를 줄 예상하지 못하였다. 영국도 미리 경고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유럽의 강국들은 自國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황태자 암살 사건을 촉매제로 하여 연쇄적으로 전쟁으로 말려 든 것이다.
  
   1917년엔 미국까지 프랑스-영국-러시아의 연합군 편에 참전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제국, 그리고 오스만 터키가 한 편이었다. 각 7000만 명 정도의 병력을 동원했다. 약 1000만 명의 군인이 죽었다. 主전장은 프랑스-독일의 서부전선이었다. 기관총과 대포를 동원한 참혹한 진지전이었다. 1km 전진하는 데 수만 명이 죽었다. 베르당 요새 전투에선 독일과 프랑스軍이 작은 野山(야산)을 놓고 근 6개월간 격돌, 40만 명 이상이 戰死(전사)했다.
  
   1차 세계대전은 20세기 역사, 그리고 한국인의 운명에도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1. 이 전쟁의 여파로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났다. 1917년의 일이었다. 러시아는 독일과 강화조약을 맺고 연합국 대열에서 이탈하였다. 이는 서구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의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을 뜻했다. 러시아 공산혁명의 성공은 1945년의 한반도 분단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2.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터키 등 3大 제국이 붕괴되었다. 제국주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는 것이다. 러시아 제국의 붕괴로 공산국가가 최초로 등장한 데 이어 오스만 터키가 무너지자 지배하에 있던 中東에서 여러 나라들이 독립하였다. 한때 세계의 화약고로 불렸던 中東 문제의 근원이 여기서 비롯된다.
  
   3. 미국이 참전, 연합국의 승리를 결정지음으로써 세계최대 强國(강국)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 '미국의 세기'를 연다. 일본은 英日동맹 조약에 따라 독일에 선전포고, 연합국 편에 섰으나 戰後(전후)에 英日(영일)동맹을 해체, 서구 자유민주주의 대열에서 이탈, 만주와 중국 침공에 열중하고, 태평양의 制海權을 놓고 미국과 대결하게 된다. 태평양 전쟁과 한국 독립의 길로 가는 길을 연 것이다.
  
   世界史를 바꾼 직접적인 요인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이었지만, 이것이 뇌관을 터뜨리게 된 것은, 오랫동안 유럽에서 축적된 경제적, 외교적, 사상적 모순이었다. 특히 독일이 1880~81년의 普佛(보불)전쟁에서 승리, 유럽의 패권국가로 등장,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군력을 증강시킨 것이 영국을 자극하였다. 세계 시장을 경영하는 무역국가 영국은 制海權(제해권)을 양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전통적인 경쟁국 프랑스와 화해하고 독일을 主敵(주적)으로 삼게 된다. 요사이 미국이 중국에 대하여 취하는 외교전략과 일맥상통한다. 어느 강대국이 그 힘을 국제질서의 현상타파에 쏟으면 전쟁이 나는 수가 있다.
  
   1차 세계 대전의 終戰(종전)과정에서 연합국은 패전국 독일을 너무 몰아붙인다. 1918년 독일이 항복할 때 독일本土(본토)는 거의 침공당하지 않은 상태였다. 보불전쟁의 패전국 프랑스가 戰勝國(전승국)이 되어 가혹한 배상금을 물리는 등 복수를 하는데 이게 독일국민들에게 원한을 심는다. 이런 원한과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하여 집권한 것이 히틀러였다. 히틀러의 등장으로 2차 대전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1차 대전은 더 참혹한 2차 대전의 産母(산모)였던 셈이다.
  
   역사가들은 1차 대전 발발 과정을 많이 연구해왔다. 오스트리아를 제외하곤 진정으로 전쟁을 원하는 나라가 없었다. 그럼에도 동맹조약과 미리 짜놓은 군사전략이 서로 얽히면서 전쟁으로 끌려들어갔다. 6월의 총성이 8월의 전쟁으로 진행되는 과정은 그래서 한반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미쳐 날뛰는 김정은이 곧 核미사일 발사 단추를 누르는 힘을 갖게 될 것이고, 일단 누르면 그 미사일이 운반한 원자폭탄이 7분 만에 서울 상공에서 터지는데, 한국은 그것을 막을 수단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대한민국 국회는 미사일 방어망 건설을 방해하고 국정원을 無力化(무력화)시키는 법안에 합의하였다. 정치와 민주주의가 自害(자해)의 수단이 될 때는 국가적 자살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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