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동본부 - nac.or.kr


국민행동본부 소개



◆ 서정갑 본부장 주요경력

- 연세대 행정학과 졸업 / 소위임관 - ROTC#2
- 육군대학 정규과정 22기 졸업
- 경기대학교 안보대학원 졸업

- 월남 전투 참전/국가유공자
- 육군대학 행정처장
- 육군본부 총무과장
- 육군본부 부관차감
- 육군기록정보관리단 단장 (92年 12月 전역)
- 대한민국 ROTC중앙회 사무총장
-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7, 8, 9대)상임위원
-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중앙회 이사
- 반핵반김 국민협의회 운영위원장
- 육해공군해병대(예)대령연합회 창설(95.4.17)
- 밝고힘찬나라운동 사무총장

- 육해공군해병대(예)대령연합회 회장(1995.4.17~2007.12.20)
- 사단법인 국민행동본부 이사장겸 본부장
- 아시아 문화교육진흥원 상임고문
-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정책자문위원


◆ 상 벌 사 항
- 1977년 보국포장 수상
- 1977년 미합중국 육군 공로훈장 수상
- 1982년 보국훈장 삼일장 수상
- 1988년 대통령 표창 수상
- 2003년 자랑스런 연세 ROTCIAN 에 선정
- 2004년 美대사관 감사장 수상
- 2008년 제1회 '우남 이승만대통령 애국상' 수상(단체상부문)
- 2008년 경찰청장 감사장 수상(제63회경찰의날)
- 2009.10.18 워싱턴 동포모임 감사패
- 2009.10.18 워싱턴 아시아태평양인권협회 회장 감사패
- 2009.10.18 워싱턴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회장 감사패
- 2009.10.18 워싱턴 한미자유민주연맹 회장 감사패
- 2010.01.12 2010 '자랑스러운 연세인상' 수상
- 2010.03.24 미서부지부 대표회장 감사패
- 2010.03.24 미국토방위군지원사령관 감사패
- 2010.03.26 미주국군포로송환위원회 회장 감사패
- 2011.03.15 대한민국재향군인회 鄕軍大徽章(향군대휘장)수상
- 2014. 연세졸업 50주년 모교를 빛낸 연세인 선정
- 2015.12.29 자랑스런 대한민국ROTCian상 수상


※ 훈 • 표창 등 수상기록 35회

※ 국가유공자



[인물연구] 영원한 대령정신의 투지 徐 貞 甲

『전쟁터에서 죽는다는 심정으로 싸운다』

월간조선 2004년 11월호

徐 貞 甲
1940년 만주 출생. 연세大 행정학과 졸업. ROTC 2기. 1992년 육군 대령 예편. 現 육해공군해병대예비역 대령연합회 회장, 親北좌익척결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밝고힘찬나라운동 사무총장, 反核反金국민협의회 운영위원장.

李根美 자유기고가 (gosus@dreamwiz.com)


『우리 지방에서도 국민대회를 열어 달라』


지난 10월4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국보법 死守 국민대회」에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오후 6시쯤 대회가 끝난 뒤에도 수천여 명의 참가자들이 「청와대에 가서 항의하자」며 두 시간 가량 시위를 벌였다.

老兵(노병)들 주축인 참석자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고, 경찰은 물대포까지 쏘면서 강경 진압을 벌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오후 8시10분까지 농성을 계속했다. 「反核反金국민협의회」 최인식 사무총장이 여러 차례 해산을 호소했으나, 참가자들은 듣지 않았다.

徐貞甲(서정갑·64) 회장이 단상에 올랐다. 군중들이 갑자기 『서정갑』, 『서정갑』을 환호했다.

徐회장이 『부상자가 많으니, 오늘은 여기서 시위를 끝내자. 국보법 死守를 위해 다시 모이자』고 호소하자 참가자들은 돌아갈 채비를 차렸다.

10월6일 오후 2시에 徐貞甲 회장과 인터뷰 약속을 했으나, 그는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약속 장소에 나왔다.

경찰이 徐회장을 비롯한 反核反金국민협의회 부위원장 박찬성(북핵저지시민연대 대표), 최인식 사무총장, 대변인 신혜식(독립신문 대표)씨에 대한 소환을 통보해서 하루 종일 대책회의를 했다고 한다.

10월7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대령연합회 사무실에 갔을 때도 인터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세 대의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려대는데다, 방문객이 계속 찾아왔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하지 못하고 전화를 받아줘야 했다.

『우리 지방에서는 언제 대회를 열어 주느냐』, 『집회를 가급적 늦은 시각에 열어 달라』, 『대낮에 대회를 하면 참석할 수 없으니, 가능한 한 늦은 시각에 시작해 퇴근 후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정신을 쏙 빼는 전화벨 소리


사무실의 전화벨 소리가 끊임없이 울리는 와중에 徐회장의 휴대폰까지 울렸다. 어느 순간 徐회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민국 경찰이 아니라 경찰을 가장한 인민무력부가 침투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병대 대령 정복을 입은 사람과 칠순의 6·25 참전용사를 방패로 찍었습니다. 대회 끝난 지 24시간도 안 돼서 팩스로 「국민협의회 지휘부를 몽땅 소환하겠다」고 하는 건 앞으로 집회를 못 하게 하겠다는 얘깁니다. 소환에 응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국정감사에서 진상조사를 하겠다」는 전화였다고 한다.

경찰은 徐회장에게 「10월7일 오전 10시까지 남대문경찰서로 나오라」고 통보했다. 徐회장은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남대문경찰서에서는 소환을 하면서 창피할 겁니다. 자신들이 먼저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까.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었겠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상급자인 나 혼자만 가면 됩니다. 내가 갈 만하다고 생각될 때 갈 겁니다』

전화가 계속 걸려와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집회가 없을 때는 『왜 집회가 없느냐』는 전화가 많이 오고, 집회 이후에는 『광고를 못 봐서 못 갔다. 왜 TV 광고를 안 하냐』는 항의가 많다고 한다.

쉴 새 없이 「찌륵찌륵」 소리를 내는 팩스로 격려 전문이 쏟아졌다. 격려차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徐貞甲은 의병대장』


한국근우회 이희자 회장은 배를 열 상자 갖고 찾아왔다.

『徐貞甲 회장님은 보수진영이 모두 침묵할 때 나타난 의병대장입니다. 모두들 눈치나 보고 말 안 할 때,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내놓고 일하는 분이지요. 徐貞甲 회장님을 우리 여성들이 열두 폭 치마 폭에 품고 지킬 겁니다』

도저히 인터뷰를 할 수 없어 여러 사람이 나누는 얘기를 들었다. 그날의 화제는 단연 10월4일 집회였다. 사고 없이 집회가 끝날 수 있었는데, 경찰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다친 사람이 생긴 것에 대해 다들 성토했다.

그날 집회는 사전에 남대문경찰서에서 길을 터 주어서 광화문 네거리까지 행진을 하면, 청와대에서 국민들의 요구사항이 담긴 문항을 받아가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처음부터 경찰버스로 도로를 막아 시위대가 앞으로 가지 못하게 막았고, 그 과정에서 화가 난 일부 군중들이 버스를 흔들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았다.

예비역 해병대 대령 박성표(57)씨는 해병대 정복을 입고 맨 앞에 서 있다가 경찰이 방패로 찍는 바람에, 앞니 두 대가 부러지고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전치 4주의 중상을 입었다. 그날 10여 명이 다쳤다. 차와 차 사이에 사람이 끼어서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일도 생겼다.

『대한민국 경찰이 북한 인민무력부 소속이냐』

『국보법을 사수하고 나라를 지키자는 참전용사들을 공격하는 건 국가이기를 포기한 행위다』

『훈장을 받은 사람은 나라의 일등공신이다. 국가공권력으로 훈장받은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했다는 건 무정부 상태라는 의미이다』

분노와 우려가 쏟아졌다.

최인식 사무총장은 『지방에서 집회하려는데 장소를 빌리기가 힘들다. 장소를 안빌려 주면 전국적으로 강연회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徐회장은 이번에 아무 도움을 받지 않고도 대회를 무난히 치렀다고 말했다.

『수십만 명의 회원들이 1000원씩, 1만원씩 보내준 돈으로 10월4일 대회를 치렀습니다. 오히려 회비가 남았을 정도입니다. 그 전 대회는 태극기도 팔고, 후원도 받아 어렵게 치렀으나 이번에는 아무 도움도 안 받았는데 오히려 돈이 남았어요. 국민들의 위기의식이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에 호응이 컸던 거죠』

10월9일 다시 사무실을 찾았을 때, 토요일인데 여전히 전화가 밀려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결국 인터뷰는 10월10일 月刊朝鮮 사무실에서 마무리해야 했다. 徐貞甲 회장은 설마설마 하던 국민들이 지난 7월부터 완전히 돌아섰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 정권에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지난 7월2일 의문사진상위원회가 간첩과 빨치산 출신을 민주화 보상자로 선정하고, 간첩혐의로 복역한 자가 별 4개 야전사령관을 심문했다는 보도를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됐습니다. 여기다 더욱 불을 지른 것은 盧武鉉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관해야 한다」고 말한 점이죠』

徐貞甲 회장은 親北左翼척결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대령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석 달간 공석이었던 「反核反金국민협의회」 5代 운영위원장 자리에 7월2일 취임했다.

徐회장은 『강성인 내가 보수 대연합체의 운영위원장을 맡게 된 것이 바로 위기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徐회장은 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된 다음날 바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항의 방문했다. 사안이 있을 때마다 신속하게 대처하고 게릴라식으로 집회를 연다는 게 그의 전략이다.

7월23일에는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빌딩 앞에서 국군격려국민대회를 연 다음, 7월28일 전체회의에서 徐회장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긴박한 상황이다. 회의하고 중지를 모으다 보면 아무것도 못 한다. 하루 하더라도 똑바로 하고 싶으니 모든 권한을 나에게 위임해 달라」고 얘기했더니 딱 한 명이 반대했습니다. 그러면 「나 안 하겠다. 회의하다 보면 버스 지나가는데 언제 일하냐」고 항의했더니 만장일치로 전권을 위임해 줬습니다』

운영위원장이 된 이후 거의 2週 간격으로 네 차례 집회를 가졌고, 10월4일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집회를 하면서 점점 참가 인원은 늘어나고, 참가자의 연령은 낮아지고, 회비와 호응은 늘어나는 걸 느꼈다고 한다.


남북한에서 요주의 인물로 찍어


徐貞甲 회장은 2001년 1월 신문에 독특한 광고를 내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주요 신문에 5단 통으로 빡빡한 글씨의 광고 아래 「대령연합회 徐貞甲」이라는 이름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4년째 110회 이상 광고를 하면서 일관성 있는 자세를 유지하자 신뢰를 얻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지난 7월부터 대중집회를 주도하게 되자 요즘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다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택시를 타면 기사들이 택시비를 안 받고, 음식점에 여럿이 함께 가도 밥값도 안받고 술까지 대접해 줘요. 후원 못 하니 밥이라도 대접한다면서… 사인해 달라, 사진같이 찍자는 대학생들도 많아요. 여자분들도 많이 반가워하시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강연 초청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캐나다·인도네시아·필리핀·중동 등 세계 각국의 교민들이 연락을 하고, 싱가포르에서는 9월 집회에 5명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초기에 대령연합회 광고문구가 과격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모두 『지금 보니 다 맞아떨어진다』고 얘기한다. 또 글씨가 너무 빡빡하니 그냥 구호만 쓰라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 교과서가 됐다. 사정을 알게 됐다. 더 자세히 써 달라』고 말한다.

徐회장은 『젊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건 民心이 움직인다는 의미』라며 『이 정권의 책임자들이 시장에 나가 보고 택시 좀 타보라』고 권유했다.

그는 盧武鉉 정부와 북한에 요주의 인물로 찍혀 있다. 2002년 5월18일 북한 평양방송에서 『남한의 가장 악질적인 反통일 세력을 남한 인민들이 제거하는 데 앞장서라』는 성명이 나왔고, 5월20일에 똑같은 내용의 「민민전」 대변인 성명이 나왔다. 徐회장의 ROTC 후배가 사업차 북한을 방문하였을 때 북한 측 인사가 대령연합회의 신문광고를 들고 『徐貞甲 대령을 아느냐』고 질문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徐회장은 여러 얘기를 듣고 국군 기무사, 국정원, 경찰청 관계자들에게 『북한에서 그런 방송이 나왔는데, 신변보호하라는 말도 안 하나. 그 문안을 갖고 오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사무실에 출입 못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얼마 후 당국에서 성명서 문안을 전달해 주면서 『엘리베이터에 혼자 타지 말라. 점심 때도 혼자 식사하러 가지 말라. 저녁에 돌아다니지 말라. 우리는 신변보호를 못 해주니 조심하라』고 말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그는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1년 후 인터넷에서 「암살」 얘기가 나오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이 있어 그제야 가스총을 한 자루 구입했다. 하지만 갖고 다니지 않다가 2003년 8월30일에 처음으로 들고 나갔다. 그날 따라 꿈자리가 좋지 않았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렸다.

그날 朝鮮日報 앞에서 시위하던 60여 명의 군중이 마침 회사에서 나오던 月刊朝鮮 趙甲濟 사장과 徐貞甲 회장에게 몰려들었다.

『시위대들이 피켓의 각목으로 위협했죠. 그 와중에 왼손 넷째 손가락의 인대가 늘어나 아직도 불편해요. 가스총을 쏘지 않았으면 아마도 군중심리에 편승한 사람들이 우리를 부안군수꼴로 만들었을 겁니다. 4·19 이후 광화문에서 총소리가 난 건 처음이랍니다. 그날 이후 가스총이 많이 팔렸답니다(웃음)』


『고발된 건 榮光』


최근 徐貞甲 회장은 「赤色 쿠데타가 진행 중이다」는 요지의 광고와 관련하여 모 단체로부터 내란선동죄로 고발당했다.

『이 사람들은 「보수는 대가리만 자르면 오합지졸」이라고 말한답니다. 애국운동으로 고발된 건 영광이죠. 싸울 상대가 되니』

徐貞甲 회장은 1964년에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뒤 軍복무를 마친 1968년에 직업군인의 길로 들어섰다. 장기 복무를 약속해야 갈 수 있는 베트남行을 선택했던 것이다.

부관 병과인 그는 인사행정 분야와 의전에 관한 베테랑이다. 1988년 육군본부 총무과장 때 육군의전 편람을 만들었다. 1983년에 논산훈련소에서 전산분류를 최초로 시도하여 육군 전산화에 일조했다. 당시 논산훈련소에서 비리가 많이 생기자 논산훈련소 김원태 소장이 육군본부에서 추천하는 사람을 안 받겠다고 공표한 뒤 徐貞甲씨를 직접 뽑아 갔다.

전임자가 두 달 만에 옷을 벗고 나가는 바람에 인수인계도 못 받은 그는 몇 달간 사무실에서 지냈다. 전산 기술 장병들과 씨름하여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친 뒤, 전산분류를 완성했다. 그는 논산훈련소 부관참모를 2년간 역임하는 최장복무 기록을 남겼다.

徐貞甲 회장은 1991년 육군 중앙문서관리단 단장 시절 부산 제1문서 보존소에 「전후방 각 부대 작계(작전계획) 5027」 문서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일로 43년 만에 부대가 최초로 표창을 받았다.

전후방 작전계획이 모두 들어 있는 이 문서가 만약 유출되면 대한민국의 모든 부대의 작전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 문서가 발견된 뒤 부대의 성격도 완전히 달라졌다. 방위병이 총을 들지 않고 근무했던 곳에 경계병력이 증강되고 높은 전망대와 이중 철조망이 설치됐다.

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령이 된 그는 3대 1의 경쟁이라는 별은 달지 못했다. ROTC출신으로 부관 병과에서는 지금까지 한 명의 장군도 배출되지 않았다.

―군대 있을 때부터 강성이라는 얘기를 들었나 봅니다.

『상급자는 나 같은 사람 데리고 있기 괴로웠을 겁니다. 여기저기서 청탁도 많이 들어오는데, 그걸 안 하니. 장군은 하늘이 점지해 줘야 한다고 합니다. 눈치 없고 직설적으로 나가니까 좋아할 사람이 없지요』


실추된 軍 위상 세우려 대령연합회 발족


1992년 12월 말, 그는 53세에 대령으로 예편했다. 요즘 대령의 정년은 56세이다. 1993년 2월에 육군 군사문제연구위원으로 발탁되어 5년간 근무하였다.

『金泳三 정권 때 율곡비리로 각군 참모총장들이 줄줄이 구속되었어요. 돌아가신 한신 장군께서 1994년 가을쯤 「얼굴을 들고 하늘을 볼 수 없다. 병과 최고 계급인 대령들이 실추된 軍 위상 提高를 위해 앞장서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군사문제연구위원이 163명이었는데, 모두 대령 출신이었죠. 軍 위상을 제고하고 대령단의 자존을 위해서 출범했습니다. 대령은 軍 전투력의 핵심입니다. 국가 위기관리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그대로 썩힌 것은 국가적인 손실입니다』

反核反金국민협의회 5代 운영위원장인 徐貞甲 회장이 전임 위원장들과 달리 견제를 많이 받는 것은 대령연합회라는 강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대령이 있다」는 말을 만든 대령연합회는 1995년 4월17일에 출범했다.


3만 명의 전사자 기록을 찾아 주다


어느 날 徐회장은 부산 가는 새마을호 열차를 타고 가다가 옆사람으로부터 6·25 때 전사한 동생의 기록을 43년간 못 찾았다는 사연을 들었다. 수소문 끝에 16세 때 전쟁에 나가 전사한 김수택이라는 병사가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길로 대령연합회에서 「전사자 기록 찾기 운동」을 시작하여 3만여 건을 해결했다.

대령연합회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軍警 유자녀 위로의 밤 행사도 열고, 1999년 연말에는 서해교전에서 승리한 병사들에게 전공패를 수여했다.

매년 연말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대령단 모임 때 600여 명 정도가 모인다. 7000여 명의 대령 가운데 2000여 명이 연회비 3만원을 내고, 600여 명이 매월 회비를 꼬박꼬박 낸다. 대령들이 내는 회비는 대개 회원들 哀慶事(애경사)에 사용된다.

7000여 명 가운데 여성이 30여 명 포함되어 있다. 徐회장은 대령연합회를 『아마 대한민국 많은 단체 가운데 결집력이 가장 강한 단체일 것』이라고 말했다.

徐회장은 대령연합회가 열심히 활동하자 『장군들은 뭐하냐, 재향군인회는 뭐하냐』는 얘기가 나와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장군들 모임인 星友會와 재향군인회에서 확실한 목소리를 내면 우리 안보상황이 지금처럼 안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령연합회의 파워가 커지자 혹시 해체 압력은 없었나요.

『2001년 문일섭 국방차관이 뇌물을 받았을 때 대령연합회에서 성명서를 냈어요. 브론즈 스타, 즉 「똥별」이라는 명칭까지 써가며 강하게 비판했지요. 전후방 장교들이 다 관심갖고 있었던 사안이었죠. 문일섭씨가 「대령연합회를 해체하라」는 공문을 시달했을 때 모 장군이 「그런 지시는 못 받는다. 왜 국방부가 예비역 단체에 간섭하냐」며 반발한 일이 있었죠』

2001년 4월2일, 신임 김동신 국방장관이 업무보고를 하러 갔을 때 金大中 대통령은 『장군들의 여론도 중요하지만, 대령단의 목소리를 경청하라. 소외감이 들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관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육군본부와 국방부에서 대령연합회로 『뭘 도와줄까』라는 연락이 왔다.

『대령들의 빈소가 썰렁하니 각군 참모총장 조기라도 걸어놓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더니 육군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이 조기를 5개씩 보내왔더군요』

徐貞甲 회장은 그전에 金大中 대통령에게 또 한번 은혜를 입었다고 말했다.

『金大中 대통령이 당선된 뒤 「ROTC 임관식에 대통령이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1998년 2월28일 대통령 취임 3일 만에 남한산성 아래 종합행정학교에 대통령이 왔어요. 그 이후 대통령이 매년 오고 있죠. 金대통령의 둘째 아들 김홍업씨가 ROTC 10기입니다』

하지만 대령연합회는 2001년 1월16일 전우신문 1면에 「국민의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정체성을 밝혀라」며 金大中 대통령을 공격했다.

徐貞甲 회장은 『金大中 대통령은 확실히 정치 9단』이라고 말했다.

『내 예측으로는 「한국에 이와같은 나를 공격하는 단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에 퍼주고 있지 않느냐. 그러므로 니들도 나에게 뭘 달라」 이런 얘기를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진 것 같습니다. 金大中 대통령은 상당히 머리가 좋지요. 도움을 받았다면 받았는데, 신랄한 광고를 냈으니 인간적으로는 미안하죠. 그분이 건강하길 늘 바랍니다』

―盧武鉉 정권에서 다른 압력은 없습니까.

『내가 재향군인회 중앙회 이사인데 암묵적으로 해임시키라는 압력이 있었어요. 지난 10월1일 「일신상의 이유」라고 쓴 사직서를 냈습니다』

일부 대령들이 동기동창들에게 『대령연합회에 참여하지 말라. 회비 내지 말라』며 차단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한다.


『정치는 생각 없다. 국민운동을 하겠다』


―정치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까.

『한나라당 믿을 거 없으니 정당 만들자는 사람들이 매일 찾아옵니다. 이번 대회 마치고 나니 더 많아졌습니다. 대부분 정치에 꿈을 가진 사람들이지요. 정치할 생각이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국민운동으로 승화시켜야죠』

―요즘 활동에 대해 가족들은 뭐라고 합니까.

『아내는 얼마 전에 큰 수술을 했어요. 그전부터 건강이 안 좋아서 일체의 뉴스를 차단시키고 있어요. 전화가 오면 들고 나가서 밖에서 받지요. 1남 2녀를 두었는데 나에게 조심하라고 할 뿐,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안 합니다. 친척들은 불이익을 당할까봐 나와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친구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처음에는 꺼려하더니 지금은 완전히 격려 쪽으로 돌아섰어요. 盧武鉉 대통령이 말실수를 하고 경제가 나빠지면서 徐貞甲이 하는 얘기가 맞구나, 인정하는 분위기지요』

―재산은 어느 정도나 되나요.

『가족이름으로 되어 있는 36평 아파트가 하나 있어요. 시가 6억원 정도 될 거예요. 육군본부에 근무할 때 집을 지을까 해서 계룡대 인근의 땅 70평을 샀어요. 수도 이전한다고 해서 땅값이 많이 올랐어요. 천도를 반대하는데 땅값은 오르고…(웃음)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죠』

―직업군인이 사회에 나와서 느낀 점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軍생활한 사람은 순진하고 정직해요. 10월4일 집회를 치르면서 느낀 점이 많아요. 우리가 경찰 말을 100% 믿은 것도 군인 출신이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경찰이 행진하게 해준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지도부의 다른 사람들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죠.

자기 이익을 위해 이탈을 다반사로 하다니… 군인은 모든 작전이 끝날 때까지 자기 자리를 반드시 지킵니다. 그런데 이름 넣을 때는 열심이더니 지도부 중에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대령연합회 몇 명밖에 없더군요』

―혹시 융통성이 없다는 얘기를 듣진 않을까요.

『큰 대회를 치르는데 융통성을 부리면 큰일납니다. 대회를 치를 때 함부로 융통성 발휘하면 안 되죠. 이번 집회를 하기 전에 「분신자살하겠다」, 「할복하겠다」는 전화가 많이 와서 불상사가 생길까 봐 상당히 긴장했습니다. 큰 대회를 할 때는 지도부의 명령에 따라야지요』

이번 대회는 시간이 늦어질수록 젊은 사람들의 참여폭이 늘었다고 한다. 퇴근 후 참석하고 싶다는 사람들 때문에 일부러 대회 시간을 오후 4시40분으로 잡았던 덕분이다. 徐회장은 보수 집회에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것은 반갑지 않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어디까지나 공부를 해야 한다며, 자신이 가르치는 청년아카데미 회원 300명도 못 오게 했다고 한다.


나라 위해 죽을 각오했다


徐회장은 反核反金국민협의회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고 말한다.

『300여 개 단체가 가입되어 있습니다. 자유진영을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상설기구입니다. 아직도 이 모임에 구심점이 없다느니 하는 사람이 있는데 3代 안응모 위원장 때 상설기구화하고 정관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자유진영과 金正日 추종세력이 싸우고 있는 겁니다. 위원장 자리는 6개월 임기 후 6개월 연임이 가능하지만 연임할 생각이 없어요. 훌륭한 사람있으면 내일이라도 그만둘 생각입니다』

운영위원회에서 『비밀이 새나가니 기자들 출입을 막고 경찰, 국정원, 국군기무사가 못 오게 하자』는 얘기가 있었지만, 그는 국가 기밀이 있는 것도 아니고 反정부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오마이뉴스나 한겨레 기자들을 서슴없이 만난다고 한다.

『한겨레·오마이 뉴스와 세 번쯤 인터뷰했는데 그들은 선입견과 달리 가감 없이 보도하더군요. 그쪽에서는 날보고 놀라더군요. 「상당히 딱딱하고 수구냉전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줄 알고 왔는데 역시 사람은 만나봐야 평가를 할 수 있겠다」고 얘기했습니다. 보수는 편가르기를 하면 안 됩니다. 기피할 게 아니라 적극성을 갖고 누구든 만나 정면 돌파하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는 이번 집회에 대한 中央日報의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맡고 나서 한 번도 중앙일보에 광고를 하지 않았어요. 그쪽 광고국에서 전화가 왔었어요. 10월4일 대회 같은 건 필요없다고 얘기한 권영빈 칼럼을 읽고 많은 사람이 분노했습니다. 우리 협의회에서 사과하라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지켜볼 겁니다』

徐貞甲 회장은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에게 「수구꼴통이다. 냉전적 사고를 가졌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건 가장 상식적인 겁니다. 나라를 위해서, 후손을 위해서 헌법을 지키고 국가보안법을 사수하자고 얘기한 것뿐입니다. 평범하고 상식적인 운동을 하는 우리들을 수구라고 몰아세우는 사람들의 진정한 의도가 뭔지 묻고 싶습니다』

反核反金국민협의회는 「국가보안법 사수」, 「서울 천도 절대 반대」,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호주제 폐지 반대」를 지속적으로 주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10월4일에 사람이 많이 모였다는 걸로 만족할 게 아니라 앞으로 전략을 탄탄히 세워 더욱 조직적으로 운영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盧武鉉 대통령에 대해 『외국 여행에서 견문이 넓어졌다고 하니 나아지지 않겠나 희망을 가집니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가면 임기를 채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희망이 있다』


徐貞甲 회장은 요즘 멋있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기관리 능력이 있는 우리가 국가를 위해 무엇할 것인가. 지금 국가안보 위기 상황입니다. 우리는 전쟁터에서 죽는다는 심정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10월4일 집회는 앞으로 우리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 정도면 우리가 앞장서서 죽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여태까지 한 노력이 공염불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유아독존이 아니냐, 내가 도취되어서 하는 거 아니냐, 자문자답한 적도 있습니다. 이제 국민들의 뜻을 확인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지더라도 개죽음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안심이 되지요』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태평할 수 없어요. 나라 위해 죽겠다고 마음먹으니 편합니다. 사람이니까 처음에는 조마조마했지요. 나와 접촉하는 사람들은 다 공감하는 생각입니다. 경찰이 오라고 하는데도 팬들이 많아지니까(웃음). 힘이 되고 자신감이 붙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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