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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 전 국방장관이 보내온 가슴이 먹먹해지는 격려편지
국민행동본부 (2013.06.18) ㅣ 프린트하기

“老兵은 서정갑 본부장의 빛나는 활약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徐貞甲(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 앞으로 꽤 두툼한 편지 한 통이 왔다. 편지를 열어보니 A4 용지에 自筆(자필)로 쓴 편지였다. 편지를 보낸 분은 다름 아닌 尹誠敏(윤성민) 前 국방장관이었다. 1982년 5월부터 1986년 1월까지 국방장관으로 재임하셨다.

편지를 열어 본 순간 우선 筆體(필체)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붓펜으로 한글과 한자를 혼용한 글씨체는 컴퓨터 글자체가 따라올 수 없는 명필이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적힌 글자마다 尹 前 장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분의 편지 첫 마디는 謹啓(근계)라고 되어있다. 필자도 처음 접한 단어다. 謹啓란 편지 첫 인사말로 ‘삼가 아룁니다’라는 한자어다. 옛 어르신의 품격을 謹啓라는 단어 하나로 가늠해 볼 수 있었다.

尹 前 국방장관의 편지는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의 愛國(애국)투쟁에 대한 격려와 감사의 인사말로 시작되었다. 그 분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다가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윤 전 장관이 6·25動亂(동란) 때 군인으로서 겪은 고난이 불과 문장 몇 줄에 요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옛 필름 영화가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임진강 전투에서 6발의 총을 맞고 43일 동안 民家(민가)에 은신해 있다가 美 해병 수색중대에 구출되었다는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國軍 병원에 입원했다가 8사단 再창설 때 복귀신고를 하러 가니 자신은 戰死(전사)처리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어떤 反轉(반전)영화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스토리다. 尹誠敏 前 장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장성이기도 하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올해는 6·25 한국전쟁 휴전 60주년이 되는 해다. 韓美동맹의 상징인 韓美상호방위조약 체결 60주년이기도 하다. 이런 시기에 尹誠敏 前 국방장관의 편지는 더욱더 뜻 깊다.

尹 前 장관은 1926년 生이다. 그 분과 같은 1920년대 生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겪은 세대다. 1920년대 초반 세계는 일제 말기 태평양 전쟁에 징집당하는 세대였다. 1920년대 중후반 세대는 6·25와 월남戰을 온몸으로 치러냈다. 월남戰 이후는 中東지역에서 산업 역군으로 일한 세대이기도 하다. 1920년 세대는 한국의 일제강점기와 근현대사를 치열하게 보낸 세대다. 그런 점에서 尹 前 국방장관의 친필 편지는 마치 귀한 역사자료처럼 여겨졌다. 다시 한 번 더 尹誠敏 前 국방장관의 격려에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편지 全文을 게재한다.


다음은 편지 내용 全文 (한자 중 일부는 한글로, 한글은 일부 한자로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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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 귀하

謹啓(근계)

국가안보를 위해 종북좌파세력과 최전선에서 위해를 무릅쓰고 鬪爭(투쟁)해 온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의 용기와 신념에 대하여 아낌없는 찬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국민행동본부의 애국운동은 보수세력의 첨병적 사명을 다함으로서 대한민국의 정통성 수호는 물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를 굳건히 지키는데 역사적 큰 족적을 남긴 매우 자랑스러운 일을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保安法 死守, 反核, 統合進步黨 해산청원 등 종북좌파세력이 이 땅에 발붙일 수 없도록 集會, 시위, 기자회견, 강연 등 통해 계속 힘찬 애국운동을 펼쳐 나가시길 바랍니다.

또한 安保上 가장 큰 이슈가 한미연합사 존속, 戰時작전권 전환문제인데 재향군인회, 성우회 등 보수세력과 연대하셔서 큰 성과를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老兵은 서정갑 본부장의 빛나는 활약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소장하고 있던 자료 중에 별첨한 동아일보 1983년 4월9일자 ‘한국에서 훈장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 윤성민 국방’이라는 기사를 동봉하오니 국군 전사자 유골 발굴, 국군포로 교환 등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 헌신한 유공자에 대한 예우 등 국방정책을 펼쳐 나가시는데 참고자료가 되었으면 합니다.

본인은 1950년 1월14일 육사 9기로 임관하자마자 소대장으로 경북 보현산 일대 공비소탕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공비소탕 작전 중 임관 6개월 만에 6·25 한국전쟁이 발발, 경북 영천까지 후퇴했다가 북진, 38선을 넘어 철원, 평강, 복개, 양덕, 구장덕, 회천, 만포진까지 진격 전투를 거듭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으로 인해 인해전술에 밀려 戰勢(전세)가 역전 후퇴를 거듭, 임진강 사수 방어 전투 등 死線(사선)을 넘나드는 전투는 계속되었음은 물론, 횡성지구 전투에서는 8사단 21연대 1대대 2중대장으로서 치열한 전투 중에 중공군에 포위, 따발총 6발을 맞고 중상을 입은 채 민가에 실려가 43일간의 은신 치료 중 미 해병 3사단 수색중대에 의해 구출, 대구 1육군병원으로 후송, 1개월여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대구 삼덕국민학교에서 8사단이 재편성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목발을 짚은 채 복귀신고를 했을 때는 실종상태에서 전사자로 처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조국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있던 6·25한국전쟁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한데 따른 6·25한국전쟁 전투 공적과 월남 참전 전투 유공, 대간첩 대침투작전등 국가안전보장 유공, 국방군사 외교공적을 국가가 높이 평가해서 내려준 영광스러운 훈장이라고 생각합니다.

老兵의 장황한 글월은 이만 거두겠습니다.

끝으로 본부장님의 건안하심과 댁내에도 신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소원하면서 이만 鈍筆(둔필)합니다.


2013년 5월 31일 尹誠敏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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