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동본부 - nac.or.kr
 


反共·自由투사 李哲承 헌정회 원로위원회 의장 별세
국민행동본부 (2016.02.27) ㅣ 프린트하기

원로 정치인 素石(소석) 李哲承(이철승, 前 신민당 대표) 헌정회 원로위원회 의장이 27일 오전 3시 별세(향년 94세)했다. 李哲承 의장의 서거는 대한민국 現代史의 산 증인을 잃은 국민 모두의 슬픔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故人은 본 단체와도 인연이 깊었던 愛國 원로였다. 2004년 10월 열렸던 <국보법 사수 국민대회>와 관련하여 法院이 서정갑 본부장 등 대회 주요 인사들에게 有罪를 선고했을 당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들의 구명을 호소했던 인물이 바로 故人이었다.

故人은 고려대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해방이후 전국학생총연맹 대표의장을 지내며 반탁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54년 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치권에 입문한 뒤, 4대·5대·8대·9대·10대·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55년 민주당을 창당했으며 5·16 이후에는 정치규제를 당해 해외로 망명하기도 했다. 1970년에는 신민당 전당대회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김영삼·김대중 前 대통령과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國會 부의장을 거쳐 1976년 신민당 대표 최고위원을 지냈다. 1985년 12대 총선 때 신민당을 창당하고, 전주·완산에서 당선되어 7선 의원이 됐다. 현실정치를 떠난 이후에는 건국50주년기념사업회 회장(1998년), 대한민국헌정회 회장(2007~2009년) 등을 지냈다.

故人의 평생 신념은 ‘반공·반독재·자유민주주의’였다. 북한의 공산 독재 정권을 늘 비판하며 반공이념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야당 정치인이면서도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독재’가 국가안보를 위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여겼던 현실주의자였다.

故 이민우 前 신민당 총재는 2004년 작고 이전에 가졌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이철승 씨와 野黨을 함께하면서 자주 부딪쳤고 그의 ‘중도통합론’에 반대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사람만큼 나라를 위해 일한 사람도 드물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정재호 헌정회 원로회의 부의장에 따르면 故人은 생전에 두 개의 꿈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88서울올림픽, FIFA 월드컵에 이어 동계 올림픽 개최를 통해 세계 체육사에 그랜드슬램을 찍는 현장을 꼭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평양에 가서 냉면과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 오랜 세월 목말랐던 갈증을 시원히 푸는 것이었다. 그래서 故人은 스스로를 2평(平昌, 平壤)주의자라고 자처했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창희 여사와 아들 이동우 前 호남대 교수, 딸 이양희 UN 미얀마인권보호관이 있다. 다시 한 번 유가족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거듭 故人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2016. 2 . 27








'청년들이야 말로 바로 대한민국의 미래'
'자위적 핵무장'을 절대 다수 국민이 지지하는 것은 큰 힘이다. 이를 動力으로 '擧國的핵안보체제'를 구축하자!


황당무계한 '광주사태 600명 북괴군 침투설'은 대한민국 國軍을 모독하..

북괴군은 신출귀몰, 1980년의 국군은 바보였단 말인가? 북한의 광..
99주년 3.1절 국가회복 범국민대회, 수십만 명의 애국시민 ..
국민행동본부, 트럼프 美 대통령 방한 환영 국민대회 열어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 美 백악관 안보정책 보좌관 만나 '韓美동..
趙甲濟, "국민저항이 답이다"



이지구씨의 질의와 답변
서정갑씨, 마지막으로 당부합시다(추태중지)
부관병과 서정갑의 공개질의에 답한다
육사22기 지만원씨에 드리는 공개 질의 !
서정갑은 조갑제 말 심부름하기엔 역부족



검찰, 지만원의 서정갑 본부장 고소(告訴) 관련 “혐의 없음” 통고

검찰, 지만원의 서정갑 본부장 고소(告訴) 관련 “혐의 없음” 통고 지 씨..
서정갑 본부장 MBC 출연영상 - 2019.2.24 탐사기획스트..
경제풍월 2017년 12월호 -[아스팔트 우파의 상징] 서정갑 국..
경제풍월 (2017년 10월호)
경제풍월 (2017년7월호 )

서울 서초구 나루터로 4길 28 304동 206호 (우) 06522     (C) 2002 nac.or.kr

 접속문제로 게시판을 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