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동본부 - nac.or.kr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45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민행동본부ㅣ조성관 편집위원 maple@chosun.com   
'아스팔트 우파'들이 거침없이 뱉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1년 비판

“2007년에 정권교체가 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이 어디로 흘러갔을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아스팔트 우파’라는 분들이 있었는데 한나라당이 이들에게 너무 무심하다. … ‘아스팔트 우파’는 극우파가 아니라 단지 행동하는 우파이며, (이에 비해) 한나라당은 겉멋 부리기에만 골몰하는 것 아니냐?”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지난 2월 18일 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이 발언은 이명박 정부 출범 1주년과 맞물려 보수우파 진영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보수우파 단체 홈페이지에는 그의 발언과 동영상, 관련 기사가 올려져 있다. 정 최고위원이 ‘아스팔트 우파’를 거론하며 한나라당의 자성을 촉구한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이 발언에 모티브를 제공한 것은 윤창중 문화일보 논설위원이 2월 16일자에 쓴 ‘비정한 우파’ 칼럼이었다. 윤 위원은 칼럼에서 “김대중·노무현의 좌파 폭주(暴走)에 피가 역류하는 분노의 용암 폭발, 그런 애국심의 운동화(運動化)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서울역 광장에서 줄기차게 이어지지 않았다면 이명박 정권의 집권이 과연 가능했을까?”라고 물었다.

30도가 넘는 폭염 아래서 아스팔트 투쟁을 벌인 우파 세력의 중심에는 육군대령 출신 서정갑씨가 이끄는 국민행동본부가 있었다. 좌파종북(左派從北) 세력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왜곡하고 날조하는 작업을 진행할 때 국민행동본부를 위시한 우파단체들은 언제나 최전선에 섰다. 서울광장과 서울역 앞에서,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앞에서, 평택 대추리에서 벌어진 ‘대한민국 흔들기’에 온몸으로 궐기한 이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아니었다. 혼돈과 전란과 가난을 딛고 위대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피와 땀으로 써온 60대 이상 노년층이었다. 여기에 아버지 세대가 이룩한 대한민국의 역사에 자부심을 느껴온 청년 우파들이 동참했다. 좌파정권 10년 동안 우파정권 탄생의 밀알이 된 우파 단체의 지도자들은 MB정권 1년과 한나라당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대표적 ‘아스팔트 우파’ 5인을 만나 솔직한 심경을 들어보았다.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한나라당은 양심 팔아먹은 사람들이 장악한 상태
`사회 곳곳 좌파 대못 못 뽑아낸다면 실패한 정권돼”

육해공군대령연합회를 이끌고 있던 서정갑(69)씨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6·15 남북정상회담이 계기가 되었다. ‘김정일 답방’ 문제가 논란이 되던 시점인 2001년 초, 대령연합회는 1월 16일자 ‘전우’지에 ‘국민의정부는 더 이상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정체성을 밝혀라’는 제목의 광고를 냈다. 김대중 정부에 대한 최초의 선전포고였다. 이어 대령연합회는 ‘친북좌익명단공개 추진본부’를 결성해 신문광고를 통해 김대중 정부의 이념문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령연합회는 단체이름을 ‘친북좌익척결국민행동본부’로 바꿨고, 이후 서씨는 지금까지 국민행동본부를 이끌어왔다.

기자가 서정갑 본부장을 처음 인터뷰한 것은 2001년 가을이었다. 국민행동본부가 막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할 때였다. 8년 만인 지난 2월 21일 서울 역삼동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40㎡쯤 되는 사무실에는 국민행동본부 이외에 국민행동여군전우회, 국민행동문무산악회, 밝고힘찬나라운동이 옹색하게 책상 하나씩을 쓰고 있었다. 서 본부장은 재판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광복 후 독립운동가를 법정에 세운 것과 무엇이 다른가. 국가보안법이 있기 때문에 헌법이 있고 그 위에 대한민국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정부가 우리에게 훈장을 주지는 못할망정 이럴 수는 없다. 이명박 정부의 검찰과 법원을 용서할 수 없다.”

서 본부장은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치상혐의’로 기소되어 2008년 4월 징역 1년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서 본부장은 “행사장에서 경찰과 부딪친 일도 없는 내가 그런 실형을 선고 받아야 한다면 촛불시위 때 난동 부리고 기물 파손한 이들은 사형감 아니냐”고 반문했다. 서 본부장을 무료 변론한 이는 알려진 대로 자유선진당 이영애 의원과 고영주 변호사였다. 그의 분노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행태로 옮겨갔다. “한나라당에 변호사 출신들이 얼마나 많나? 그들 중 아무도 나를 변론하지 않았다. 좌파종북정권이 종식되지 않았다면 과연 자기들이 거기에 있을 수 있을까. 한나라당이 양심을 팔아먹은 사람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 서 본부장은 “촛불시위 때 ‘아침이슬’을 부르고 난동세력에 사과한 것을 보고 너무나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 본부장은 경찰의 용산 철거민폭력 시위진압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화염병은 2차 대전 때 독일군 탱크 부수는 무기로 개발된 것이다. 이런 화염병을 경찰과 민간인에게 던지는 것은 폭도(暴徒)다. 폭도에게는 조기진압만이 최선이다.”  

아스팔트 우파 운동의 불을 지핀 사람 서정갑.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원한다”면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부 내와 사회 곳곳에 박혀 있는 좌파 대못을 뽑아내지 못하면 이명박 정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이 대통령 최대 실책은 촛불시위 때 좌파에 손 내민 것
`대북정책 일관성 높이 평가하지만 내각이 뒷받침 못해”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1150만표를 얻어 531만표 차로 정동영 후보를 눌렀다. ‘아스팔트 우파들’은 이 압승 결과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북한민주화포럼을 이끌어온 우파 이론가 이동복(72)씨는 기자, CEO, 안기부특보, 국회의원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인물. 이동복 대표를 지난 2월 23일 서울 신사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동복 대표는 “한나라당 후보가 승리한 것은 한 번 더 좌파정권이 들어서면 이 나라가 북한 정권에 팔려갈지 모른다는 보수우파의 위기감의 반영이었다”고 강조한다.

“지난 대선은 선거라는 형식을 빌린 혁명이었다. 대선 승리로 우파는 겨우 정권교체라는 현관문을 넘어섰다. 정권교체라는 안방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총선에서 3분의 2 이상의 압승이 필요했다. 좌파 물갈이가 필요한 이유를 여론으로 부각시켰어야 했다. 여기에는 혁명적 방법이 동원되어야 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갔다. 안보·통일·교육·문화 분야에서 노무현 정부가 깔아놓은 좌파지뢰밭을 부숴나갔어야 했는데 이걸 못했다.”

여기서 ‘좌파 지뢰밭’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그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2년 전부터 정권연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좌익인맥을 사회 전체에 깔아놓았다. 이 대표는 “보수우파로 정권이 넘어가도 사실상 움직이지 못하게 규정과 제도를 바꿔놓았다”면서 “이 같은 일은 정치적 포석의 의미를 간파하지 못한 한나라당이 협조해 가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은 한반도의 좌우이념대결 구도에 대한 기본인식이 없는 데다 정치인 지도자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집권 초 두어서는 안될 악수(惡手)를 두었다”고 판단했다. 급할 게 하나도 없는 미 쇠고기 수입협상타결을 서두른 게 대표적 사례다.

“위축되어가던 좌파를 되살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촛불시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좌파에 손을 내민 게 결정적 실책이었다. 정치에서도 피아(彼我) 식별기능이 중요한데, 이 대통령은 이를 간과했다. 결국 촛불시위를 통해 좌파가 완전히 복원되고 말았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대표는 “이 대통령은 금강산 피살사건 이후 분명히 바뀌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야당과 좌파세력으로부터 대북정책을 변경하라는 압박을 받으면서도 이 대통령이 “잘못 시작하는 것보다는 시작 안 하는 게 낫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이후 전교조, 교과서 문제 등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이 단호해진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내각과의 보조 불일치로 인해 대통령의 생각이 실행단계에서 희석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류현태  전 무한전진 대표

“총체적 불신 초래… 아스팔트 투쟁도 헛고생 만들어
`더 이상 반대진영 핑계 대지 말고 국가 정체성 찾아라”

“피아노 치고 노래 부르는 일을 일생의 가장 큰 행복으로 알았던 사람이 서울광장 연단에 서서 어르신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 2월 24일 만난 류현태(34)씨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우파 애국단체 ‘무한전진’ 대표를 맡았던 류현태씨는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재즈 작곡을 공부한 직업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다. 그가 한국 사회 흐름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 건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직후부터였다.

“나는 누구보다 대한민국의 오늘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을 ‘극우’로 매도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더 심해졌다. 2003년 초반 생각이 비슷한 20여명이 모여 스터디 그룹을 결성해 이론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작곡가 류현태’를 ‘우파운동가 류현태’로 변화시킨 것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었다. 류씨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탄핵 반대’가 90% 넘게 나오는 것을 보고 TV가 여론을 왜곡시킨다고 판단했다. 류씨는 인터넷에 ‘노무현 탄핵 적극 찬성’ 카페를 열었다. “화제 카페로 올라 금방 존재가 알려졌다. 회원이 급증했다. TV의 여론 왜곡에 어디서 울분을 터뜨려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확인했다. 우리는 온라인상의 진지를 구축했고 헌법재판소 앞에서 엄정한 법집행을 해달라는 1인 시위도 벌였다.”

이후 류씨는 무한전진 대표로 친북좌파가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현장에 나가 싸웠다. 국회의사당, 평택 대추리, 인천 자유공원, 서울광장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회원들과 나섰다. 숫자로는 친북좌파에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류씨와 회원들은 기죽지 않았다. 류씨는 이명박 정부 1년에 대해 “실망이라는 표현은 너무 부족하고 총체적 불신을 갖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류씨는 그러면서도 “내가 헛일을 한 게 아니라는 느낌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법질서를 엄정하게 지켜 국가 정상화 작업에 하루빨리 박차를 가해달라. 더 이상 반대진영 핑계 대지 말고 친북좌파·반국가단체에 의해 훼손된 국가 정체성을 복원하는 일이 아스팔트 위에서 싸운 분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본다.”



장경순   자유수호국민운동 명예의장

“한마디로 낙제… 좌익정권 잔재 청산 밀고 나가야… 국군포로 송환 같은 상호주의 대북정책은 잘한 일”

자유수호국민운동 명예의장 장경순(88)씨는 3공화국 시절 농림부 장관,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한 전직 5선 의원이다. 2월 23일 오후 서울 다동에서 그를 만났다. 사무실에는 2003년 3월 1일에 있은 ‘반핵반김 3·1절 국민대회’ 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다. 군중 위에 태극기, 성조기, 유엔기가 나란히 떠있는 모습이 강렬했다.

팔순의 그가 행동하는 우파로 나서게 된 계기는 2002년 3월 미국 LA를 방문했을 때였다. “그때 LA의 지인이 베트남은 공산주의자가 5%밖에 안 됐는데도 공산화되었는데 한국은 공산주의자가 9.7%나 된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정래혁, 한명수, 김창규, 김성은, 이대용, 장동운과 함께 ‘7인호국위원회’를 결성했다. ‘7인호국위원회’는 우여곡절 끝에 2002년 4월 9일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모임이 ‘자유수호국민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이후 그는 팔순의 나이에 아스팔트 우파로 활동을 시작했다. MB 정권 1년의 평가를 묻자, 장경순 의장은 “한마디로 낙제”라고 잘라말했다. 장 의장은 “국민들이 531만표 차로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킨 건 좌익정권의 잔재를 청산해달라는 요청이었다”고 강조했다. 장 의장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보수정권으로서 MB정부가 잘한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국군포로 송환에 정부가 앞장선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또 제2연평해전을 정부기념식으로 격상한 것, 대북 일방주의를 버리고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 남북문제를 풀어가려는 입장도 칭찬할 만하다.”



최대집  자유개척청년단 대표

“실용·중도 내세운 정권이어서 기대도 실망도 없어
`한나라는 기회주의 정당… 가진 자들 정치통로일 뿐”

지난 2월 24일 오전 안산시 본오 2동 한국의원에서 자유개척청년단을 이끌고 있는 최대집(38) 원장을 만났다. 서울대 의대 출신인 최 원장은 올 해로 의사 10년째.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되었을 때 처음으로 ‘찬성 카페’에서 글을 쓰고 후원금을 보내는 등의 활동을 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을 하면서 애국운동 진영이 고령화되어 행동력이 떨어지는 게 안타깝고 답답했다.”

최씨는 2004년 청년 20여명을 모아 자유개척청년단을 결성해 장외활동에 나섰다. 회원 평균 연령은 30대 초반. 자유개척청년단은 ‘강정구 사건’ 때 빛을 발했다.

“동국대 교수 강정구가 ‘6·25는 통일전쟁이었다’는 반역발언을 했을 때 우리 단체가 대표고발인으로 참여했다. 기자회견도 하고 시위를 수십 차례 했다. 사회적 이슈화에 성공해 결국 강정구는 교수직에서 물러나고 유죄판결을 이끌어냈다.”

자유개척청년단의 또 다른 성과는 2005년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을 지켜낸 일이다. 2005년 7월 17일 좌익단체 회원 30여명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기 위해 자유공원에 모였다. 최 대표는 회원 15명과 다른 우파단체와 함께 좌파단체와 몸싸움을 해 동상을 지켜냈다. 최대집 대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통령과 측근들은 처음부터 이념적 정체성과 관련, 보수우파라는 말을 쓰지 않고 실용과 중도라는 표현을 썼다. 이명박 정부는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을 인정하지 않는 친북좌파를 단죄해 좌파를 무력화하는 일부터 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들은 친북좌파세력과 타협하고 대화하면 공존할 수 있다고 오해했다. 그 결과는 어떤가. 그들은 틈만 나면 정부 전복 구호를 외치고 있다. 모든 사안마다 사사건건 방해하고 있다.” 최 대표는 “한나라당은 이념적 기회주의 정당”이라고 평가절하한다.

“민주 정당은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고 국민들을 각성 교육시켜야 한다. 그런데 한나라당에는 이런 기능이 없다. 돈 가진 사람들만 정치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한나라당은 금권정치의 산실이다.”


모두 [6] 개의 독자의견이 있습니다..

"김대중 처벌! 김대중 처벌!" 격앙된 시민들
비정한 우파<문화일보>


서정갑 본부장, 백선엽 대한민국육군협회 명예회장 예방(禮訪)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은 지난 9월 9일 미국에서 오신 국군포로송환 운동 회장이..
황당무계한 '광주사태 600명 북괴군 침투설'은 대한민국 國軍을..
99주년 3.1절 국가회복 범국민대회, 수십만 명의 애국시민 ..
국민행동본부, 트럼프 美 대통령 방한 환영 국민대회 열어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 美 백악관 안보정책 보좌관 만나 '韓美동..



영웅에게 드리는 감사패
워싱터 동포들이 드리는 감사패
국군 포로 송환 위원회 감사패
이지구씨의 질의와 답변
서정갑씨, 마지막으로 당부합시다(추태중지)



[문화일보] "우파를 조롱거리 만들어" 보수진영서도 강력 비판

2019년 2월11일자 [문화일보] 보도 “천안함 北소행 여부 놓고, 토론회..
검찰, 지만원의 서정갑 본부장 고소(告訴) 관련 “혐의 없음” ..
서정갑 본부장 MBC 출연영상 - 2019.2.24 탐사기획스트..
경제풍월 2017년 12월호 -[아스팔트 우파의 상징] 서정갑 국..
경제풍월 (2017년 10월호)

서울 서초구 나루터로 4길 28 304동 206호 (우) 06522     (C) 2002 nac.or.kr

 접속문제로 게시판을 닫습니다